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역사부터 아파트의 미래까지, 이 공연은 가히 두산인문극장 아파트 시리즈의 집대성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연 시작 전 30분, 끝난 후 15분
무조건 이 공연을 보러 갈 땐 30분 전까지 일찍 와야만 한다. 그때부터 이미 공연은 시작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모든 것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시작 전부터 우리에게 말을 걸고, 곳곳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공연이 시작되고 난 뒤 또다시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배우들이 여기저기에서 우리의 시선을 빼앗는데,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긴장감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명, 소리, 벽 곳곳의 영상들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한다. 땅바닥에 주저앉고 하늘 위를 쳐다보고 양 옆을 두리번거리며 공간을 구석구석 탐험하게 되고, 심지어 우리는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처럼 공간에 동화되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이곳에서 단순히 관람객이 아니라 '포스트 아파트'의 입주민이다.
'다원'이라는 복합장르
이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연극이 아니다. 공간 그 자체로는 전시회장 같은 느낌도 들었고 시리즈 영상, 안무 퍼포먼스, 인터뷰, 심지어 중간에 강연까지... '모든 게' 들어 있었다. 굳이 장르로 말하자면 '다원'이라는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장르라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
(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영상.
베란다, 욕실, 거실 등 아파트를 형상화하는 곳들은 대부분 다 구현되었는데, 빠진 게 있다면 부엌이었다. 부엌 공간은 대신 영상에서 구현된다. 음식을 썰고 커피를 내리고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아파트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는 동시에 우리의 일상을 상상한다.
또한 영상은 자연스레 레이어를 덧입히면서 공연을 더욱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허허벌판에서 폐허처럼 남겨진 아파트와 인물들의 영상을 보면서 마치 상상 속 아파트, 우주를 유영하는 느낌이었다. 바로 연이어 배우들은 춤을 추고 그들은 영상 속에서 금방이라도 빠져나온 것 같았다. 장주지몽. 내가 꿈을 꾸는 것인가 나비가 꿈을 꾸는 것인가. 영상은 그런 느낌이 들게 했다.
(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소리.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안대를 들고 간다. 그리고 공연 도중에 우리는 안대를 끼고 무언가에 집중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소리와 진동이었다. 사실 소리는 진동이기 때문에 소리만이라고 해도 맞겠지만 내가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건 온몸이 감당해야 했던 진동이었다.
마치 공사장에서 들리는 듯한 투박하고 거친 소리들이었다. 우리의 아파트가 건설되고 또 무너지는 것을 소리로 표현됐고 이미지들은 감정으로 치환되었다. 중간에 무척 큰 소리가 들리기도 했는데, 그런 굉음은 엄청난 진동으로 다가오면서 붕괴와 해체의 느낌이었다. 안대를 끼고 있어서 더욱더 불안하고 무섭게 느껴졌다.
이 소리들은 어디서 와서 우리를 흔들고 가는 것일까. 우리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마침내 안대를 벗어낼 때, 우리는 존재하고 있었단 사실을 확인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무언가 우리를 가로막는 두려운 감정들을 벗어던지면 객관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연극.
배우들은 연극을 한다. 마치 옴니버스 영화처럼, 어울리지 않는 각각의 장면들이 어우러진다. 아파트에 살면서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것들, 그리고 우리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야기, 또는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들을 말해주고 있었다. 관객에게 말을 거는, 그래서 우리는 얼떨결에 대답을 하고 마는 재밌는 연극이었다.
특히 '고독사 보험'이라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상상을 펼쳐 보이는 것이 신선했다. 정말 이런 게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물고 이것이 연극으로만 끝나지 않겠다는 연출의 의지(?)가 느껴졌다.
(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안무. 상당히 인상 깊었던 것이 바로 안무였다. 꽤나 추상적이었지만 너무 어려워 보이거나 인체를 기형적으로 변형시키거나 해서 우리를 부담스럽게 만들진 않았다. 그저 긴장감 있게 짜임새 있게 동작을 해냈을 뿐인데 기하학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내 짐작으론 이 안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따로 또 같이'가 아닐까 한다. 마치 아파트가 그러하듯 개개인 인물들을 조합함으로써 공동체 결합구조를 몸으로 실험하는 느낌이었다. 프랙털 구조를 보는 것처럼 한 명 한 명이 주인공이었고 그들은 모여서 또 다른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특히 무언가 말하고 있다기보단 감정을 보여준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파트'를 두고 우리가 느끼는 감정ㅡ슬픔, 기쁨, 외로움 등 우리의 감정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기에, 때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이렇게 몸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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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포스트 이해=상상하기
다만 감정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이해를 높이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솔직히 말해 이 공연을 한마디로 정의하거나, 단번에 이해하거나, 이런 것들은 불가능할 것이며 적어도 힘들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 공연의 의의는, 이해를 넘어서 상상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바로 우리 자신의 아파트 이야기를 상상하게끔 하는 것.
공연이 끝난 후, 우리는 펜을 받는다. 내가 생각하는 아파트의 미래를 꿈꾸고 그것을 계단이나 바닥 등 우리가 속해있던 공간에 쓸 수 있다. 우리는 보고 듣고, 참여하고 또 만들어가고, 앞으로의 우리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개개인의 아파트 연출가가 되었다.
놀랍게도 공연이 끝난 후에도 평상에 앉아 퍼포먼스를 하는 배우들. 아직 공연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얼얼한 상태로 바깥을 나오는데, 그 여운마저 용납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 끈질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로, 노란 평상을 보면서 재미있다 생각했는데, 그걸 설명하는 정이삭 건축가의 설명도 흥미로웠다.
(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이 공연은 '본다'라고 말하기보다 '경험했다'라고 말하고 싶다. 아파트에 관한 우리 모두의 경험을 타인의 경험으로 소화하고 또다시 우리들의 경험으로 바꾸는, 무수하게 밀려오는 밀물과 썰물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아파트를 두고 할 수 있는 모든 상상력을 구현하려고 했던 욕심 많은 공연이기도 했다. 눈을 감고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만지고 두 발로 걸으며 느낄 수 있었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사로잡는 감각들의 향연이었다.
포스트 아파트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충격적인 느낌을 간직하며 남겨진 우리의 주변에서 상상의 실마리를 잡는 것이다. 공동체, 가족, 개인, 만남, 생활, 산업, 돈, 욕망, 제약, 감동, 절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