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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Sep 27. 2020

아니, 난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

D에게 쓰는 편지



지난번 넌 내게 물어봤지. 내가 너에게 한 말, "난 이번에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다"라고 한 말이 무슨 뜻이냐고 말이야.


좋은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은 그런 거였어.


아무리 해도 나를 완벽하게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란 전제 하에,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어주지 못할 거란 얘기였어.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그런 얘기를 꺼낸 건 애써 사람 관계에서 기대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지. 애써 객관적인 시각으로 모든 걸 회의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거야.




하지만 D,


문득 내가 가장 상처 받았던 말이 생각났어. 그리고 그 말이 내가 했던 말과 비슷하다는 것도 깨닫게 되네.


언젠가 내가 좋아했던 사람에게, 그리고 말문이 닫혔던 사람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온전한 이해를 받고 싶어요"라고 말한 적 있었어. 하지만 그때 그가 했던 말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지. 내가 간절했던 만큼 그 실망감은 더 크고 깊게, 심지어 절망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


"저는 벼리 씨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요."


...... 후회스럽더라. 나는 왜 그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걸까. 그 뒤엔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내 상황이 그에게서 비롯되었던 것이란 이유가 가장 커. 그걸 다 설명하기엔 불필요한 것 같네.


아무튼 그의 그 한 마디로 우리의 대화는 완전히 끊겨 버렸고 난 그에게 미련을 가질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했던 것 같아. 그리고 다시금 마음을 단념할 수 있었지. 나 또한 객관적으로 생각할 때 사람이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여기서 그의 말은 그가 나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렸거든. 딱 거기까지였던 거야.




그런데 너에게 무심코 말한 "이번에도 난 좋은 친구가 될 수 없을 거야."라는 말은 그의 말과 닮았다는 걸 깨닫게 . 그 말에 담겼던 비겁함까지도 말이야.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게 더 이상 다가올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는 거. 그 당연한 사실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다는 단호함을 보이는 방패가 될 수도 있고 그 말을 듣는 이에게는 쓰라린 현실로 마음을 찌르는 창 또한 될 수도 있다는 거.


직장일에 지친 친구 앞에서 "네가 선택한 직장이니까 어쩔 수 없어"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그래 그게 맞는 말이지만 너무 서운한 맘이 들 수밖에 없는 건 그 당연한 사실 때문이 아니라 공감을 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친구의 모습 때문일 거야.


그래서 말인데 D, 난 내가 했던 말을 수정하고 싶어. 수정해야만 하겠어.


"이번엔 정말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라고 말이야.



너무 당연한 말로 사람을 상처 주지 않을래. 객관적인 사실을 말한다는 핑계로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을래. 설사 듣는 이(네)가 상처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난 지금 그런 말을 스스로 했다는 것 자체가 나 자신에게 상처가 될 정도로 좀 놀라고 있어. 난 그래도 최소한의 노력은 하고 싶거든.


애정이 없는 상대라면 몰라도 애정이 있다면, 사람이라면, 친구라면, 서로를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난 너와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




겨우 이 말 또는 변명을 하려고 너에게 답장을 너무 많이 미룬 게 아닌가 후회된다. 한마디 말을 하고자 함에도, 심지어 한 마디를 하지 않고자 하는 것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니. 나에게 대화를 하고 편지를 쓴다는 건 그래서 참 어려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내가 너에게 들려줄 어떤 말이 있어서라기보단, 너의 생각, 너의 느낌이 너무 궁금해서인 것 같아. 네가 내 편지를 읽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부분에서 물음표를 가지고 어떤 말을 해줄까 그걸 기대하는 게 온몸이 간지러울 정도로 너무 재밌거든.


 오늘 저녁에 학교 오는 길에 달이 참 이쁘더라. 추석이 다가오니 달이 송편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어. 너도 꼭 보았으면 좋겠다. 너에게도 잔뜩 부풀어 오른 달이 너를 그득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D야,


언제나 잘 지내고 추석 연휴도 잘 보내렴~


내가 많이 노력해서, 우리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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