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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이 걸려 있다

사랑을 느끼는 사소한 순간들 (1)

by 별별


“수건이 걸려 있다, 커튼이 열려 있다.” 이 사소한 사실이 내게 주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만 이걸 표현하자니... 말문이 막힌다. 어떻게 하면 내가 느낀 이 반짝임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 아, 자신이 없네.






그동안 온전히 혼자 산 적은 드물었다. 부모님 집을 떠나 살면서 기숙사 생활도 해봤고, 친구들과 하숙집에서도 숙식했고, 또 선배 언니들과 셰어하우스에서도 살아봤다. 그래도 가장 오래 함께 살았던 건 누구보다도 내 동생이다. 연년생이라 언제나 동생과 싸우는 게 일상이었지만 기숙사에 살면서 룸메이트와는 알몸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제야 동생의 진가를 알게 됐고 가장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동생은 베스트 룸메이트라고 생각했다.

물론 편하다고 해서 잘 맞았다는 건 아니다. 왜 맨날 머리카락을 치우지 않는지, 설거지를 제때 하지 않는지, 나는 자주 동생에게 타박을 했다. 반대로 동생은 내가 맨날 집에 있는 과자나 먹거리를 동생이 먹기도 전에 다 먹어치우는 통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우리는 가끔 친구였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과 행동으로 서로를 상처주기도 했다. 너무 편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이기적인 면을 숨길 필요가 없던 사이였다.

내가 결혼으로 분가를 하자, 동생은 홀가분해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사실 걱정이 됐다. 나는 동생보다 더 편한 룸메이트를 만난 적이 없는데, 과연 이 낯선 남자(남편)와 잘 살 수 있을까? 사랑하기 때문에, 잠시도 떨어져 있기 싫다는 이유로 우리는 함께하기로 결심했지만 “함께 산다”는 건 현실적인 문제다.


신혼, 우리의 함께 살기.


남편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동거를 시작했던 것 같다. 기숙사 룸메이트에게 그랬던 것처럼, 남편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동생이랑 있으면 “너무 더럽다, 좀 치워라~”라고 얘기할 만한 것도 내가 즉각 치우고, “설거지 좀 해~”라고 잔소리할 것도 내가 하고 말았다.


게다가 남편은 오래 혼자서 자취를 해온 사람이고 우리 신혼집은 남편이 살던 곳에 내가 들어와 사는 것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내가 그의 영역을 침범한 것은 아닌지 그가 어떤 불편함을 느낄까 봐 신경 쓰였다.


특히나 화장실은 예민한 공간이다. 볼일을 보거나 샤워를 마친 후, 나는 뒷정리를 깨끗이 하는 것에 거의 사활을 걸었다. 깨끗하고 깔끔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듯, 화장실을 쓰면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가끔 변기를 닦고, 물론 하수구에 지저분하게 쌓여있는 머리카락도 보여줘선 안 돼. 그렇게 화장실을 쓸 때마다 뒤돌아보는 게 습관이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자주 깜박하는 건 바로 수건 걸어놓기다.


샤워를 하고 나서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둘러싸고 나오는데, 그러고 나서 대개 단장(?)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편이다. 비교적 오랫동안 화장실을 쓰는 통에 내가 샤워를 다 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 화장실에 들어간다. 나는 머리를 말리고 화장품을 찹찹찹 바르고 머리를 감싸고 있던 수건을 포함해 벗어놓은 옷들을 정리하고... 가끔은 샤워 후 빨랫감이 많이 나와 세탁기를 돌린다.


깨끗하게 씻고 나와 화장품 냄새를 맡고 세탁기 돌리는 소리를 들으며 유쾌 상쾌하게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하루의 시작이 즐겁다. 그리고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어, 수건을 안 걸어놓고 나왔네?’


황급히 화장실을 들어가 본다. 그런데, 수건이 걸려 있다. 그 후로도 수건을 깜박하고 나오는 일이 몇 번이고 계속 됐다. 변명하자면 나는 수건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내가 깜박할 때마다 언제나 새 수건이 나와 있었으니까. 우리 집은 화장실 선반에 수건을 놔두지 않아 수건이 없으면 드레스룸에서 꺼내와야 한다. 그 사소하고 귀찮은 일을 나는 자꾸만 까먹고 마네. 그런데 그 사소하고 귀찮은 일을 누군가 해 주네.


만약에 동생이랑 같이 살았다면, 그리고 동생이 수건을 가져간 후 다시 새 수건을 걸어놓지 않았다면, 나는 바로 한 소리 했을 것이다. “수건 다 쓰면 갖다 놔야지. 똥매너네.” 뭐 이런 식으로. 그리고 만약에 남편이 나처럼 수건 갖다 놓는 걸 깜박했다면 나는 또 말했을 것이다. “남편, 여기 와 봐요. 수건이 없죠? 다음엔 갖다 놔줘요.”


나는 이기적이거나 적어도 손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인 걸 안다. 내가 폐를 끼치지 않는 만큼 남도 나에게 폐를 끼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 그런 마음은 종종 내 입에서 잔소리로 나오곤 했다. 하지만 이 남편이란 사람은 왜 잔소리를 하지 않을까. 수건이 걸려있는 걸 볼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 뜨끈하게 데워진 자리를 가만히 보면 당연히 들었어야 할 잔소리를 듣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어, 벌써 수건 갖다 놨네. 미안해요.”


내가 이렇게 말해도 남편은 별 반응이 없다. 그냥 갸우뚱, 싱긋하며 웃는다. 마치 당연한 걸 뭘 그러냐고 하는 사람처럼.


내가 언제나 수건을 깜박해도 언제나 수건이 걸려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행복하다. 묵묵히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말이니까. 더 나아가, 수건을 깜박하는 이런 사소한 일을 나의 결점으로 생각하지 않고,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거라고 생각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그 자체로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고맙다. 황급히 다시 가 본 화장실에 아무 말 없이 수건이 있었기 때문에.


수건이 걸려 있다,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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