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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을 마주하는 영화 ‘리얼 페인’

by 별별


지난번 관람했던 영화 '시빌워: 분열의 시대'는 다른 이의 너무 자세한 리뷰 영상을 보고 갔던 게 패착이었다. 지금의 탄핵 전야에 오버랩되는 귀신같은 영화라 무척 재밌게 봤지만 리뷰 영상을 보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재밌을 수도 있던 영화였을 거란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데 이번엔 남편의 깜짝 이벤트로 영문도 모르고 영화관에 끌려가게 됐다.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일단 보러 간 건 거의 처음이었다. ‘“페인”이 고통을 뜻하는 단어일까, 사람 이름일까?’ 사전정보가 없다 보니 광고를 보면서 이런 궁금증으로 영화의 시작을 기다렸다. 두 사촌형제가 함께 폴란드로 여행을 떠난다는 단순 줄거리만 본 탓이다. 성격이 너무 다른 두 형제가 여행을 하면서 갈등을 겪고 화해를 하는 단순한 플롯과 전개를 상상했다. 어쩌면 중의적인 의미일 수도.




주인공들의 이름은 벤지와 데이비드. (영화 제목의 “페인”은 사람 이름이 아니었다.) 벤지는 처음부터 심상찮은 말과 행동으로 민폐 캐릭터인 듯 보였고 데이비드는 소심한 성격에 벤지에게 당하고 사는 성격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떤 갈등-예를 들어 데이비드가 벤지에게 폭발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갈등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둘의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었다.


두 사람이 폴란드로 떠난 이유는 유대인으로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던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흔히 말하는 ‘다크 투어리즘’의 일환인 셈이다. 이 다크 투어리즘에 대한 세간의 입장은 꽤 갈린다. 한쪽은 역사를 기리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한쪽은 타인의 고통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적인 입장이다. 내가 보기에 데이비드와 벤지는 다크 투어리즘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성실한 가장으로 바쁜 와중에도 할머니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홀로코스트 투어를 예약했다. 벤지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애틋해 종종 이 투어에 반감을 가진다. 투어를 계획하는 것이 할머니를, 벤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데이비드는 매번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감정을 표출해 여행을 ‘깽판’ 놓는 것 같은 벤지가 당황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벤지가 진심으로 가까운 사람들의 변화와 죽음을 예민하게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데이비드는 벤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아픈 역사적 사실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적지를 가거나 학살 희생자들의 위령비를 방문하는 행동 등은 이미 흘러간 역사 속에서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 최선의 방식이라는 이성적 판단에 근거한다. 그렇지만 때론 역사가 현재 진행 중인 경우, 희생자가 생존하고 있거나 사건의 후유증이 계속되는 경우에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누군가는 고통을 생생히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 누군가를 배려하려는 마음 씀씀이가 필요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와중에 전쟁을 돈 주고 경험하는 관광 상품이 나왔다는 뉴스를 본 적 있다. 불과 몇 킬로 떨어진 곳에서 폭탄이 터지고 사람이 죽는데, 그걸 한낱 재밌는 이벤트로 소비하려는 행태를 보고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치 남의 일인 듯 무심하고 무신경하게 바라보고 있던 내가 단순히 그 뉴스에 분노한 것이 조금 가소롭기도 했다. 나는 모순된 감정에 스스로 되물었다. 그렇다면 매 순간 전쟁에 마음 아파야 하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언제 어떻게 타인의 아픔을 공감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무리 큰 타인의 고통도 내 손톱 밑에 가시가 더 아프다는 말이 있다. 고통은 내가 겪지 않으면 모른다. 완벽한 공감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일말의 책임감이 있다면 우리는 때로 그 공감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가 벤지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건 벤지를 사랑하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고통은 건드리지 않으면 모른다’는 사실이다. 벤지는 비록 충동적으로 자신의 아픈 감정을 드러냈지만 그 덕분에 다른 이들도 어떤 고통의 존재를 알게 됐다. 고통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다른 신체 기능에게 경고하는 중요한 감각이고 이는 집단적 고통도 마찬가지다.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전달하는 것은 우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중요한 역할이다. 우리는 그래서 끊임없이 타인의 고통을 상기해야 하고 때론 공감하고 때론 나의 아픔을 전달하며 서로서로 치유할 수 있다.


생각보다 영화의 여운은 짙었다. 많은 사람들이 엔딩 장면에서 벤지의 눈동자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의 감정이 오롯이 전달되는 바람에 그것이 연기인지도 몰랐다. 벤지 역의 키어리 컬킨을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여러 작품에서 상을 받은 연기파 배우였다. 물론 이 영화를 연출한 제시 아이젠버그의 각본에도 박수를 쳐주고 싶다. 잔잔한 풍경과 많은 이야기들이 생략된 단순한 줄거리임도 이미 충분하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였다.




어떤 영화는 끝이 나서도 계속되곤 한다. 주변을 살짝이라도 둘러보면 아픔을 안고 있지 않은 이가 없었다. 가까운 가족의 병환이나 죽음, 친구의 안 좋은 소식 등 타인의 고통은 멀리 있지 않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고통이 건드려졌다. 처음엔 고통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조금이나마 생각하고 위로하면서 우리는 공감할 수 있다. ‘리얼 페인’은 어쩌면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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