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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Mar 05. 2020

캘리포니아에서 경험해버린 인종차별의 순간들

평범한 미국 여행기

얼마 전 겨울 2월 중순까지, 나는 3주 동안 미국 여행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 타이밍 좋게 미국에 다녀온 것인 듯하다. 하지만 그때 미국을 여행하면서, 나는 미국에 대한 환상과 기대에도 불구하고 그 기대를 저버리는 일상들로 하루하루가 혼란스러웠다. 도무지 심란한 마음은 당시에 내가 남겼던 SNS 포스팅에서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In my thought, the United States is not a good place to travel.
내 생각에, 미국은 여행하기에 좋은 나라는 아니다.

Too far and people are arrogant (about foreigners who speak English).
너무 멀고 사람들은 (영어를 쓰는 외국인들에게) 오만하다.
 
But why does everyone want to go to America (and even want to live there)?
하지만 왜 모들 미국으로 떠나려 하는가, 심지어 살고 싶어 하는 걸까?

The answer is in that difficulty.
정답은 '어려움'에 있다고 본다.

Because the US is far away and it is hard to get along with Americans.
머나먼 곳,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들. 그러한 어려움과 희소성 때문인 것이다. 

ㅡ Besides, as long as English and Dollar dominate the world, the American dream will still exist. 영어와 달러가 이 세상을 지배하는 한, 아메리칸드림은 존재한다.



문제는 캘리포니아에서, 그것도 하루 동안에 두 건이나 나를 '덮친' 사건들이 벌어졌다.


호텔에서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면서 짐을 잠시 맡겨놓고 점심을 먹고 오려고 했다. 짐을 보관해주는 직원이 나에게 뭐라고 말했다. "○○?" 처음에 내게 말을 건 줄도 모르고 있다가 또다시 "○○?"라고 말을 하는데 그제야 내게 뭔가 물어본 것이란 걸 알고 놀래서 "What did you say?"라고 물었다. 그러자, 눈알을 팽그르르 돌리면서 "How many!"라고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순간 당황해서 "Ah, two!"라고 말을 하는데, 갑자기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좀 더 느리게 말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설마 How many를 못 알아들었을까. 아니 못 알아들을 수도 있지. 관광객이라면 영어를 아예 못할 수도 있는 상황도 고려해야 하지 않는가. 짐을 맡기고 나오면서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거리에서


그렇게 혼자 심각하게 호텔을 나오며 걸어가고 있는데, 날씨 좋은 날, 항구 주변에는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여유롭게 산책을 하고 있었다. 나도 그 속에 섞이면서 금세 기분이 풀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들리는 소리, "FXXXin go home, China!" 이런 말이 분명 내 귀에 꽂히는 게 아닌가. 방심하고 있었는데 설마, 설마, 나에게 그 말을 한 걸까.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순간 지나쳐간 그 사람을 뒤를 돌아 쳐다봤다. 나는 흥분해서 열이 나는데, 그놈 같은 사람은 그 말만 던지고 유유히 가는 것이다. 그는 대낮에 비틀거리며 지나가는 행색이 초라한 사람이었다. 노숙자인지 술에 취한 건지 약을 한 건지 모를 그를 붙잡고 항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Fisherman's Warf. 그곳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양인뿐만 아니라 라틴, 유럽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들이 붐비는 대표적인 관광지였다.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동양인에게 집으로 가라는 욕을 하고 있었다. 중국인인 줄 오해하고 나에게 욕한 거지만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고 해도 그들에게서 돌아올 대답은 뻔하다.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그게 그거지~) 


분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래서 더 동양인에 대한 혐오가 확산된 것 같았다. 그리고 바이러스 때문에 이런 한국인들이 겪는 인종차별 사례가 유럽, 미국 등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들었다. (이렇게 억울하게 인종차별 경험을 당하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무차별적 중국인 혐오에 대해서도 중국인 유학생, 관광객들이 얼마나 억울할까 역지사지의 마음이 들면서 그런 혐오가 확산되는 것 또한 바이러스만큼이나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나의 경험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영어를 못한다고 눈알을 굴리며 무시하고, go home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건 분명 인종차별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특징이 오히려 high class인 사람들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갓이다. 그 호텔 직원은 유색인종이었다. 자기가 영어를 슬랭 억양처럼 흘려 말해놓고선 영어를 못 알아듣는다고 도리어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다. 


길을 지나가며 욕을 한 그 아저씨는 말과 행동을 보아하니 일상 속에서 타인으로부터 경멸을 받았을 법한 사람이었다.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된 사람들이었다면 그런 인종차별 혐오표현을 일삼을 리 없었다. 화가 나면서도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종차별의 가해자들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돼먹지 못해' 안쓰럽다는 것이다.   


 흑인과 아시안


그런데 미국에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는 한 친구는 내가 '유색인종'이라고만 썼는데 단박에 그 사람이 흑인 사람인 것을 눈치채고는 나에게 흑인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 친구가 말하길, 아시안을 혐오하고 무시하는 사람들 중에 흑인 사람들이 꽤 있다고, (대표적인 인물로는 '리한나'를 언급했다.) 사실 흑인과 한국인이 충돌하는 큰 사건이 1992년 LA에서 벌어진 뒤로 한국인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물론 백인들 특유의 거만함은 익히 들어왔고 걱정했던 바이지만, 흑인(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이 아시아 사람들에게 우월한 감정으로 혐오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만큼 어안이 벙벙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것이다.


어떤 이의 혐오는 다른 이의 피해의식을 낳고 또 다른 차별과 혐오를 낳는다. 이처럼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낳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단지 잠시 들렀다 가는 관광객일 뿐이었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비단 아시아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런 차별 속에 사는 모든 유색 인종들이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몇 안 되는 그들 때문에


분명한 건 그들은 정말 일부 미국인일 뿐일 것이다. 이전에 내가 아는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은 사실 피스콥 봉사자들이었다. 그들은 정말 착하고 배려심 있고... 이번에 미국에 오기 전까지, 지인들로 알고 지내던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좋은 이들이었는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Hi! I wanted to say I am so sorry you had a bad experience with the American people (in Minnesota >>이건 이 친구가 잘못 안 사실). You are so kind and thoughtful... It made me sad that Americans are treating you poorly while you're visiting. You are a great person!(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려고 말한 걸까 ㅠㅠ)  Enjoy the rest of your traveling


특히 어떤 미국인 친구는 위에 언급한 포스팅을 올리자마자 이렇게 직접 사과를 하기도 했다. 다른 친구도 미안하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나의 친구들은 무턱대고 자신이 한 일도 아닌데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있었다. 정작 잘못한 건 몇 안 되는 일부 미국인들 때문이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성급한 일반화를 해 버린 나도 그 친구들의 사과의 말을 들으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안 좋은 경험은 사실이지만 나의 친절한 친구들이 너무 상처 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평범한 어느 하루에 당한 인종차별의 경험들... 이 일을 계기로 아직도 차별과 혐오가 만연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뉴스에서만 보던 그런 인종차별이 내게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 너무 순진하다면 순진했던 걸까. 교과서에서 특히 헌법에서 내세우는 '평등'이란 단어가 사실은 얼마나 무거운 숙제를 말하고 있었던 것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 성숙한 인간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실상 그렇지 못한 현실은 우리를 반성하게 한다. 



덧붙여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전 세계가 다른 나라를 입국 금지하고 다른 나라들에게 입국 금지를 당하고 있다. 바이러스 전파를 두려워한 나머지 특정 나라의 국민들을 몽땅 격리하고 감시의 칼날을 세우기도 한다. 이렇게 차별과 혐오가 난무하는 요즈음 시국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처럼 보인다. 개개인에 대한 차별을 넘어서 특정 국가, 민족, 인종에 대한 차별은 아무 이유 없이 프레임만으로도 차별이 가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위험하다. 좀 더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없을까. 아니, 이성적이어야만 한다. 혐오는 혐오를 낳고 두려움은 생각을 마비시킨다. 부디 전 세계가 바이러스로 앓지 않기를, 인종차별의 도가니로 들끓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마음은 냉정하게 행동은 조심스럽게, 그렇게 기다려본다면, 모든 게 잠잠해지고 '평화'와 '평등'이 곧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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