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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벌레 잠잠이 Nov 07. 2021

일상에 지친 나를 토닥이며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끈끈한 더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답답했고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다른 해보다 유난한 이 더위가 비단 날씨 탓만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꽉 막힌 것 같은 상황이 주는 압박감일 터였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에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겠노라, 고 큰소리를 떵떵 쳤더랬다. 그렇게 배수진을 쳐야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달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벌써 이러저러 일 년. 별 진전 없이 제자리걸음이다. 자꾸 마음이 좁아지고 내 보폭도 좁아지는 것 같다. 이제와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렇다고 앞만 보고 내달리자니 자꾸 거대한 벽이 가로막는 듯하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

이 막다른 골목 끄트머리에서 한비야 님을 다시 만났다.


 어디선가 빰빠라밤, 하는 나팔소리가 울린다. 씩씩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행진곡 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리고 그녀가 내 귓가에 대고 외친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고.


 당장 밥을 굶는 것도 아니면서 밥벌이를 끈을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이 보인다. 새로 품은 꿈도 놓지 못하고 엉거주춤 잡고 있는 내 모습도 보인다.


 자꾸 뒤돌아보며 발은 앞으로 향하고 있는 내게 그녀가 묻는다.


‘당신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은 무엇이냐!’고.


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첫사랑처럼 그 말은 나를 흔들어 놓았다.


  ‘그래,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 내 나이 스무 살 때는 가슴이 뛰지 않는 일을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대학 동아리 일을 할 때도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다 써버렸더랬다.


 덕분에 전공과목에 대한 학점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말이다. 내가 가진 땀과 열정을 다 쏟고 난 뒤에 찾아오는 희열을 사랑했다. 하다못해 방학 때마다 했던 아르바이트도 힘든 일만 골라했다.


  어느 해 겨울방학 때는 공장에서 일하며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도 했다. 주부사원이 많은 공장이었는데 늘 일이 밀려 잔업이 많은 곳이었다. 하지만 어린 학생이 고생한다며 우리들에게 엄마처럼 따뜻했던 분들이 많은 곳이기도 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것은 그 추운 토요일 점심으로 비빔국수가 나온 날이다. 식당으로 가기 위해 마당으로 나왔더니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따뜻한 국물이 간절히 생각나던 날.

그날 점심 메뉴는 딱 하나였다. 비빔국수! 매운 것도 좋아하고 국수도 좋아했던 나도 그 비빔국수를 다 먹을 수 없었다.


 면발이 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왠지 모를 서글픔이 가슴에서 차 올랐다. 가족과 함께 있어야 할 크리스마스이브에 잔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주는 점심식사에서 어떤 배려도 따뜻함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훗날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나만 보지 않고 내 입장이 아닌 다른 이의 편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를, 결심하기도 했다.


  헌데, 세월은 흘러 내 뜨거웠던 가슴은 한 여름 보리차처럼 미지근해졌다. 나 아닌 다른 이를 생각하기보다는 최소한 손해는 보고 살지 말아야지, 하며 적당히 이기적인 마음도 갖게 된 것도 같다.


총알이 날아들고 언제 폭격을 당할지 모르는 위험한 현장에서 긴급구호 활동을 하는 그녀가 또 묻는다.


‘만원으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한비야가 긴급구호 요원으로 변신한 후 첫 파견지였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한 상흔이 고스란히 보이는 곳이었다. 물론 눈으로 보이지 않는 후유증은 더 무서웠다.


그중 하나가 곳곳에 묻혀있다는 지뢰가 1천만 개 이상이라는 사실. 그 지뢰를 제거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천년! 더 끔찍한 것은 대인지뢰의 최대 피해자는 어린이들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이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식량난. 대부분이 영양실조로 어린아이들의 상태는 더 심각했다. 다 죽어가는 생후 팔 개월 된 아기 압둘과 눈에 초점을 잃은 네 살짜리 사이드에게 한비야는 치료 급식을 시작한다. 의사는 이미 너무 늦었다며 포기한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무표정했던 네 살 꼬마 사이드가 방긋 웃는다. ‘아, 살아난 것이다!’라는 한비야의 벅찬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아이를 살린 것은 믿을 수 없게도 밀가루와 콩가루에 소금, 설탕을 섞은 영양죽. 그 영양죽 이 주일 치 값이 단 돈 만원이라고 한다!


 그녀는 또 묻는다. 지금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느냐고.  그것은 다름 아닌 ‘한 줌의 씨앗’이란다.


 1천3백만 명이 굶어 죽고 있는 초대형 긴급구호 현장인 남아프리카에 한비야가 갔을 때 들었던 얘기. 지난해 한정된 구호 자금 때문에 한 마을은 씨를 나눠주고 그 옆 마을은 주지 못했단다. 하지만 비가 오지 않아서 파종한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씨를 나누어준 마을 사람들은 한 명도 굶어 죽지 않았는데, 옆 마을은 아사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똑같은 조건이었음에도 단지 씨앗을 뿌렸다는 사실 하나가 사람들을 살려 놓은 것이란다.


‘씨앗이란 존재만으로도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 있었다.’는 깨달음. 그 순간 이 책이 내게는 새로운 씨앗이 될 것을 예감했다. 내 가슴 어딘가에서 다시 뜨겁게 움틀 열정의 씨앗 말이다.


그녀는 다시 묻는다.


 ‘몸은 고생하지만 하고 싶던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이 훨씬 행복한 것 아닌가.’라고.


   ‘이게 나의 최선이야. 이 정도면 나에게도 남에게도 떳떳해,라고 생각할 때 그때 한 번 더 해볼 수 있어야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아닌가.’하는 말은 최근의 내 상황에 대해 알고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언제부턴가 어느 정도 에너지를 남겨두고 지치지 않을 정도까지만 최선을 다 했던 나를 마치 어디선가 지켜보기라도 한 것처럼.


 두 갈래의 길에 서 있는 나를 본다. 스무 살 때는 가시밭길이더라도 내가 원하는 길로 무조건 들어섰다. 그만큼의 세월이 다시 흐른 지금, 나는 아주 작은 가시덤불이 저 멀리 앞에 보인다고 되돌아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은 그래도 될 나이, 아니 그래야만 하는 나이라고 짐짓 포기한 것이다. 그런데 한비야가 지도 밖으로 행군을 시작한 나이도 결코 젊다고 할 수 없는 나이였다.


그녀가 말한다.


 ‘그래, 그래, 지금 99도까지 온 거야.
이제 이 고비만 넘기면
드디어 100도가 되는 거야.’라고.


 물이 끓는 100도와 그렇지 않은 99도. 단 1도 차이지만 바로 그 1도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기억하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도 그녀처럼 되뇌어 본다.


 ‘한 발짝만 더 가면 100도가 되는데 99도에서 멈출 수는 없어!’라고.


   그리고 오늘 다시 행군을 시작할 것이다. 그곳이 설령 가시밭길이라고 해도 내 가슴이 다시 견딜 수 없는 뜨거움으로 끓어오를 때까지 말이다. 어디선가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한 줄 평

일상에 지친 내 어깨를 두드려주며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책




책 제목: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작가: 한비야
출판사: 푸른숲 | 200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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