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과 신맛

축적된 시간의 이야기

by Taste of Silence

매운맛에도 여러 결이 있다.

같은 매움이라 불리지만,

그 안에는 서로 다른 깊이와 방향이 머문다.


고춧가루의 매움은 속으로 번진다.

혀끝에서 멈추지 않고

천천히 몸 안으로 스며든다.


후추의 매움은 향으로 먼저 다가와

은근히 자리를 잡는다.


모두 매운맛이지만

몸이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르다.


길고 차가운 바람 속에서

사람들은 더 깊은 열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뜨거운 국물과 매운 양념은

몸의 온도를 끌어올려

굳은 감각을 풀어준다.


그것은 취향이라기보다

몸이 먼저 기억한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며

그 반응은 익숙함이 되었고,

익숙함은 기호로 남는다.


그러나 열은

기온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말하지 못한 감정들,

안으로 눌러 담았던 숨,

흐르지 못하고 머물러 있던 온기.


식탁 위의 열은

때로 그런 마음의 온도를 닮아 있다.


매운맛은

감각을 단숨에 채운다.

강렬한 자극은

다른 층을 잠시 멈추게 한다.


그러나 그 열은

무뎌진 감각을 깨우고

굳어 있던 몸을 다시 흐르게 하기도 한다.


감각을 선명하게 세우면서도,

미묘한 결을 한 발 뒤로 물러나게 한다.


신맛은 또 다른 방향으로 다가온다.


산미는 오래 머물며

입안에 질문을 남긴다.

조금만 어긋나도 거칠어지고,

제자리를 찾으면

전체를 조용히 세운다.


산미는 뼈대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흐름을 붙잡는다.


신맛은

멍하고 무기력한 상태에서

정신을 깨우는 데 가깝다.

흐릿해진 생각을 또렷하게 세우고,

엉킨 감정을 한 겹씩 풀어낸다.

터뜨리는 대신 정돈하고,

몰아치는 대신 붙잡는다.


그러나 산미 또한

지나치면 감각을 조이고

다른 향이 스며들 자리를 좁히기도 한다.


익숙하지 않은 감각은

그 결을 쉽게 읽지 못하기도 한다.

그것은 부족함이 아니라

다르게 길러진 시간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햇빛이 강한 땅에서는

그 빛을 머금은 과실을,

바람이 거친 곳에서는

단단히 여문 곡식을,


추위가 긴 곳에서는

몸을 덥히는 뿌리와

코끝을 데우는 향의 씨앗들을

자연스레 입 안에 들여놓는다.


그렇게 몸은

기후를 먹고 자라며

환경을 기억한다.


맛은 선택이기 전에

이미 몸이 익숙해진 언어일지도 모른다.


어떤 환경은 열을 품게 하고,

어떤 환경은 산미를 받아들이게 한다.


그 차이는 우열이 아니라

축적된 시간의 방향에 가깝다.


어쩌면 성숙이란

하나의 자극만을 붙잡지 않고

그 뒤에 겹쳐 있는 다른 결들을

함께 느끼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매운맛도,

신맛도,


모두 감각을 깨우는 힘을 지녔다.

다만 그 힘이 머무는 방향이 다를 뿐이다.


그저 다른 결의 온도일 뿐.


태어남과 살아냄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지나온 기후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기후는

오늘의 식탁 위에서

여전히 조용히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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