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집밥 일기
새해 목표 중 하나는 집밥을 자주 해 먹는 것이다. 연말에 외식비가 너무 늘어난 것도 부담스러웠고, 임신 중기에 접어들면서 요리를 할 수 있는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친환경 채소 구독하기
그래서 다시 채소 박스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작년에 꾸준히 애용하던 채소 박스였는데, 임신 초기 누워만 지내느라 집밥을 할 수가 없어 구독을 중지해 놓고 있었다. 내가 이용하는 이 구독서비스 이름은 ‘어글리어스’. 친환경으로 재배한 못난이 채소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맛볼 수 있는 서비스이다.
어글리어스의 장점은 참 많다. 1) 일단 친환경 채소를 농부들과 직거래하여 유통한다는 기본 취지에 공감해 가치 소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2) 또한 랜덤으로 제철 채소를 배송해 주어서 평소에 잘 시도해보지 못했던 채소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3) 그리고 채소박스에 레시피 페이퍼가 동봉돼 나 같은 요알못(요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유용하다.
미지의 채소
한편 지난 1월에는 랜덤 채소 목록에 ‘토란’이 있었다. 생소한 아이다. 들어보긴 했는데 사 먹어 본 적이 있나 싶고 집에서 먹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랜덤 채소는 개별 품목을 빼고 더할 수 있지만 잠시 고민하다가 큰맘 먹고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토란... 하지만 역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한동안 냉장고에 방치해 놓고 있다가 생각나서 일단 가능한 토란 요리를 검색해 보았다. 감자 같아서 조림으로 만들어먹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토란국을 많이 해 먹는 것 같다. 소고기를 넣으면 맛이 좋다나? 이젠 또 국거리 소고기를 사야지 해놓고 한참을 묵혔다.
결국 한 달이 거의 다 된 상태에서 토란을 구출했다. 사실 상했을 걸 예상했지만 실망스럽게도(?) 멀쩡했다. 자, 이제 너와 나 둘 뿐이다. 요리 초짜답게 토란을 앞에 두고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
토란 손질하기
토란은 독이 있어 기본 손질이 필요하다고 했다. 맨손으로 만지지 말고 고무장갑을 낀 채 애벌로 씻어내고 쌀뜨물로 적당히 (부르르 세 번 정도 끓어오를 때까지) 데쳤다. 그러고 나서 토란 껍질을 깠다. 데친 후에는 독이 사라져 맨손으로 손질하면 된다고 하는데 껍질을 깔 때 토란 점성 때문에 자꾸 미끄러졌다. 니트릴 장갑이 있다면 그걸 끼고 껍질을 까도 좋을 것 같다.
한참 껍질을 깠는데 겨우 두 주먹 정도 되는 양이 나왔다. 좀 허무하기도 하고 이걸로 충분한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나중에 먹고 보니 2인분 국을 끓이기엔 아주 푸짐한 양이었다.
토란국 레시피 (2인분)
토란국 레시피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여 다음과 같다.
1. 재료 준비 – 손질한 토란 8~10개(절반 또는 1/4 썰기), 무 5cm 두께 한 덩이(나박 썰기), 소고기 국거리 200g, 대파 반 개(동그랗게 썰기), 쌀뜨물 500ml, 들깨 가루(박피된 것)
2. 재료 볶기 – 먼저 참기름 1T+다진 마늘 1/2T+맛술 1T 두르고 소고기를 볶은 다음, 무와 토란을 차례로 볶는다.
3. 국 끓이기 – 쌀뜨물을 붓고 코인육수 1개를 넣고 중불로 끓인다. (원래 찹쌀가루를 넣는다고 하는데 쌀뜨물도 대체해도 무방하다.)
4. 국 맛 내기 – 토란이 익으면 멸치액젓, 국간장(+소금)으로 간을 하고 대파를 넣는다. (두부를 첨가해도 좋다.) 마지막으로 들깨 가루를 3큰술 정도(취향 껏) 넣는다.
배가 따뜻해지는 토란국
토란국을 끓인 날, 꽤 맛있게 잘된 것 같아 남편한테 자꾸 맛있냐고 물어보았다. 맨날 계란국이나 해주다가 오늘은 제 나름 특식이었는데, 역시나 “맛있네요” 외에는 별 반응이 없는 우리 집 남자. 그래도 평소에 국물을 꼭 두어 숟갈 남기는 편인데 오늘은 국물을 끝까지 다 먹었다.
토란국을 다 먹고 나서도 여운이 깊게 남았다. 요즘 날씨도 추운데 겨울 보양식이라는 토란국을 맛보았다는 게 세상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또 미지의 채소였던 토란을 한번 먹어봤다는 자랑스러운 마음, 묵혀놨던 토란을 드디어 해치웠다는 시원한 마음까지, 스스로 기특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저히 가만히 있지 못하고 엄마께 전화를 걸어 자랑을 했다.
“엄마, 저 오늘 토란국 끓여봤어요. 우리 집에서 토란국 해 먹은 적 있나요?”
“토란국? 한 번도 안 끓여봤지. 그거 손질하기 힘들었을 텐데.”
“그러니까요~ 독이 있어서 꼭 장갑 끼고 씻어야 한 대요.”
“수고했네. 맛있드나?”
“네, 토란이 엄청 고소하고 쫄깃하더라고요. 배가 든든하고 따뜻해지는 느낌. 다음에 엄마도 해드릴게요.”
“신랑이나 잘 먹여라. 너도 잘해 먹어서 다행이다.”
자, 다음에는 또 어떤 미지의 국을 끓여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