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느끼는 사소한 순간들 (2)
두 번째 신혼집
최근에 우리는 두 번째 신혼집으로 이사했다. 신접살림을 남편이 혼자 살던 집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 둘이서 함께 시작하는 공간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무척 설렜다. 새로 안방이 생긴 것이 이전 집이랑 다른 점이었다. 내 설레는 마음을 알고 있던 남편은 안방만큼은 특별히 내가 직접 꾸며 보라고 말했다.
남편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내가 집을 꾸며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혼자 살던 집을 마음껏 취향에 맞게 꾸미고 살던 남편과 다르게 나는 통 인테리어에 관심이 없었다. 필수 소모품 외에는 무언가를 사본 적이 거의 없었다고나 해야 할까. 서울에서 자취를 할 때도 책상, 책장 등 어릴 적부터 쓰던 물건을 다 들고 올라와 썼다. 집은 그냥 잠만 자는 공간이었을 뿐이다.
훗날 고백하건대, 남편은 연애시절 내가 살던 자취집에 놀러 왔을 때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바로 택배상자 때문에. 나는 옷걸이 행거나 책상 밑, 온 집안 곳곳에 택배용 종이박스를 수납용으로 쓰고 있었다. 뭐 그냥 박스에 가방을 모아두고 청소기도 넣어두고 이래저래 잡동사니를 넣어두고 말이다. 남편은 ‘너구리’라고 쓰인 박스를 보고 너무나 놀랐지만 문제는 내 반응이었다. “박스가 왜요?” 거기에 대해서 내가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거다.
그가 말하길, 위생상 안 좋은 것도 그렇지만 박스를 보아하니 내가 감성이 메마른 느낌이어서 안타까웠다고 한다. 자신이 사는 공간을 꾸밀 줄 모르는 것은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은 시각 예술을 전공하여 미학적인 면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예쁘다’고 느끼는 것들을 외부에서만 찾지 말고 자신의 공간에 두고 일상적인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종종 택배 상자 이야기를 꺼내며 나를 놀리곤 하지만, 내가 집에서 행복감을 느끼길 바라는 남편의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새로 이사를 온 지금 내 손으로 한번 집을 꾸며보는 게 어떻겠냐는 남편의 취지를 십분 이해하며, 나도 내 취향을 반영한 우리 집을 만들어보려는 꿈에 부풀었다.
커튼을 산다는 것
그런데 설렌 건 둘째치고 막상 처음으로 방을 꾸며 보자니 너무 어려웠다. 안방 침대는 둘의 의견을 수렴해 겨우 같이 골랐지만, 조그만 방에도 수납장이니 커튼이니 살 게 많았다. 뭘 제대로 사본 적이 없던 나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이걸 사야 하는지 저걸 사도 되는지 도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니 안방 커튼 하나 고르는 데도 무려 한 달이 넘게 걸렸다.
내가 처음으로 고른 아이템인 커튼은, 놀랍게도 선택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컬러. 아직 수납장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컬러 톤을 맞춰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두께. 안방이 상당히 추운 느낌이라 일반적인 쉬폰 커튼을 해도 될지 몰랐다. 다음 레일 또는 봉에 달 건지. 가격은 레일에 달면 시공비가 추가로 든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편의성. 레일에 핀을 꽂아 커튼을 달면 나중에 핀을 뽑고 세탁해야 해서 좀 번거로울 것 같았다.
결국 고민 끝에, 베이지 톤에 적당히 두꺼운 천의 봉 커튼을 최종적으로 골랐다. 후아. 남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커튼 하나 고르는 게 나에게는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다.
오랫동안 겨우 고른 커튼은 주문 제작하여 배송되는 데까지 또 몇 주가 걸렸다. 긴 기다림 끝에 신혼집에 들어온 지 50일 만에 도착한 커튼. 고작 작은 안방 커튼 하나지만 내가 고른 첫 신혼살림이라 뿌듯하기도 하고 고민을 많이 한 만큼 기대도 많이 했다. 직접 보니 천도 좋고 무늬도 고급스럽고 역시나 실물이 더 예쁜 커튼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커튼을 봉에 끼우고 남편 도움으로 안방 창문에 고정하려 했다. 자 드디어...!
그런데 커튼 봉의 가운데 부분이 휘어지는 듯 내려앉았다. 창문 폭이 길어서 봉이 지지하는 힘이 분산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천이 두꺼운 커튼을 두 장이나 달면 무게가 상당하다는 점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여건에서라면 봉 형식이 아니라 레일로 커튼을 달았어야만 했다. 사실 커튼을 고르면서 봉, 레일 형식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던 나는 이렇게 예상치 못한 부분에 대해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큰 기대를 한 만큼 실망도 큰 법이다. 커튼을 볼 때마다, 안방 침대에 누워서 창문을 볼 때, 안방 화장대에서 창문을 볼 때, 하여튼 볼 때마다 커튼이 신경 쓰였다. 내가 잘못 샀다는 생각에 괜히 찔려서 남편한테 커튼을 잘못 산 것 같다고 속삭이며 후회를 했다.
겨우 커튼이 달려있긴 했지만 가운데가 살짝 휘어지는 건 물론, 열고 닫을 때마다 봉이 흔들흔들, 아슬아슬했다. 봉이 혹여나 떨어질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한데, 최대한 조심하려면 최대한 커튼 윗부분을 잡아당기는 게 필요했다. 나는 매번 까치발을 들고 커튼을 여닫아야 했는데, 그렇게 조심해도 커튼 봉이 조금씩 주저앉는 것 같았다. 궁여지책으로 어느 순간부터는 화장대 의자 위로 올라가서 커튼을 당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커튼을 열다가 의자에서 중심을 잃고 그만 떨어졌다. 그리 높진 않아 다치진 않았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너무 놀랐고, 곧이어 속상함이 몰려왔다. 레일을 달았어야 했어, 커튼을 잘못 골랐어, 내가 그러면 그렇지 뭐, 아 왜 나보고 다 고르라고 한 거야 남편은... 고작 커튼 하나였지만 나는 우리 신혼집 안방을 책임지는 커튼 하나도 제대로 산 것 같지 않아서 속상했다. 그리고 괜히 남편한테 투정을 부렸다.
“아까 커튼 열 때 의자에 올라갔다가 다칠 뻔했다니까요.”
“왜 의자에 올라가요?”
“커튼이 무거우니까... 레일을 달든가, 커튼을 새로 사든가 해야죠. 봉에 아주 가깝게 해서 커튼을 당겨야 돼요. 그러니까 대신 커튼 좀 열어줄래요? 제 키가 안 닿아요.”
복잡한 심정으로 볼멘소리로 말했지만 커튼에 대한 애증을 알고 있던 남편은 잠자코 그러겠다고 했다.
그 다음날 아침, 안방이 왠지 모르게 환한 걸 보니 커튼이 열려 있었다. 우리 집 안방은 좀 춥고 어두웠는데 그래서 창문엔 뽁뽁이를 붙이고 두꺼운 커튼을 달았다. 그런데 이렇게 햇살이 들어오니 참 따뜻한 느낌이다.
다음날 아침에도 안방은 커튼이 열려 있었다. 가느다란 봉에 가까스로 달려있는 것 같던 커튼이 오른쪽 왼쪽 양쪽에 가지런히 모여 있었다. 그렇게 커튼이 열려 있으니 무거운 커튼이 곧 떨어질 것 같다는 불안함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또 다음날 아침, 커튼이 열려 있었다. 내가 열기도 전에 이제 안방 커튼은 매번 열려 있다. 환하게 따뜻한 기운을 감싸고 있는 안방을 보니 커튼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저 커튼, 색깔도 예쁘고 잘 산 것 같아.
오늘도 아침에는 커튼이 열려 있었다. 남편은 부지런히 내가 부탁한 대로 커튼을 열어 주고 있었다. 문득 남편이 매일 커튼을 열어 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커튼이 열려 있다.
우리 집 안방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커튼이 열려 있으니, 내가 처음으로 방을 꾸밀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아침마다 커튼을 묵묵히 열어주는 남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커튼이 열려 있으니, 커튼이 떨어질 것이란 불안함 없이 커튼을 잘못 샀다는 불만족스러움 없이, 예쁜 커튼을 온전히 예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말없이 고운 커튼이, 햇살과 함께 행복은 이런 거라고 내게 속삭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