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구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에게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책을 권하다

by 별별

거대한 산을 오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등반가를 두고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두려움을 아는 사람들이다.

암벽을 타면서 한 발만 헛디뎌도 죽을 수도 있다고 어느 등반가는 생각한다. 그가 내딛는 발걸음은 과감하기보단 매우 신중하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인정하고 가장 잘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다.

한 등반가가 이룩한 대단한 성취를,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밑바닥 땅에서부터 거꾸로 올려다보기. 나는 진정으로 두려움을 아는 용기란 무엇인지, 이 책 한 권으로 그러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책의 저자 이본 쉬나드는 지속 가능한 기업의 모범을 보여주는,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다. 반면에 독자인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용기 없는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지구 상 환경 위기에 대해 ‘감히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라며 자조해왔던 나였기에, 환경에 대한 저자의 신념과 철학으로 가득한 책을 읽으면서 기쁨과 전율은 물론 스스로의 무기력함에 서서히 치밀어 오르는 슬픔과 분노의 감정도 함께 느꼈던 것 같다. 아침저녁으로 앉으나 서나 언제 어디서나 탈탈 털어 읽어낸 이 책은 그야말로 희로애락으로 가득 찬 책이다.



파타고니아의 뿌리, 클린 클라이밍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기업 파타고니아 인코퍼레이티드의 설립자, 이본 쉬나드의 경영철학은 세계 유수 대학에서 연구사례로 쓰일 만큼 유명해졌다. 하지만 사실 그는 기업가이기 전에 전설적인 등반가였다.


나는 그의 일대기이자 파타고니아 기업의 현재까지를 톺아본 1장 ‘역사’를 참 재밌게 읽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요세미티의 암벽을 올랐고 심지어 청년시절 미군으로 한국에 파병되었을 때 북한산 인수봉을 오른 적도 있다고 한다.


올해 초 다녀온 엘카피탄 절벽. 이 책을 미리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요세미티의 풍경


우연찮게 올해 겨울 직접 요세미티의 높은 절벽을 목도한 적 있다. 나에겐 그저 사진 속 배경이 되었을 뿐인 산이 책 속에 삽입된 흑백사진에서는 지상 600미터 높이의 엘카피탄 절벽에서 해먹을 매달고 자는 ‘미친 일당’들의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등반에 미쳐 살던 그는 이제 낡은 대장간에서 강철을 벼리며 직접 등산장비를 만들기 시작했다. 파타고니아의 전신 쉬나드 이큅먼트의 전설적인 시작이었다. 겨울이면 장비를 만들고 여름이면 높은 산들을 찾아다니는 것을 반복하면서도 뛰어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인정받는 사업체가 됐다.


낡은 대장간에서 시작한 파타고니아의 전신 '쉬나드 이큅먼트' (출처: 파타고니아)


그런데 문득 자신이 만든 장비가 산을 심하게 훼손한다는 것을 깨닫고 초크라는 친환경 장비를 생산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카탈로그를 통해 등반가이자 소비자들에게도 ‘클린 클라이밍’을 촉구했다. ‘산에 오르거나 자연을 찾을 때는 그곳에 갔던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것이 그가 평생 자연을 대하는 태도였다.



'파타고니아'로 초심을 찾다


암벽을 타며 사회에서 전혀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 않는 것에 특별한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던 그가 지금은 존경받는 사업가가 되다니. 그 역시 평생 꿈꿔보지 못한 아이러니한 삶이다. 하지만 본래부터 사업을 하는 것에 전혀 취미도 관심도 없던 그였으니, 돌이켜보면 성장하는 기업이 저지르는 전형적인 실수들을 모두 저질렀다고 고백한다.


결국 회사 역사상 가장 슬픈 날, 직원 120명을 해고하기에 이르게 된다. 유명 경영 컨설턴트의 자문까지 받았지만 “당신은 자기가 왜 사업을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소.”라는 게 결론이었다.


이본 쉬나드는 그 말을 듣고 크나큰 충격과 깨달음을 얻게 됐다고 말한다. 그때 그가 선택한 길은 그 흔한 타 회사 벤치마킹이 아니라 초심을 찾기 위해 임원들과 함께 황무지의 바람이 몰아치는 진짜 파타고니아 산에 오르는 것이었다. 회사의 구성원들은 제어되지 않은 성장이 회사를 위험으로 빠뜨렸다는 걸 인정하고 연일 깊이 있는 토론을 했다.


그 결과 기업 파타고니아에게 가장 필요한 것, 항상 깨어있게 하고 행동하게 하는 운영지침인 ‘철학’이 탄생하게 됐다.

파타고니아의 사명(Mission Statement)

We’re in Business to save our home planet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

Our Reason for Being(파타고니아의 존재 이유)
지구 환경 위기에 대한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사업을 이용하고, 자원을 투자하고, 목소리를 높이며, 때로는 상상력을 활용하기

Core Values(핵심 가치)
‘단순함’과 ‘기능성’

Build the best products(최고의 제품)
몇 세대에 걸쳐 입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 또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로 제품을 만드는 것

Cause no unnecessary harm(불필요한 환경 피해의 최소화)
우리가 하는 모든 사업행위가 환경에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해결방안을 사회와 함께 모색하기

Use business to protect nature(환경 보호를 위한 사업)
자연과 생명의 안정과 온전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하기

Not bound by convention(새로움)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내기



파타고니아의 쉼표, 발자국 찾기

이본 쉬나드는 파타고니아를 일반적인 회사(영리법인)의 존재 이유인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사업은 수단이었지만 그 목적은 바로 지구였다. 회사가 가장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들은 제품을 진단하는 환경 평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우리는 해악을 끼치고 있지는 않은가?’ 의심했던 대로 회사가 만드는 모든 것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사실과 직접 대면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속죄했다. 그리고 진짜로 환경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필사적으로 문제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려 노력했다.


예를 들어 화학물질 없이 키운 유기농 면으로 전환하는 것으로는 ‘지속 가능한’ 제조를 위한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엄청난 양의 물이라는, 지구의 자원을 사용하는 대가로써 엄청난 비용을 눈감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환경을 소비한다는 ‘진짜 비용’을 인정하고 환경 위기를 심각하게 인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매출의 1퍼센트를 환경을 위해 당연히 기부하며 자신들을 본보기로 하여 다른 기업과 정부가 행동하기를 촉구한다. 두려움을 알고 행동하는 것은 그들이 바로 용기 있는 사람들이란 증거였다.


파타고니아의 환경 보호 활동 (출처: 파타고니아 홈페이지)


항상 반성하고 스스로의 행동을 정화하는 이러한 기업의 자세는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과연 이들은 기업인가 아니면 선과 윤리를 행하는 공동체인가. 한편 과연 나는 속죄하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어린아이들도 어지른 것은 스스로 치우는데, 나는 환경을 어지른 데에 대한 죄의식이나 책임감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만약 알고도 가만히 있다면 그것이 바로 죄다. 당장 지금이라도 행동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뒷골이 서늘해지는 순간이었다.



파타고니아의 책임감, 그리고 자신감


“우리 옷을 사지 마세요.” 파타고니아의 유명한 카피다. 튼튼한 제품을 생산하고 평생 수선비용을 지원해 줄 테니 계속 입으라는 것이다. 이는 제품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내는 것뿐만 아니라 재사용, 재활용 환경운동이기도 하다.

그 유명한 "우리 옷을 사지 마세요" 파타고니아의 광고 카피 (출처: 파타고니아)


이처럼 파타고니아는 순환하는 생태계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인간이 유기체로서 생태계의 일부인 것처럼 산업체 또한 지구 상에서 생태계의 한 부분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목표는 산업 생태학(Industrial Ecology)으로 엄연히 자리 잡은 철학적 지향점이다. 그들은 지구가 그렇듯이 기업 또한 자연스러운 성장 속도를 위반하지 않아야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고로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저자 이본 쉬나드와 기업 파타고니아는 전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자본주의와 환경윤리의 조화를 가장 용감하게 해결하려는 선의의 전사처럼 다가왔다. 뚜렷한 신념을 가진 기업가는 불가능이 가능하다고 말하며 목소리를 드높일 뿐만 아니라 각종 환경파괴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기업 철학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파타고니아 기업의 창립자 이본 쉬나드 (출처: 파타고니아 홈페이지)


나는 감히 지구를 구할 용기나 높은 산을 오를 용기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뚜벅뚜벅 앞서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 자체로 큰 힘이 됐다. 나역시 거대한 자연 앞에서 미물이긴 하나 ‘어떻게 하면 지구 상에서 행동하는 미물이 될 것인가’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 고민의 답은 아마도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나의 자리에서 작은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도록 열심히 행동하는 것이 될 것이다. 평생 동안 소비자로서 단순한 삶을 지향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끊임없이 옳은 길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민주 시민이 되겠노라 다짐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좋은 책이 곁에 있다는 것, 그로 인해 알게 된 좋은 사람들이 지구상 어딘가 가까이에 존재한다는 것. 때문에 나는 함께 나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지구를 구할 용기가 없는 이들에게 ㅡ 용기없음에 마침표를 찍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로 다시 시작할 용기를 가진 모든 이들에게ㅡ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함께할 모든 이들을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이 책을 읽게 된다면 하고 싶은 게 많아 진다. 서핑도 하고 싶고 낚시도 하고 싶다. 나는 훗날 암벽 등반에 도전하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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