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2010년 개봉 / 청소년 관람불가 / 범죄, 스릴러 / 김지운 감독 / 이병헌, 최민식 주연 / 러닝타임 144분
줄거리: 국정원 경호요원 ‘수현(이병헌)’은 약혼녀 주연이 잔인하게 살해당하자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분노로 가장 고통스러운 복수를 다짐한다. 수현은 연쇄살인마 ‘장경철(최민식)’이 범인임을 알아내고 죽을 만큼의 고통만 가하고 놓아주기를 반복하며 처절한 응징을 시작한다. 그러나, 악마보다 더 악랄한 살인마 장경철은 난생처음 만난 대등한 적수의 출현을 즐기며 반격에 나서기 시작하는데…
내 맘대로 명장면 베스트 3
영화 리스트에서 <악마를 보았다>를 발견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10여 년 전 개봉 당시 30분도 채 못 보고 관람을 중단했던 영화라서다.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 장경철(최민식 분)이 희생자를 범죄 타깃으로 삼고 납치, 살해하는 과정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극도의 혐오와 공포를 느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 후 십 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다양한 하드고어물을 섭렵하면서 나름 단련이 됐다는 판단 아래 과감하게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게는 볼 만한 영화를 넘어 안 봤으면 후회했을, 꼭 봐야 할 영화였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잔상이 머리에 남아 마음이 괴롭고 안 좋다. 피와 살이 튀는 슬래셔 무비와는 사뭇 결이 다른 공포와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영화다. 뒷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 보길 권한다. 영화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 세 개를 골라 감상을 곁들여봤다. 아마도 영화의 주제 의식과도 깊게 맞닿아 있는 장면들이 아닐까 싶다.
베스트 1 수현의 연인이 살해되는 장면
수현의 약혼자 주연은 인적이 드문 눈길에서 타이어가 펑크 나는 바람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운 나쁘게 살인마 장경철의 눈에 띄어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주연은 선량한 얼굴로 도와주겠다고 접근한 장경철에게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 차문을 꼭 잠그고, 레커차를 기다리겠다고 말하면서 창문도 아주 조금만 연다. 하지만 조심해도 소용이 없,,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장경철은 망치로 유리창과 주연의 머리를 박살내고 그대로 끌고 가버린다. 그리고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주연을 욕보인 후 잔인하게 살해하고 사체를 토막 낸다.
순식간에 벌어진 불가항력의 상황에 숨이 턱 멎는 것 같았다. 충분히 경계하고 조심했지만 끝내 악마의 손길을 피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극한의 공포를 느꼈고, 희생자가 납치되고 살해, 유기되는 장면이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돼 보기가 매우 불편했다. 하지만 영화의 중반부에 이르렀을 때 이 장면이 왜 꼭 필요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수현의 악마적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살인마의 잔혹함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필연적인 연출이었다고 할까. 이 장면으로 인해 그 후에 수현이 느끼는 극한의 분노와 절망에 감정이입을 하고, 악마처럼 변해가는 그를 응원할 수 있었다.
베스트 2 살인마가 벌이는 자수 퍼포먼스
살인마 장경철은 수현의 도발에 자극을 받아 똘끼가 제대로 발동한다. 한 가지 일만 처리하고 바로 자수를 하겠다고 경찰에 전화를 건다. 그가 처리해야 할 일이란 바로 주연의 가족을 찾아가 죽이는 것. 한발 늦게 현장을 찾아간 수현은 죽은 처제를 붙잡고 오열하고, 주연의 아버지는 망치에 맞아 머리 반쪽이 함몰됐지만 가까스로 목숨은 건진다. 의기양양하게 경찰서 앞 대로변에 나타난 장경철은 두 손을 번쩍 들고 투항 의사를 밝힌다. 얼굴에는 득의양양한 미소가 가득하다. 이제 전세는 역전됐다. 경찰은 자수한 장경철을 수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혈안이 된다. 이 장면에서 장경철의 자수가 성공했다면 열 받아서 영화를 보던 아이패드 액정을 박살 냈을지도 모르는데 다행히 수현이 말려줬다.ㅋ 수현은 자수하려던 장경철을 납치해 최후의 일격을 안기기 위해 끌고 가버린다. 자수라니 이 살인마 ㅅㄲ 어림도 없어!
이 장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는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범죄자의 인권 보호 문제가 논란이 되곤 한다. 오늘만 해도 한때 동거했던 여인의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가 유치장에서 자해를 하자 이를 막기 위해 경찰을 유치장 안으로 들어가서 보호하게 한 일로 떠들썩하다.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은 감옥에서 운동하고 건강을 잘 챙기고 출감한 후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고, 나영이네 가족은 그를 피해 낯선 동네로 이사를 갔다. 일일이 언급하기도 입이 아플 지경이다. 법의 힘으로는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억울함을 풀지 못할 거라는 정서가 온 사회에 팽배하다. 사형 제도도 폐지되다시피 한 마당에 그들을 심판할 방법이 있긴 한 걸까. <모범택시> <빈센조>에서 등장했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함무라비 법전식 응징이 괜히 환호를 받은 게 아니다. 범죄는 갈수록 극악해지는데 법의 심판은 한없이 점잖기만 하다.
만일 나의 연인이, 나의 가족이 더럽고 역겨운 살인마에게 농락당하고 무참히 목숨을 잃었다면 나라도 결코 살인마에게 편안한 죽음을 허락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피해자들이 느꼈을 고통과 좌절을 조금이라도 맛보게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복수를 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얻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지 않나. 영화를 보면서 어느 순간 수현의 행동을 응원하는, 나도 악,,마,,? 주인공 수현을 인간 병기, 국정원 요원으로 설정한 것도 엄청 사이다였다.
베스트 3 수현이 오열하는 마지막 장면
'악마를 보았다'의 '악마'는 사이코패스 살인마 장경철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말들 한다. 그에게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주인공 수현의 내면에서 발현되는 악마성을 의미한다는 게 이 영화에 대한 정설처럼 언급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수현이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하고 있음을 느꼈다. 역겹고 더러운 살인마를 빨리 죽여버리고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절실히 원하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고통을 참아가며 더 큰 고통을 살인마에게 안겨주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가,, 마침내 모든 일을 끝낸 후 새벽 동이 터오는 거리에서 오열한다. 웃는 듯 우는 듯 얼굴을 감싸 쥐고 오열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만 갈래 천 갈래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이병헌 배우가 원래부터 연기를 잘했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장경철은 단두대에서 처형되듯 최후를 맞이했는데 그 모습을 그의 아들과 노모가 보게 된다. 아니, 수현이 설치한 부비트랩 때문에 사실상 그의 부모 손에 처형을 당한 셈이다. 이 부분은 두고두고 논란이 야기될 만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범죄자의 가족일지언정 무고한 가족에 대한 연좌제는 금기에 가깝다. 이 영화는 그것마저 깨부순다. 수현은 아마도 평생 이 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한두 번쯤 후회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던 그를, 나는 이해하고, 지지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살인범과 희생자들의 얼굴 위로 길에서 마주친 수상한 누군가와 선량한 이웃들의 모습이 계속 오버랩됐다. 가장 공포스러웠던 건 영화에서 목격한,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인간을 빚었다고 주장하는 신도 설명하지 못할, 인간 심연의 근원적인 악마성이, 더 이상 낯선 '무엇'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소한 시비로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몸을 토막 내는 사람. 양부와 양모가 세상의 전부였을, 그 작고 여린 천사 같은 아이의 몸을 장기가 터질 때까지 짓밟는 사람. 결별 선언이 분하다는 이유로 과거 동거녀의 아무 죄 없는 아들을, 채 피지도 못한 16세 소년의 목숨을 무참히 빼앗는 사람. 그들이 벌이는, 이 믿기 어려운 끔찍한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등장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기타 명장면
영화 중간중간에 김지운 감독 특유의 유머 코드가 묻어나는 장면들이 눈길을 끈다. 절대 웃음이 안 나오는 그런 상황인데도 픽 하고 웃음이 터지는 그런 장면들이 있다. 혹시 영화를 본다면 놓치지 말고 보시길,,
1. 장경철이 택시를 타고 도망가다가 택시에 타고 있던 두 사람(이 두 사람도 택시 강도였다는,,)을 죽이고 다시 도로로 나와 흉기를 뒷 주머니에 숨기고 차를 세우는 장면.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까 조마조마했는데, 하필? 세운 차가 4명의 군인이 타고 있는 군용 지프차였다. 군인 4명이면 좀 벅찬 감이 있는데, 그래도 한 번 해봐?라는 표정으로 망설이는데, 뒤이어 나타난 차가 그의 망설임을 잠재운다. 총기로 무장한 군인을 한 가득 태운 트럭이라는,,,ㅋㅋ
2. 펜션 주인을 살해하고 펜션을 차지한 친구 살인마 최무성 배우와 수현이 한바탕 싸움을 한 후 수현이 친구 살인마의 손을 드라이버로 팍 꽂아서 나무 테이블에 고정시켜 버린다. 최무성이 드라이버 손잡이를 잡고 뽑아내려는 순간 '뽕'하는 소리와 함께 드라이버의 손잡이만 뽑혀버린다. 결국 아프다고 악을 쓰며 고정된 드라이버에서 손을 통과시켜 빼낸다. 설마 지금 이 상황에서 웃긴겨? 하고 돌려서 다시 봤다는,,, 두 살인마가 입에 달고 사는 표현처럼 그야말로 ㅈ된 상황,,
3. 이밖에도 최무성 배우가 체포된 후 병원에서 팔자 좋게 치료를 받으면서 수현에게 아주 밉상으로 말을 하는 장면을 보면서 속으로 저런 건 아갈머리를 확 찢어,,,,했는데 진짜로 수현이 그의 입을 확 찢는 장면이 나왔다. 잔인해서 웃음은 안 나왔지만,,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그런 어메이징 한 장면이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