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굉장한 실용주의자다. 쓸 데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동생이 머리를 감는지 안 감는지 보면, 오늘 약속이 있는지 없는지 손쉽게 알 수 있다. 그의 행동에는 항상 이유가 명확했다.
동생과 나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편이다. 동생이 실용주의자라면 나는 비실용주의자다. 밥 먹을 때 밥그릇에 김치 국물을 안 묻히려 애를 쓴다. 왜 그러는지 나도 모른다. 내가 하는 행동들은 대부분 왜인지 모르겠는데 기필코 그래야만 한다. 한마디로 쓸 데 없는 데 목숨 거는 타입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동생은 착실한 직장인이 되었고 나는 우당탕탕 백수가 되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될 것이었던 것처럼, 우리는 이제 달라진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됐다.
오랜만에 함께 서울에 살기 시작하니 더 뚜렷하게 나와 동생을 보게 된다. 내가 보기에 동생의 문제는 주변 정리를 잘 안 한다는 것이다. 항상 책상 위가 어지럽혀져 있는 건 물론이요, 약을 먹고 나면 약봉지는 그대로 놔두고 가고, 화장품을 쓰고 나서 뚜껑을 그대로 열어놓고 나간다. 오일을 발랐으면 뚝뚝 떨어진 것들을 좀 닦으면 좋으련만, 동생이 지나간 자리는 항상 흔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일일이 잔소리를 하다가, 이젠 포기하고 그냥 '감상'하고 앉아있다.
하지만 동생은 제 나름대로 내가 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언니가 잘 씻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화장을 지우지 않고 잠드는 건 물론이요, 술을 마시고 돌아왔는데 양치질도 안 하고 그냥 자버린다. 철저하게 집에 돌아오자마자 씻고 양치질하는 동생이 보기에 언니는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덩어리였다.
나는 항상 동생을 공격했다. "자기 몸은 깨끗이 씻으면서 주변은 지저분하지?"
동생은 언니를 몰아세운다. "언니는 치우는 건 잘하면서 근데 왜 안 씻어?"
둘 다 할 말이 없고 말았다. 둘 다 안 치우고 안 씻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동생은 철저하게 실용적으로 자기 몸을 깨끗이 관리했으며 주변을 무신경하게 방치하는 편이라면, 언니는 자기 몸은 게으르게 방치하고 주변을 쓸 데 없이 신경 썼다. 우리는 서로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서로에 대해 불평을 하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그걸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알았다.
문제도 많고 서로에게 불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매였다. 일부분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있지만 그 일부분을 제외한 다른 모든 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자매였다.
우리는 서로의 좋은 점들도 많이 안다. 내가 동생을 좋아하는, 어쩌면 존경하는 이유는, 동생은 가장 가까이서 나를 보는 사람으로서 또한 가장 객관적으로 봐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동생은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알려주곤 했다. 가끔씩 나는 미처 몰랐던 내 습관 같은 것.
빨래 습관도 그중 하나였다. 그동안 빨래를 널 때마다 항상 색깔별로 널곤 했는데, 이건 강박에 가까운 것이었다. 참 비실용주의자답게, 동생이 아무렇게나 빨래를 널어놓으면 나는 그걸 다 빼내서 다시 색깔별로 맞춰 널곤 했다. 그걸 그냥 놔두고 있기가 너무 힘들다는 이유 때문에. 근데 난 그게 습관인 줄도 모르고 있었지. 그저 색깔별로 해 놓고 나면 기분이 좋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그게 습관이었구나.
다시 만난 동생과 언니, 다시금 함께 부대끼고 살게 된 우리. 서로에게 불평도 하고 잔소리도 하지만 딱히 서로 터치할 생각은 없는 자매다. 우리는 그동안 얼굴을 보지 못하고 지내왔고, 좀 더 각자의 모습으로 특유의 언니 동생이 되어 있었다. 장점도 두드러지고 단점도 두드러져 보인다. 하지만 서로 지적하면서도 서로의 다른 점을 칭찬하고 인정할 줄 안다. 우리는 어느새 꽤 커버린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