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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Mar 09. 2020

미국 여행 준비에 토익점수는 필요 없었다

본토에서 영어를 쓴다는 건


영어. 미국에 가면서 가장 걱정했던 게 영어다. 정확히 말하면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걱정했다기보다 영어를 못한다고 무시당하지 않을까 그게 제일 걱정이 됐다.


내 영어실력이란 잘하는 것도 못 하는 것도 아닌 수준이다. 공인 영어 성적은 1년 전, 토익을 쳐서 900점 중반대 정도. 외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미국인 봉사자들도 많이 만나고 그래서 어째 저째 일상 대화 정도는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정치나 문화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하려면 말이 안 나와서 답답하긴 했지만 말이다.


미국행 티켓을 끊자마자 영어공부에 돌입했고 그건 무조건 회화 중심이었다. 그때까지 세트로 네 권이나 사놓고 손 놓고 있던 <일빵빵 영어회화> 책을 급하게 보기 시작했고 패턴을 외웠다. 이주일 전부터 공부하다 보니 1, 2권까지는 공부할 수 있었다. 입국 심사할 때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써 놓고, 음식점에서 호텔에서 사용할 법한 질문들을 준비해 놓았다. 그렇게 영어공부에 '어느 정도'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러나, 오산이었다.



아예 들리지 않았다


 잔뜩 쫄기 시작한 곳은 다름 아닌 한국 인천 국제공항에서였다. 비행기 체크인을 할 때 델타 항공사 직원으로부터 영어로 질문 세례를 받았는데, 출발할 때 승객들에게 유독 까다롭게 질문을 하는 것 같았다. 미국 내 연락처, 소지품 등에 대해 사무적이고 딱딱하게 질문하는 태도는 경찰 앞에서 심문받는 것마냥 듣는 사람을 주눅 들게 했다. 그 뒤로 출발 게이트에서부터 항공기를 타고 가면서, 그리고 마침내 미국에 도착하기까지 영어로 질문을 받고 영어로 안내 방송을 듣는 일들이 벌써부터 소화가 안 되는 느낌처럼 답답하게 느껴졌다. 속으로 '이거 완전 큰일이다'라고 생각했다.


영어 리스닝은 사실 걱정하지 않았다. (그놈의) 토익에서 리스닝만큼은 만점을 받았기 때문에, 차라리 스피킹을 걱정했지 발음 걱정, 현지에서 쓰는 표현 걱정에 회화책만 읽기 급급했던 것이다. '설마, 안 들리기야 하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필 처음으로 도착한 곳이 미네소타주였는데 거긴 아시아계가 5%도 되지 않고 중부내륙 미국 본토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발음이 너무 빨랐고, 아니, 빠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슨 방언을 듣는 것 같았다. 공항에서부터 시작된 영어 리스닝은 생각보다 절망적이었다. 집중하려고 할수록 더욱더 들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집중해봐도 그건 내가 알던 리스닝 테이프에서 나오는 영어가 아니었다. 길거리에서, 식당에서, 라디오에서, 아무리 귀를 기울여봐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느낌적인 느낌인 건지, 미네소타에서 미국 사람들은 더 빨리 말하는 것 같았다. 그곳 사람들은 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배려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에서 영어란 국제 언어로서 기능하는 의사소통수단이 아니라 그저 자기들끼리 잡담을 주고받는 수단이었으니까.


얼마나 영어가 안 들렸는지 하나 예를 들자면, 마트에서 장을 보고 계산을 하는데 점원이 미친 듯이 빠른 말로 (체감상으로는) 한 문단 정도의 말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무슨 자기네 규정을 설명하는 것 같은데 뭔가를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뭐 뭐 뭐 뭐지? 아는 단어 plastic bag? 아아 이것도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그랬던 것 같았다! 내 어림짐작은 맞아 들었고 그렇게 겨우 비닐봉지를 하나 받아오면서... 내가 얼마나 어린아이 같았는지. 마트 출구를 찾지 못해 뺑뺑 돌고 헤매다가 겨우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게 꼭, 영어의 출구를 찾지 못하는 내 모습 같았다.



정말... 이방인은 '환영'받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던 미네소타에서의 첫 주.



칭찬받는 아이처럼


하루하루가 가시방석 같았다. 3주를 미국에 있으려고 왔는데, 이제 미네소타는 겨우 시작이었는데 그 시작이 잘못된 것인 걸까 하루하루가 우울했다. 자신감은 뚝 떨어지고 매일 식당에 나가서 사람들과 짧은 대화도 기피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데...


분명 편한 순간에는 말이 곧잘 나올 때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동생이 소개해준 친구가 있었는데, 미네아폴리스 공항에 차로 데리러 나와주었던 정말 고마운 친구였다. 교포였지만 한국말을 할 줄 아는지 모르고 처음에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내가 책에서 보았던 어떤 문장을 기억해 내서 대화를 이어나갔는데(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친구가 그러는 것이다. "Oh, your English is good." 아마도 그 친구는 또 내가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작은 오해는 서로 대화와 칭찬을 부르고. 그땐 그 영어 잘한다는 칭찬이 무척 기분이 좋았다.



네바다에서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여기도 동양인이 없기로는 유명한 미국에서도 외진 곳이다. 한 식당에서, 주인의 커다란 얼굴이 그려진 곳이라 식당 주인이 계시냐~ 직접 보고 싶다~ 너무 맛있다~ 웨이터 아주머니랑 그런 얘기를 하는데 나중에 그분이 그러는 것이다. "I didn't know Korean can speak English well." 처음엔 내가 한국인인지 어떻게 알았지? 그런 놀라움이 들어서 반갑고 기쁜 마음이 들었고, 아무튼 으쓱해져서 고맙다고 말했다.



왠지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그런데... 그렇게 영어를 잘한다고 칭찬을 받으면, 그게 또 한편으론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이다. 왜 나는 이렇게 좋아하는 거지? 왜 영어를 잘하는 게 칭찬이 되는 거고 왜 나는 그들에게 고마워하는 거지? 왜 기분이 찜찜해지는 거지? 그렇게 불쑥 내가 한심해지는 거였다.


그들의 말에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아시아,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모두 영어를 못할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영어를 잘하는 건 미국인 그들만의 특권이라는 생각. 아마도 그들은 영어라는 진입장벽을 세우고 그곳을 넘어오려는 사람들을 평가하고 시혜와 같은 칭찬을 내려주는 것이다.


어느 공항에서 처음 보는 아주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계셔서 떨어진 짐을 내가 주워드렸는데, 고맙다며 막 무어라 무어라 블라 블라블라 말씀이 길어졌다. 갑자기 펼쳐진 만담에 솔직히 잘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당황해하고 있었는데, 아주머니는 알아차리고는 실망하는 표정으로 "Ah...... you cannot understand English?"라고 하는 것이다. 그때 그 표정이 너무 안타까워 보여서 내가 다 안쓰러울 정도였다. 나는 굳이 내가 영어를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고 그냥 웃으며 자리를 피했다.


그때 느꼈다. 그 아주머니의 표정은 나에게 이상한 반감이 들게 했고, 그것은 다름 아닌 내 안에 잠재된 부끄러운 열등감을 들춰냈다. 나는 왜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동정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반문하게 됐다. 영어를 못하는 동양인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에 대해서, 굳이 영어를 잘한다는 '인정'을 받을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 결론 내리게 됐다. "아니"라고. 


영어를 잘한다는 칭찬이 더 이상 칭찬처럼 들리지 않을 것이다. 영어를 하고 안 하고는 나의 선택에 달렸고, 내가 영어를 잘하고 못 하는 것 또한 그들의 평가와 상관없이 나의 의지에 따를 테란 걸 나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그러고 보니 그동안 내가 만난 미국인 친구들은 참 좋은 친구들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내가 그들의 언어로 말하려 노력한 만큼 고마워했다. 항상 기다려주고 들어주고 고쳐주고. 영어를 못한다고 자책하면 그제야 "No~ you're good"이라며 격려를 해줬다. 그들의 칭찬은 격려로 들렸고 언제든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줄 수 있다는 우정의 표시였다. 그래서 나는 영어를 잘 못하더라도 더욱 열심히 영어로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영어에 관한 한 미국인 친구들 떠올리면  영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속 깊은 우정을 나누고 싶어서라도, 이렇게 내가 미국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이야기나 영어에 관한 나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을 전해주고 싶어서, 더 자세히 말해주고 싶어서, 그러니까 내 말은 미국 친구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어서'. 적어도 그것만큼은 내가 영어를 미워하면서도 공부해야 할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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