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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Aug 08. 2024

내가 먹고 싶어서 차린 콩국수

우당탕탕 집밥 일기


추억의 콩물


우리 집은 여름이 되면 콩국을 만들어 먹었다. 엄마는 자주 노란 콩(백태)을 사다 두셨고 콩을 불려 놓으셨다. 얼핏 스쳐가는 그 시절 주방에서의 기억이란, 엄마가 불린 콩 껍질을 벗기시던 모습, 콩을 삶고 그것을 믹서기에 돌리는 요란한 소리들이다. 유리 믹서기에 콩을 몇 번 갈다가 숟가락으로 맛보시고는 소금을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넣으시며 나도 한 입 맛보았던 기억이 난다.


언제나 콩국을 찾으시는 건 아빠 밖에 없었다. 우리는 평소에 그 콩물이 맛있는 줄 몰랐지만, 언젠가 소도시 어느 마을에서 맛있게 먹은 기억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뜨거운 여름날, 우리 가족은 진해 웅천읍성이라는 데를 갔다. 성곽에는 커다란 정자가 있었는데 거기서 아빠는 엄마 다리를 베개 삼아 시원하게 대자로 뻗어 주무셨다. 한바탕 뙤약볕을 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근처 시장에서 목을 축이려고 보니 너무 조용한 마을이라 카페도 없고, 눈에 띄는 어느 콩물 가게만 덩그러니 있었다. 얼마였더라, 500ml 페트병 하나에 꽤 비쌌던 것 같은데... 웬 콩물이냐며 우리는 시큰둥했고 엄마는 가격 때문에 사길 망설였지만 그래도 아빠가 먹어보자고 하셔서 결국 하나를 샀다.


우리 가족은 다 같이 길가에서 내리쬐는 햇살 아래 콩물을 나눠마셨다. 아니 근데, 원래 콩물이 이렇게 맛있었나? 짭짜름하고 고소하고 시원...하다! (눈이 번쩍!) 나랑 동생은 콩물을 몇 번 더 청해 마셨다. 너무 더운 날이면 가끔 그때 먹은 콩물이 생각나는데, 지금 떠올려도 참 시원한 맛이었다.



두유 대신 콩국물


남편이 두유를 좋아하는데,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물 마시고 두유 한 팩 꺼내 마시는 게 루틴이란다. 문제는 시판 두유가 내 기준으론 너무 달다는 점이다. (공복에 탄수화물부터 먹으면 혈당이 급격히 올라간다고 해서 이점도 걱정이 됐다.)


게다가 190ml짜리 개별 두유팩은 재활용하기도 어려웠다. 남편이 먹은 멸균팩을 매일 뜯어서 잘라서 말리는 건 내 역할이다 보니, 두유를 박스 째로 먹으면 멸균팩 약 백여 개를 재활용하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이젠 좀 루틴을 바꿔볼 필요성이 생겼다.


그래서 사게 된 것이 콩국물이다. 아침에 먹기론 달달한 두유 말고, 덜 단 콩국을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가격대도 합리적이고 영양성분도 당류가 2% 미만이라서 기존 두유(6%)보다 3배나 덜 달았다. 큰 팩이라서 재활용의 수고로움도 조금은 덜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내돈내산 콩국물 추천>

왼쪽은 기존에 먹던 두유, 오른쪽은 콩국물 영양성분.


남편은 좀 낯설지만 매일 아침 콩국물을 마시게 되었다. 이게 뭐냐며, 매일 커다란 콩국물을 따라 마시는 많이 어색한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어쩌겠나. 이제 두유는 집에서 키우지 않는답니다~ 한번 먹어봐요 남편!




여름에는 콩국수


그런데 내가 콩국물을 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남편 두유를 챙겨주기 위해서라는 건 부차적인 이유였고, 사실은 내가 콩국수를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항상 콩국을 만드신 이유도 다름 아닌 콩국수를 만드시기 위해서였다. 여름이면 콩국에 국수를 해 먹던 것이 우리 집 풍경이었다. 아빠는 흰 난닝구 바람으로 국수를 삶으시고, 엄마는 콩국과 얼음을 대령하셨다. 네 가족이 둘러앉아 콩국수를 후루룩 마시듯 먹듯, 여름날 어느 이맘때 풍경. 당연했던 그 풍경이 새삼 그리워 내가 스스로 콩국수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사실 콩국물이 있으면 콩국수를 '만든다'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만들기가 쉽다. 국수만 삶으면 되니까. 다만, 콩국물을 사놓고도 며칠 동안 콩국수를 못 해 먹은 건 오이가 없어서다. 왠지 오이를 고명으로 꼭 올려야 할 것 같았기에, 드디어 오이를 사놓고 콩국수를 차릴 수 있게 되었다.


<초간단 콩국수 레시피>

1. 재료 준비 - 콩국물(시판용), 국수, 오이!

2. 국수 삶기 - 소면 2인분에 약 5분 삶고 찬 물에 헹군다. (나는 소면으로 삶았지만 아빠는 중면을 좋아하셨다. 중면으로 콩국수를 만들면 음식점에서 파는 것 같은 면 맛이 난다.)

3. 차리기 - 그릇에 콩국물을 붓는다 → 삶은 국수를 올린다 → 오이를 고명으로 올린다. (깨 등으로 데코 해 주어도 좋다.)



파는 콩국물에는 이미 간이 많이 돼 있어 따로 소금 간을 할 필요가 없다. 콩국물이 너무 진하다고 생각하면 물이나 얼음을 타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콩국수 자체가 찬 음식이라, 나같이 손발이 찬 사람(소음인)이라면 굳이 얼음까진 넣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오랜만에 먹는 콩국수... 이렇게 간단히 만들 수 있다니! 쨘, 콩국물을 붓기만 하면 콩국수가 되는 게 왜 이렇게 신기한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콩국수, 콩국수 마음속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이젠 찐 함성으로 콩국수를 맞이할 수 있었다. 맨날 그리워만 하다가... 콩국수를 만들 생각을 하고 직접 차려 냈다는 게 스스로가 기특한 모양이었다. 콩국수를 좋아하시던 아빠가 많이 생각이 났다. 이젠 남편이랑 내가 좋아하는 콩국수를 함께 먹고 싶었다.





나) 드디어 콩국수다~! 맛있겠죠?
신랑) 콩국수~?
나) 우리 집에선 콩국수 진짜 자주 해 먹었는데. 본가에서 콩국수 안 먹었어요?
신랑) 저희 집은 집에서 콩국수를 먹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나) 진짜요? 콩국수 사 먹어 본 적은요?
신랑) 사 먹은 적도 거의 없는데...
나) 잘 됐다. 이게 콩국수 맛이에요. 어서 먹어봐요. 제가 좋아하는 콩국수 같이 먹고 싶어요.
신랑) 네 ^^



추신. 콩국물이 한 번에 6팩이나 와서 두 팩은 어머님을 갖다 드렸다.

나) 어머님~ 여기 이거 한번 드셔보시겠어요?
어머님) 이게 뭐니? 콩국물? ...... 넌 참 희한한 걸 사는구나.
나) 이걸로 콩국수 만들어 먹으면 좋더라고요. 콩국수 거의 안 해 드신다면서요?
어머님) 느이 아버님은 한 번씩 먹고 들어오드라.
나) 이참에 한번 드셔보세요!
어머님) 그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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