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갤러리 <Our Paradise, 아마도 멋진 곳이겠지요> 리뷰
처음 갤러리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턱 하니 어느 거대한 구조물에 가로막혔다. 왼쪽으로 가야 할지 오른쪽으로 가야 할지 모르고 멈칫하고 서 버렸다. '전시'라고 해서 탁 트인 공간에 벽에 걸린 페인팅 또는 곳곳에 조형물이 가지런히 놓인 풍경을 상상했다면, 앞서 나와 같이, 살짝 당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왼쪽 편 안내데스크에는 흰 A4용지로 된 유인물이 놓여있었다. 거기에는 전시 품목별로 숫자가 매겨져 있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번호를 하나씩 따라가며 작품을 감상했다. 마치 보물지도를 보고 보물찾기 하듯 작품을 찾아내며, 몸소 재미를 체감할 수 있던 전시였다.
이용주, 아파트-경(景)
처음부터 나를 당황하게 했던 작품, 바로 아파트를 묘사한 커다란 하얀 구조물이었다. 거대한 물결, 긴 화선지처럼 늘어서 있는 한 폭의 풍경. 빽빽하게 나 있는 작은 창들은 비록 그것들이 조금씩 다르게 생겼더라도 반복되는 형상처럼 보였다. 아무리 개성을 가지려고 해도 결국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비슷해 보이는 아파트의 한 가구 가구와 닮았다.
이 조형물은 뱀처럼 유연하게 자리를 잡으며 공간을 나눴다. 8자를 그리며 동그랗게 오목하게 파인 두 공간은 서로 맞닿아 있었지만 넘어갈 수 없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두 개의 8을 그리며 구획하자 갤러리 공간이 어느새 네 군데로 나뉘어 버렸다. 한 지역을 이렇게 구분 지음으로써 그 속에 있는 나는 어디에 있든 안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 동시에 막혀버린 듯한 단절감을 느꼈다. 어쩌면 아파트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파트 단지가 나누어버린 안과 밖은 우리에게 소속감을 주기도 하지만 밖에 있는 이들에겐 배타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금방이라도 멈춘 뱀이, 구조물이 다시 살아 움직일 것 같았다. 움직이는 동시에 새로이 공간을 구분 짓고 새로이 풍경을 만들어 낼 것이다. 각기 다른 세대가 한 데 모임으로써 결국에는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진다. 아파트라는 거대한 물결이 점점 더 그렇게 진화하고 있다는 걸 표현해낸 것 같았다.
황문정, 무애착 도시-소실점
턱 막히는 느낌은 물리적일 때뿐만이 아니었다. 갈고리가 끄집어 올리는 한 뭉텅이의 '이것'을 보자, 나는 어떤 감정이 턱 하고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반쯤의 절망과 반쯤의 놀라움이었던 것 같다. 이것은 녹색의 천, 내 짐작으론 자연의 한 꺼풀을 벗겨내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었고 그 포착된 순간에 시선의 발을 담근 나는 또한 멈추어버렸다.
그 뒤에 있는 풍선 같은 '저것'은 또 뭘까. 의뭉스럽기 짝이 없는 저것은 인간의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자연을 담보로 풍선처럼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다. 편리한 도시에서의 삶은 자연을 벗겨내고 이루어낸 것이다. 우리는 고마운 줄 모르고 편안함을 당연시 여기며 어떤 희생을 도외시하며 그저 뒹굴거리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런 것 같다.
작품의 이름은 무 애착 도시-소실점이다. 멀리서 바라볼 때 평행한 두 직선이 한 점에서 만난 것같이 보이는 점을 말한다. 이 작품은 자연과 도시라는 두 상징을 한 시선에서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하는 듯해 보였다. 객관적으로 본다는 건 낯설게 보기의 또 다른 말이다.
구지윤 연작
설치 미술들을 온몸으로 보다가 마침내 마주한 그림들. 그것이 비록 추상화라 할 지라도 한결 편안하게 다가왔다. 친절한 제목들이 있는 것도 한몫했다.
작가가 이 그림들을 그린 시기는 다양했다. 2009년 또는 2015년에 그렸다고 했다. 아마도 아파트라는 주제를 받아 들었을 때 아마도 작가가 생각한 아파트의 이미지들을 고른 것일 테다. 감정 소모, 불면증... 작품들은 푸른빛의 암울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한 아파트에 많은 감정을 담을 수 있었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린 콘크리트>가 좋았다. 내가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인 느낌이었다. 아파트는 가치를 포함한, 감정이 깃든, 인간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김인배, 무거운 빛은 가볍다-기둥/폐허
이번 전시에서 가장 난해한 작품을 꼽으라면 이 작품이다. 참으로 오랫동안 들여다보았고 빙그르르 작품을 따라가며 360도에서 관찰해 보고 제목을 곱씹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작품의 의미는 응축되어 작품 속에서 꽁꽁 감춰진 채 나올 줄 몰랐다.
그 어떤 인간의 두상을 본뜬 것 같은 모습이었다. 기억이라 칠라치면 그것은 마치 기둥이 솟아난 듯, 그것이 폐허가 되어버린 듯 박제돼 버렸다. 빛을 품고 있지만 좀처럼 빛나지 않는다. 무엇을 그렇게 그린 것일까. 작가는 어떤 이미지를 형상화하려 한 것일까.
조익정, 아파트 뒷길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 연작이다. 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선 눈과 귀와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헤드폰을 들으면서 그림을 따라갔다. 마치 한 편의 짧은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음향, 목소리도 좋았고 먹으로 그린 그림도 인상 깊었다.
아파트 뒷길, 담배를 사던 사소한 습관과 슈퍼마켓, 그리고 학생들에 대한 기억. 아파트에 얽힌 그의 추억이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은 우리의 기억을 또한 자극한다. 옛날 내가 살던 아파트를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기억은 곧 작품이 되었다.
굵고 짧게. 이번 전시를 둘러본 나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한 느낌은 '낯설다'는 것이다. 아파트를 큰 테마로 하여 그 공간을 이미지로 형상화한 전시였다. 하지만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에게 아파트란 삶의 공간, 너무나 현실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만나게 된 이미지들이 아파트라는 건, 좀 낯설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는 작가들의 손에서 마음껏 비평을 당했다. 과거의 기억이 재구성되고 현재의 삶의 공간이 해체된 이미지로 표현되었다. 우리의 미래는 또한 일련의 작품들로 상상의 실마리를 마련해 줬다. 아마도 멋진 곳일 거라는 가정은 좀 더 쉽게 그 실마리를 움켜쥐게 한다.
지나치게 해석하려 하지 않아도 좋을 법 했다. 하지만 아직도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 서투른 나다. 또다른 관점에 익숙하지 않아 낯선 상태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나의 세계에서 이해해 보려 했다. 때론 힘들고 때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새로운 관점을 마주하는 기쁨과 어려움이 유독 대비되는 전시였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
그것이 바로 예술을 시작이자 끝일지도 모른다. 아파트를 또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고 객관적으로 또는 아주 주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감히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리기엔 현재의 이미지의 충격이 컸다. 그러나 작가들의 작품들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우리의 공간은 희망적이다. 감히 낙원이라고 이름붙일 만큼 아마도 썩 괜찮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의 공간은 현재의 관점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미지를 뛰어넘는 미래를 가져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번 전시는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는 듯 했다.
관람 시간: 화수목금 10:30~20:00 / 주말 및 공휴일 10:30~19:00 / 월 휴관
관람 장소: 두산갤러리 서울, 서울 종로구 33길 15 두산아트센터 1층
무료관람
문의: 02-708-5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