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왼쪽으로 서시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과거와 현재 비교>

by 별별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시대적 배경은 정확하게 나오진 않는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그 언저리로 추정된다. 원작소설이 1992년에 초판이 발간됐으니 적어도 그 이전 시기일 것이다. 지금과 같은 듯 다른, 아주 옛날이라고 하기엔 가까운 옛날을 그려낸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그 시대적 배경을 추정해보기 위해 몇 가지 키워드에 주목해 보았다.


녹천역


"이번에 정차할 역은 녹천, 녹천역입니다."


연극은 내레이션과 함께 녹천역에서 시작한다. 녹천역은 1호선을 연장하는 경원선의 연장으로 1985년에 개통됐다. 녹천역, 그리고 다음 역 월계역은 역 인근에 들어설 상계지구 주거민들의 교통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상계지구는 1985년 후반 착공되었고 그 전에는 평야지대였다고 하는데, 녹천역이 들어설 당시 아직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은 허허벌판이었다.


연극에서도 녹천역 주변은 온통 공사 중이었고 15분 정도 걸어야 주인공의 아파트가 나온다는 언급이 나온다. 이곳은 심지어 사람들이 몰래 내지르고 간 똥이 천지라고 할 정도로 황량한 곳으로 묘사된다.


지금의 녹천역은 연극의 배경과 많이 다르다. 녹천역 부근의 위성사진이 변화된 모습을 보면 옛날과 달리 중랑천 부근에는 상계지구의 아파트 단지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허허벌판에서 아파트 단지로 상전벽해처럼 바뀐 녹천역에 관한 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의 포스팅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인스타그램)



수족관


연극에서는 "수족관 하나 정도는 있어야 명색에 아파트" 같다고 하는 아내 미숙의 대사가 나온다.


1980년대에는 서울 도심에 대형 빌딩들이 들어서면서 63 빌딩 '63 씨월드' 등 대형 수족관이 생기던 시절이었다. 이 시절, 집집마다 수족관을 설치하고 열대어를 놔두는 게 유행이 되었으며, 집 안에서 '가든'을 꾸밀 수 있는 수족관은 부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다. (출처: 『한국의 디자인. 02, 시각문화의 內密한 연대기』, 1980년대, 수족관, 향수의 편린 혹은 욕망의 사물 - 김진경, 2008)


애지중지 아파트를 갖게 된 준식과 미숙. 이곳에 수족관을 설치하는 것은 남들 못지않게 살고 싶은 마음, 어엿한 중산층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은 허영과 욕망을 말해준다. 그래서 미숙은 몇 번이나 준식에게 집에 오는 길에 수족관을 사 오라고 채근한다.


연극의 무대는 때때로 그 자체로 수족관으로 묘사되는데, 이것은 아파트라는 공간이 욕망의 공간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중요한 장치가 되기도 한다.

(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인스타그램)
아내의 부탁대로 수족관을 사 들고 오는 준식 (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마치 수족관을 연상케 하는 무대 연출 (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급사


주인공 준식은 급사에서 출발해서 교사까지 된 인물이었다. 동료 교사들은 그를 향해 급사에서 출발해 악착같이 올라왔으니 나중에 교장까지 돼라며 '급장'이란 멸시가 깃든 별칭으로 그를 부른다.


'급사'란 본래 일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관청이나 회사, 가게 따위에서 잔심부름을 시키기 위하여 부리는 사람을 말한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순화어 자료집을 발간하여 급사를 '사환' 또는 '사동'이라는 말로 순화하길 권장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어딜 가나 볼 수 있었던 사무보조 사환(혹은 잔심부름꾼 아이)은 사무 자동화의 영향 때문인지 요즘에는 많이 없어졌고 이를 사환, 또는 사동이라 부르는 경우도 거의 없어졌다.


'급사' 용어 순화 이력 (출처: 국립국어원)
: 국어순화자료 제1집(1977) → 문교부, 국어순화자료-학교 교육용(1983) → 국어순화자료집-행정(1992) → 국어순화용어자료집-일본어투 생활 용어(1997)
급사에서 교사가 된 준식 (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전교조


이 연극에서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을 꼽으라면, 그리고 처음에 봤을 때 이해가 되지 않았던 장면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다. 준식이 교사로 일하는 학교에서의 어느 풍경이었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교사들은 왼쪽으로 서 주시기 바랍니다.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학급문집이나 학급신문을 내는 교사,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 반 학생들에게 자율성, 창의성을 높이려 하는 교사, 직원회의에서 원리 원칙을 따지며 발언하는 교사, 아이들한테 인기 많은 교사…."


특징지운 교사들을 호명할 때마다 준식과 동료 교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왼쪽으로 또는 오른쪽으로 비켜선다. 방송이 끝나자 교장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제 왼 편에 위치한 교사는 전교조에 가입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장면을 이해하려면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교조 교사'를 식별하려고 하는 1980년대 말 시대적 상황, 누가, 왜 전교조를 말하는가?


- 전교조의 시작


이승만, 박정희를 거쳐 독재정권이 서슬 퍼런 시절, 공교육은 반공사상 등을 주입시키기 위한 통로로써 기능하고 있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 거세지는 동시에 교원들 또한 정권의 시녀 역할을 그만두겠다는 교육 민주화 선언을 했고 1987년 전교협(전국 교사협의회)을 설립했다. 그리고 1989년 5월 28일, 정부의 감시 속에서 어렵사리 연세대학교에서 전교조(전국교직원 노동조합)가 정식으로 출범을 선언했다.

(이미지 출처: 한겨레 신문)


전교조는 출범 직후부터 불법단체로 간주되었다. 문교부는 일선 교육청에 ‘전교조 교사 식별법’이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하지만 전교조 교사라고 특징된 교사들은 그야말로 '참교사'의 면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부는 역설적으로 전교조 교사들이야말로 참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공인해준 것과 다름없었다.) 이렇게 '식별' 및 '색출'된 교사들은 전교조 탈퇴를 강요받고 탈퇴각서를 쓰지 않은 교원들은 해직 징계를 받았다. 연극은 이러한 상황을 녹여내어 전교조 탄압의 역사를 드러내고 있었다.


1989년 문교부> 일선 교육청 공문 내용 (출처: 신동아 1989년 7월호)


- 이창동과 해직 교사들


시대적 배경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극의 원작 소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를 쓴 원작자 이창동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창동은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유명하지만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신일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한 바 있다. 당시 이 학교에선 동료 국어교사인 이수호(현 전태일 재단 이사장)가 전교조 가입으로 구속됐으며, 재학생들이 전교조 동조 시위를 펼치는 과정에서 전고협이 태동한 곳이기도 하다. 그가 실제 보고 듣고 경험한 전교조는 물론 주변에서 해직된 동료교사들이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덧붙이자면, 훗날 김영삼 정부는 전교조 탈퇴를 전제로 해직교사들을 복직시켜주었다. 생계에 어려움을 겪던 전직 교사들은 대부분 이를 감수하고 복직을 했다. 전교조는 김대중 정부 들어서 1999년 7월에 이르러 비로소 합법화되었다. 합법 지위를 가지게 되자 전교조 총조합원이 한때 9만 명에 이르게 될 정도로 대중적인 조직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다시 2013년 박근혜 정부는 해고 교사가 가입돼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의 합법적 지위를 박탈했다. (하지만 해고 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이나 활동은 국제기준(ILO 협약)이나 노동조합법 취지로 봤을 때 문제 될 게 없는 부당한 처분이었다.)



- 전교조 설립 이후


전교조 교사들의 '참 교육' 운동은 교단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전교생 애국조회 등 전체주의적인 행사가 사라지고 교직사회에 만연했던 촌지 봉투도 점차 자취를 감췄다. 학생들에 대한 체벌 등 교사들의 폭력행위도 없어지고 학생 자치 활동, 동아리 활동을 활성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아직도 문제들은 남아있다. 1989년 전교조 해직교사들은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어떤 실질적인 보상은 없었다. 전교조의 합법적 지위를 회복하는 문제도 남았다. 일선에서는 40~50대 전교조 1세대 회원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20~30대 젊은 교사들의 참여를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 그 시절 평범한 교사 준식


'녹천에는 똥이 많다' 연극에서 주인공 준식은 비록 교사지만 교육현장에서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하는 인물로 나온다. 교장은 그를 따로 불러 전교조같이 보이는 교사들을 보면 바로 보고하라고 말하고 준식은 이에 끄덕이며 복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학생 운동을 하며 도피생활을 하는 이복동생 민우가 권력에 저항하는 인물로 그려졌다면, 준식은 현실에 순응하는 소시민을 상징한다. 어쩌면 권력이 대상화하는 '(개돼지와 같은) 민중'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그려낸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연극 속에서 몇 가지 중대한 심리적 변화를 겪으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끼곤 한다. 전교조 동료 교사가 은근한 따돌림을 받는 모습을 불편한 눈으로 관찰하는 모습이라든지, 학습교재 회사에서 교장에게 뇌물로 주고 교사들이 함께 나눠가진 돈을 요정(술집)에서 미련 없이 뿌려 버리는 행동이라든지, 이런 장면들로부터 준식이 점점더 '무언가 잘못돼 가고 있는 느낌'을 받고 있다는 걸 유추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 녹천에 깔린 똥을 밟으며 울부짖는 준식. 그 똥은 학생 운동 전력으로 쫓기던 민우를 그를 쫓던 경찰에 팔아넘기고 뒤늦게 일말의 가책을 느끼고 도망치다가 밟은 것이었다. 만약에 준식이 내면의 갈등을 좀 더 적극적인 의지로 나타낼 수 있다면 과연 어땠을까? 준식은 민주화라는 가치를 좀 더 자신의 것으로 깨닫고 학교에서도 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물로 변화할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인스타그램)



- 연극 이후, 또다른 준식 상상하기


나는 감히 상상해 본다. 준식은 선택이라는 걸 한다. 그는 뒤늦게라도 민우를 이해하기 위해, 교장의 은근한 멸시에 대항하기 위해, 지금껏 몰두했던 먹고살기의 바쁨에서 벗어나 좀 더 넓고 크게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는 교사라는 직업에 좀 더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선택을 한다.


내가 상상하는 준식의 또다른 모습은 어쩌면 준식이 '전교조에 가입하는 것'으로 형상화될 수 있을 것이다. 급사출신이지만 교사로서의 지위를 스스로 보장하려하는 노력을 한다면 자신의 직업은 열등감의 근원에서 자신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전교조를 통해 사회 부조리에 눈을 뜬다면 민주화라는 또다른 이상을 꿈꿀 수 있다. 아파트와 수족관, 자신의 안위 말고도 더 큰 야망을 갖게 된다면 아내 미숙은 그런 준식을 존경하며 따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한 번의 선택으로 그의 인생은 통째로 바뀔는지도 모른다.


물론 준식이 일생동안 전념해온 삶이 거짓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하지만 연극에서 그는 민우의 등장과 아내 미숙의 변화로 삶에 회의를 느끼고 현재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 속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끊임없이 갈등했다. 열등감으로 점철된 과거의 자신을 체념하고 계승할 것인가, 아니면 혐오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것인가, 연극은 끝났지만 준식은 반드시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할 것이다.


준식의 삶은 현실에 반쯤은 체념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 그래서 나는 연극 이후 준식의 모습을 상상해볼 때 감히 그의 주체적인 의지가 깃든 삶을 그려 보고 싶다. 준식은 어쩔 수 없는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인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가능한 그의 미래를 꿈꾸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꿈꾸는 것일 테니까, 준식이 더 큰 이상을 꿈꾸게 되길 바란다. 그 말인즉슨 나 또한 더 큰 꿈을 꾸고 한 발짝 나아가길 바란다는 말이다.



- 덧붙이는 말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에 나오는 한 장면 덕분에, 시대적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 전교조를 찾아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전교조의 역사는 민주화 운동과 결을 같이 하고 있었다. 비록 1980년대 연극의 배경처럼 교사들의 교권을 침해하는 독재정권은 없어졌지만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서도 국정교과서 제작 등 공교육 현장에 정권의 입김을 불어넣으려는 시도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전교조는 교사들이 올바른 교육환경을 수호하고 자신들의 지위를 바로잡기 위한 단체의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서 필요하다. 2019년 5월 28일 전교조 창립 30주년이 되는 해를 맞이하여, 전교조의 법적 지위를 다시 회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을 비롯한 교사들이 뭉쳐 노력하여 우리나라 교육이 더욱더 발전할 수 있기를 염원해 본다.


(이 글은 아래 링크들을 참조해서 썼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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