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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Sep 08. 2019

울지 않는 나에게

울고 싶은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

영화 ‘달콤한 인생’을 보면 스승과 제자의 대화가 내레이션으로 나온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야기 속 바로 그 제자가 된 것만 같았다. 아주 옛날, 나는 꼭 이와 같은 눈물을 흘린 적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다. 아직도 그날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체육시간에 갑자기 주룩주룩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친구들이 놀라서 웅성웅성거렸다. 급기야 체육선생님까지 오셔서 왜 우냐고 물어보셨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몇 번이고 나를 다그치셨지만 묵묵부답인 통에 그저 구석에 가서 쉬어라고 말씀해 주실 뿐이었다. 뜀틀과 매트를 모아놓은 강당 체육집기실 창고에 쭈그려 앉아 체육시간이 끝날 때까지 울었다. 그날 내가 왜 울었는지는 단짝 친구에게만 말할 수 있었다.


“왜 울어, 벼리야?”

“…….”

"왜 그래?”

“영화를 보고 슬퍼서... 울었어.”

“많이 슬펐어?”

“아니, 너무 재미있었어. 하지만... 난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런 세계에 가볼 수 없으니까.”



내 기억으로는 그 체육시간이 있던 날은 전날 밤에도 한참 울다가 지쳐 잠든 날이었다. 왜 그렇게 울기만 했는지 모른다. 이틀 밤을 꼬박 울다가 잠들었고, 한동안 영화의 후유증에 못이겨 우울한 날들이 계속되었던 것 같다. 매일 울다가 눈이 퉁퉁 부어서 일어나곤 했으니 엄마는 도대체 왜 그렇게 우는 거냐고 답답해하시고 또 걱정하셨다. 아마 영화를 보고 영화가 슬퍼서 우는 줄 아셨을 거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영화를 보고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와, 그 사실이 너무 슬펐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터널을 지나면 짠-하고 환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곳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 하지만 너무나 달콤했던 꿈. 내가 왜 울 수밖에 없었는지는 차마 어른들에겐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후로도 터널을 보면 항상 그 영화를 추억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를 읽었을 때도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새로운 세계로 발을 디딘 것을 너무나도 부러워했고, ‘해리포터 이야기’를 읽을 때에도 9와 3/4 승강장을 지나면 호그와트가 나온다는 그 마법의 세계를 마음속 깊이 동경하곤 했다. 



그때 이후로 영화를 두 번 보지 않는 습관이 생겼던 것 같다. 어쩌면 점점 더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절대로 동화 속, 소설 속, 영화 속 환상의 세계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던 거다. 현실세계는 꿈에서 깨어나면 내가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절대 피할 수 없는 곳이었다. 나란 아이는 그런 현실에 발 디딘 한낱 소녀였다는 걸 깨닫고 분수에 맞게 착실한 학생, 착한 딸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울지 않는 어른이 되어갔다.



요즘도 가끔 영화나 책을 보면서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 하지만 찔끔 한두 방울, 눈물이 눈가에 맺히는 게 다다. 그마저도 낯선 느낌이 든다. 어쩔 땐 무척 슬퍼야 하는 일인데도 별반 감정의 동요가 일지 않아 속으로 ‘왜 눈물이 나오지 않지?’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때마다 좀 서글퍼졌다. 나는 참 눈물이 많은 아이였는데.



누군가 내 얘기를 들으면 사소한 고민이라 치부할 지도 모르겠다.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울 일이 없었다는 것일 테다. 다른 고난과 역경을 디딘 사람들에 비하면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고 세상을 감사하게 살아가야 하는 마음을 가지기에 충분한 일일 것이다.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본다. 나는 무섭도록 무표정이다. 표정을 잃어버린 나에게 나는 말을 걸고 싶어진다.


‘왜 그래, 벼리야? 왜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 내 삶을 내가 선택할 순 없지만 평생 함께하는 거야. 현실을 너무 미워하지 말기를 바라.’


달콤한 인생은 못될 지라도 달콤한 꿈을 꾸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더 이상 울고 싶지 않다던 어린 시절의 나, 그리고 이젠 울고 싶어도 울지 않는 나. 너무 일찍 철 들어버린 나를 무표정인 내가 토닥여주고 있었다. 언젠가 한번 펑펑 울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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