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없는 자본주의 천국, 오겜 월드

영화 공감_<오징어 게임> 내 맘대로 리뷰

by ALONE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작성한 감상평입니다.


<개요>

감독, 각본: 황동혁

주연: 이정재, 박해수 외

줄거리: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시리즈



우스개 소리 중에 이런 게 있다.

'철수가 땅따먹기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죽었어, 왜 그랬게?'

'왜 죽었어?'

'금 밟아서'

'......(너 죽을래?)'

그런데 오징어 게임에서는 놀이를 하다가 지면, 진짜로 죽는다. 대체 저런 생각을 어떻게 했지 하면서 봤다. 기괴하고 이상한 이야기, 어린이가 하는 옛 놀이를 무시무시한 데스 게임으로 재탄생시킨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하나의 신드롬이 형성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데스 게임 영화를 표절했느니 안 했느니 말이 많다. 하지만, 이 지구 상에 완전히 새로운 건 더 이상 없지 않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시대는 끝났고, 기존의 것에 새로운 것 1g을 얹거나, 1도를 비틀어서 재창조하는 것이 지금 시대의 창의성이 아닐까 싶다. 이런 점에서 표절 논란은 무의미한 것 같다.


오겜 참가자들의 숙소 벽에 그려진 그림에 게임에 대한 힌트가 담겼다는데 그것도 사실 새롭진 않다. <미드 소마>의 숙소(드높은 천장, 넓은 공간에 침대가 놓인 것도 사실은 비슷, 나만 그런가?ㅎ) 벽화가 더 먼저다. 알록달록한 놀이터에서 일어나는 동심 파괴, 살인 잔치가 주는 그로테스크함은, 목가적인 마을에 하얀 옷을 입은 선한 미소의 사람들, 화창한 대낮, 화려한 꽃다발이 예상치 못한 섬뜩한 호러감을 선사했던 <미드 소마>가 더 먼저다. 그럼에도 표절이라거나 베꼈다거나 그런 시비가 없는 것처럼 창작의 영역에서는 일본의 데스 게임과도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시리즈가 오픈하자마자 이틀 만에 정주행을 마쳤다. 그 후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서 이제야 글을 쓴다. 앞서 말했듯이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몰이 중이고, 스토리상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그 인기의 요인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아이디어가 아닌, 등장인물과 서사의 상투성은 나만 느낀 것일까. 오겜에 대한 칭찬 일색이고 물론 나도 흥미롭게 본 부분이 많지만 아쉬웠던 점도 있었다.


내가 느낀 점을 '폭력 수위의 금기를 깨다' '제2의 <기생충>?' '이정재와 데스 게임' 이렇게 세 파트로 나눠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폭력 수위의 금기를 깨다

최근 미국 학부모 단체에서 오징어 게임(이하 오겜)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이라는 논평을 내고 미성년자들의 접근을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는 뉴스를 봤다. 물론 18금 딱지가 붙은 성인용 콘텐츠이므로 청소년들이 이를 접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각 가정의 몫이라는 것이 기본적인 내 생각이다. 하지만 신분증 검사를 하는 제한된 장소, 즉 영화관에서 정해진 시간과 횟수만큼 상영이 되던 시대와 달리, 언제 어디서든 무한 재생이 가능한 OTT 서비스의 콘텐츠라는 점에서 폭력 수위의 금기를 깬 것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을 것 같다.

내가 처음에 기대 없이 비스듬히 누워서 보다가 어느 시점부터 벌떡 일어나서 '헐' '미쳤다' 등의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보게 된 것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장면들 때문이었다. 물론 더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도 많다. 하지만 어떤 상황인지 설명이 되면 나머지 장면은 대충 상상에 맡기는 식으로 지나갔다면 오겜은 그 상상의 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선을 넘은 것이 확실해 보인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잔인한 장면에 빗대어 예를 들어보겠다. 영화 <신세계>에서 조폭들이 사람을 살해할 때 살아 있는 사람의 목구멍으로 시멘트 반죽을 들이붓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 생각해도 진저리가 쳐지는 장면이다. 그다음 장면은 묵직한 드럼통을 굴려서 바다에 빠트리는 장면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 드럼통 안에는 시멘트 반죽이 굳으면서 처참한 죽음을 맞은 피해자의 시신(아마도 돌덩이처럼 변한)이 들어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어쩌면 바닷속 깊숙이 가라앉아서 영영 발견되지 않을 그런 억울하고 끔찍한 죽음. 지금까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장면을 오겜의 폭력 수위에 비유하자면, 시멘트 반죽을 먹은 후 배가 터지고 숨이 넘어가고 몸이 돌덩이처럼 굳으면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오겜에서는 줄다리기에 진 사람들이 우르르 한꺼번에 바닥으로 떨어져서 몸이 부서지고, 유리 다리를 밟고 추락해서 머리가 깨져서 뇌의 일부가 드러나는 장면들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그간 '대충 느낌 알지?' 하면서 금기와 상상의 영역에 남겨뒀던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들의 빗장을 오겜이 완전히 풀어버린 것이다. 지금 인기의 일부는 어쩌면 금단의 열매에 손을 댄 것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제2의 <기생충>?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들은 장기를 다 팔아도 갚지 못할 빚을 지고 있다. 456억 원의 상금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게임을 벌인다. 빚을 못 갚으면 어차피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다. 우리가, 세계가 <오징어 게임>에 열광하는 이유는 영화 <기생충>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 성장 제일주의가 만든 '헬조선'의 자화상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자본 소득이 항상 노동 소득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자본주의가 만든, 자비 없는 불평등한 분배 구조가 세계 곳곳에서 야기하는 비극을 보여주는 우화이기 때문이다.


패배의 대가로 잔혹한 죽음이 기다리는 게임장에 내던져진 455명의 게이머들(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전체 게이머 중 1명은 게임의 호스트)의 생존을 위한 개싸움은 VIP들에게는 흥미로운 구경거리에 불과하다. 게임 참가자들의 개죽음을 막고, 거대한 돈을 손에 쥐게 할 다음 게임에 대한 정보는 VIP들만이 알고 있다. 우산 모양이 달고나 뽑기의 미션이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사람들은 결코 그 모양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고른 번호가 징검다리를 건너는 순서인 줄 알았다면 사람들은 결코 제일 앞 번호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급 정보를 틀어 쥔 소수의 계층만이 부와 권력을 독점한다. 돈이 되는 각종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이미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그것의 대물림을 위해 불법, 편법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걸 막을 수 있는 힘이 없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신세다. 그 결과, VIP 외에는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자본주의 천국, 부의 철옹성이 탄생했다. '게임 참가자'와 비슷한,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존을 담보로 서로 '개싸움'을 벌이는 처지가 된 것이다. 우리도 일확천금의 꿈을 꾸지만 그런 건 어쩌면 영영 허락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징어 게임>은 <기생충>의 세계관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기택의 가족처럼 '기생'하기는커녕 참가자들은 게임을 만들고, 조정하고, 지켜보는 VIP의 존재조차 눈치 채지 못한다. VIP들과 그 어떤 접점도 가질 수 없게 된, 계층 간 단절과 분리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VIP들이 등장한 이후부터 이러한 주제 의식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다만, VIP를 비롯한 여러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태도에서 엿보이는 캐릭터 설정이 상투적이었던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단편이 아닌, 시리즈물에서 성장하지 않는 캐릭터의 등장은 흥미를 반감시킨다.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끊임없는 갈등과 고뇌를 통해 성장하는 캐릭터를 보는 재미는 <워킹데드>가 단연 압권이었다. 여기서는 성장하는 캐릭터는 기훈과 새벽 정도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선 아니면 악 중 하나의 편에서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다가 예상했던 수순을 밟고 극에서 사라진다. 기발한 게임 아이디어에 서사와 등장인물의 진부함이 슬쩍 가려진 건 아닌지 (내 맘대로) 생각해본다.


이정재와 데스 게임

이정재 배우가 데스 게임의 말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CCTV 해킹으로 도심 전체를 도박장으로 만든 악당 에이스와 정체불명의 집단(<오징어 게임>의 VIP와 유사한)에 의해 무한 질주를 하는, 2014년 <빅 매치>의 격투기 선수 익호가 더 먼저다. <빅 매치>도 꽤나 아이디어는 참신했다. 이성민, 신하균, 배성우, 손호준, 보아 등 출연진도 빵빵했는데 <오징어 게임> 만큼 큰 히트를 기록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CCTV의 순기능과 역기능, 소설 <1984>와 빅 브라더, 현대 사회의 팬옵티콘 등의 주제가 등장할 때 영화의 스토리가 언급되곤 했던 기억이 난다.

2013년 <신세계> 이후 이정재 배우는 자신을 지우고 배역에 완벽하게 일치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빅 매치>에서도 진짜 격투기 선수처럼 날렵하면서도 파워풀한 액션을 선보였던 기억이 난다.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그 전에는 ‘이정재’하면 연기보다는 외모로 빛이 나는 배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는 주연급 배우 중 내 맘대로 연기파 베스트 3로 이병헌 배우, 송강호 배우 그리고 이정재 배우를 꼽는다.(어디까지나 내 맘대로ㅎ)


이번에도 까칠한 피부, 아무렇게나 자란 머리카락, 덥수룩한 수염, 눈빛조차도 대책 없고 한심한, 그리고 착한 기훈을 표현하기 위해 본연의 아우라를 포기한 채 망가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전작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레이를 연기한 배우와 동일 인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다음 작품에서 또 다른 어떤 변신을 보여줄지 손꼽아 기대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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