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독>을 일고나서 든 3가지 생각
제일 잘나가는 글로벌 브랜드 중 하나인 나이키. 나이키 창업자의 생각과 철학 그리고 나이키의 마케팅 전략이 궁금해서 <슈독>을 읽어보게 되었다. 사실 누군가의 자서전은 처음 읽어보았다. (생각보다 엄청 시시콜콜하고 사소한 내용들도 있어서 살짝 지루할 때도 있었다.)
나이키의 마케팅 관련 이야기가 책에서 일부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자서전인 만큼 마케팅이 주된 내용은 아니었다. 혹시 나이키의 브랜딩, 마케팅 과정을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에게 <슈독>은 비추천이다. 나이키의 경영 전략을 알기 위해서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자서전을, 그것도 잡다한 개인사가 많은 자서전을 고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것 같다. 만약 나이키의 마케팅 전략이 알고 싶다면 경영컨설턴트나 마케터들이 쓴 책을 읽어보는 게 훨씬 도움이 될 듯하다.
<슈독>은 나이키 창업자인 필 나이트의 삶과 그가 신발을 파는 사업의 시작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나이키는 일본 오니츠카 타이거의 신발을 떼다 파는 유통업으로 시작을 했다. 이때는 나이키가 아닌 블루리본스포츠라는 회사명을 썼다. 나이키가 '나이키'라는 회사명을 쓰기 시작한 건 오니츠카 타이거로부터 벗어나 자사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나이키가 설립되고, 승승장구하는 이야기는 책의 매우 후반부부터 조금 등장했다.
아쉬웠다. 책에서 나이키의 브랜딩 과정을 길게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 나이트의 경험과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인상 깊은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작고 큰 울림들이 있었다. 그 중 내가 영감을 받은 3가지를 소개해보겠다.
1. 세계여행을 했던 필 나이트 _ 이제 나도 세계여행에 대한 당위성이 생겼다
“지금부터 불과 1년 전에, 내가 와이키키 해변에서 파도를 탔다는 사실을 너는 믿니? 이른 아침에 히말라야에서 하이킹을 하고는 버펄로 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을 너는 믿을 수 있겠니?” 그때가 내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지 않을까? 세계 여행을 떠났던 그때가 바로 내 인생의 절정이지 않을까?
세계 여행. 필 나이트는 스탠포드 대학원을 마치고 세계여행을 했다. 그는 여행가였다. 하와이를 시작으로 방콕, 베트남, 홍콩, 인도, 케냐, 히말라야, 이집트, 예루살렘, 이스탄불, 로마, 파리, 뮌헨, 빈, 런던, 그리스까지 세계 곳곳을 누볐다. 필 나이트가 여러 국가와 도시들을 다니며 느낀 점들이 책에 짤막하게 담겨있다.
세상은 젊은 필 나이트에게 무한한 영감을 쏟아냈던 것이다. 필 나이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큰 그릇을 가질 수 있는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 위의 내용은 필 나이트가 세계 여행을 다녀온 이후 회계사로 근무하던 중에 공원 벤치에 앉아 비둘기를 바라보며 품었던 생각이다.
나도 최근에 세계여행에 대한 꿈을 품기 시작했다. 이런 목표가 생기게 된 계기가 현재 직장에 대한 답답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무의식 속에 자리한 호기심이 코로나 시국을 맞아 발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세계여행에 대한 열망은 커지고 있다.
세계여행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세계여행 시도 자체에 관한 고민도 있었다. 이런 찰나에 필 나이트의 <슈독>을 읽었다. 당연히 여행 계획에 관한 답을 찾기 위해 읽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세계여행을 다녀왔다네? 책을 읽으며 세상을 둘러봐야겠다는 마음이 더 단단해졌다. 필 나이트만큼 위대한 기업가도 세계여행을 했다. 이 정도면 나뿐만 아니라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세계여행의 당위성에 대해 당당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2. 필 나이트의 오리건에 대한 자부심
나는 나무가 우거진 오리건의 작고 조용한 도시, 포틀랜드에서 태어나 자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오리건은 아름다운 곳이지만, 큰 변화가 없는 곳이기도 하다. 옛날부터 오리건은 아주 오래된 오솔길로 유명했다.
필 나이트는 오리건 주 출신이다. 책에는 그가 나고 자란 오리건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드러내는 내용들이 많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은 오리건의 오솔길에 관해 자주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할 대 선생님은 늘 잔뜩 화가 난 표정이었다. “이 오솔길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권리, 기질, 운명, DNA라고 할 수 있지. 겁쟁이들은 올 생각조차 못 했어. 약한 사람들은 도중에 죽었지. 이렇게 해서 살아남은 자들이 바로 우리 오리건 사람들이야.”
필 나이트는 말한다. 오리건의 오솔길에서 개척자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비관적인 생각을 버리고, 미래의 가능성을 바라보자고 했다. 지금의 나이키는 이런 오래건의 정신이 기반이 된 것 같다.
예전부터 출신 지역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필 나이트와 같은 사람들은 우리나라처럼 서울만을 바라보지 않는다. 자신의 지역 정체성을 기반으로 자기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는 광고기획자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읽고 나서부터다. 박웅현은 책에서 '우리의 비극은 모두가 서울을 동경하는 데서 오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유럽이나 미국, 가까운 일본만 해도 각 도시마다 자부심이 있어서 다른 도시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필라델피아, 오사카, 알바니, 아를, 전부 자기들이 중심에 있고 그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어요. 그런데 대한민국은 유독 모두가 서울을 봐야 해요. 서울이 아니면 중심에 있지 않은 것이고, 다 불행하다고 생각해요. 수원이면 수원으로서 온전히 행복하고, 진천이면 진천으로 행복하다면, 거기서 자기 일을 충분히 이룰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행복할 텐데요.
박웅현. 책은 도끼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당연히 서울에 대한 동경은 없다. 하지만 애정은 있다. 누구처럼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자조하지도 않고, 우리나라의 문화를 외국은 이렇지 않다면서 평가절하하지도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에 좋은 것만 있을 순 없다. 하지만 나한테만큼은 헬조선은 아니다. 필 나이트가 만약 대구나 부산에서 태어났다면 그는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을 것이다.
필 나이트가 오리건에 대해 강한 애정을 드러내면서 그 지역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책에서 말했듯, 나 또한 서울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창의성을 발휘해 행복한 삶을 살며, 세상에 기여하고 싶다.
3. 믿음, 달리기에 대한 믿음 _ 나는 어떤 믿음이 있나?
나는 백과사전을 제대로 팔지 못했다. 게다가 그 일을 싫어했다. 그나마 뮤추얼펀드는 좀 더 많이 팔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일도 싫었다. 그런데 신발을 파는 일은 왜 좋아하는 것일까? 그 일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달리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매일 밖에 나가 몇 킬로미터씩 달리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내가 파는 신발이 달리기에 더없이 좋은 신발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내 말을 듣고 나의 믿음에 공감했다. 믿음, 무엇보다도 믿음이 중요했다.
믿음. 필 나이트는 믿었다. 달리기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동시에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이 파는 신발이 가장 좋은 제품이라고 믿었다.
충격적 이었다. 달리기라는 가장 원초적인 행위로 세상을 더 좋게 만든다고?
필 나이트의 굳건한 믿음을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봤다. 나는 어떤 믿음이 있나? 내가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믿음은 무엇인가? 잠깐 생각을 해보았다. 필 나이트처럼 달리기라는 구체적인 믿음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아니면 지금 당장 생각이 안 나는 건지). 내 꿈의 바탕이 될 믿음은 무엇일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곧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은 들었다. (이것도 믿음..?)
정리
어떻게 '나이키'는 위대한 브랜드가 되었나?라는 기업에 대한 궁금증에서 <슈독>을 읽기 시작했다. 진짜 궁금했던 나이키 브랜드의 성장 과정은 책에서 많이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필 나이트의 경험과 생각들을 접하며 다른 방면으로 영감을 얻었다. 그래서 더 재밌게 읽었다.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의 ‘경험들과 철학’이 나이키를 위대한 브랜드로 이끈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