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의미 있는 것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오전 일곱 시, 알람 없이 자연스럽게 눈이 떠진다. 일어나자마자 사내 메신저와 메일을 확인하는 성실한 나는 며칠 전에 죽었지만, 성실했던 이전 생활이 여전히 나를 일으킨다. 성실한 내가 죽었다면 오늘 태어난 나는 무엇일까. 게으른 구직자? 돈이 되지 않는 작업을 지속하는 몽상가? 행복한 퇴직자? 모두 맞는 말이지만 모두 아닌 셈이다.
시간이 많아지니 잡념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해온 업무와 관계의 잔상이 계속 남는다. 동그란 원형 시계를 보고 분침과 시침의 간격이 좁아지고 넓어지며 내가 했던 업무의 양을 재본다. 열한 시 십오 분이면 출근한 지 거진 세 시간 반은 지났고, 오전 목표는 거의 마쳤겠지. 그리고 긴급히 쳐내야 할 업무들을 마쳤겠구나.. 이 모든 잡념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지만, 생각은 끊이지 않는다.
여유 있게 운동하고 집에 돌아와 아침 겸 점심으로 양배추 샐러드와 계란 요리를 먹으며, 퇴직 선물로 받은 꽃 한 무더기에 코를 박고 향기를 맡는다. 이전에는 꽃을 받아도 금방 시들었던 것 같은데 밥을 먹는 내내 꽃이 눈에 들어온다. 화병을 요리조리 돌려보며 사진을 찍어서 꽃의 종류를 챗 GPT에게 물어본다. 챗형 AI는 생활 용도로 다수 사용한다는 이야기가 주제로 나온 적이 있었다. 나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용도가 아니라 일반 질문에도 대답을 한다는 것에 놀랐다. 한 편으로는 AI에게 그런 걸 물어보면 에너지 낭비가 아닐까 싶기도 하였는데, 역시 사람은 그 상황이 되어보아야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늘어난 잡념만큼 궁금해진 것이 많았다
시간이 없는 것은 정말 가난한 일이다.
친구들 그리고 친구가 되어버린 전 동료들을 만나려고 하면 두 달 전에 약속을 잡곤 했다. 몇 해 동안은 가족 여름휴가에 불참하고, 오빠와 새언니에게 내 역할을 넘겼다. 직전 연도에는 단 하루 휴가를 냈다. 이렇게 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시절도 있었고, ’당연한‘ 때도 있었다. 한낮에 햇빛이 드는 집에서 차를 마시며 어떤 다과를 먹을지 고민하고, 배송서비스가 아닌 직접 장을 보며 시간을 죽이는 일이 내겐 얼마나 생소하겠는가. 오후 다섯 시가 되기 전에 잡곡밥을 조리하고 저속노화 식단을 구상하며 서머싯 몸의 책을 들었다가, 어슬러 르귄의 책을 덮었다가 하는 이 신선놀음이 너무도 낯설었다. 나는 무엇에 그렇게 쫓기며 살았던 것일까.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미안한 것보다 내게 너무 야박한 게 아니었던가 스스로를 돌이켜본다.
내게 의미 있는 것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게으른 구직자. 몽상가. 퇴직자. 이 모든 이름을 어깨에 둘러메고 일단은 내 시간을 갖기로 한다. 업무와 생산성을 위한 AI가 아닌, 소소하고 불확실한 내 개인의 궁금증을 위해 전기와 데이터센터를 조금 활용해 보고자 한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에 나오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파리로 떠나 붓을 잡게 된 스트릭랜드 씨의 말처럼, 나는 불확실성에 온몸을 내던졌고 그 마음은 그와 같았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는 문제가 되지 않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1)
스트릭랜드의 모델이 된 폴 고갱의 타히티를 타자화 하는 시선을 우상화하는 것은 절대 아니며, 내가 건강 악화와 모든 시련으로부터 내 신념을 지킬만큼의 불굴의 의지를 가진 초인은 아닌 것도 알고 있으나, 그의 마음만은 서머싯 몸만큼이나 잘 이해하고 있다.
다른 무엇을 하더라도 다시 내 의미로 돌아오는 삶. 스트릭랜드 씨 말마따마 이런 종류의 저주는 누구나 걸리기 어려운 것이니, 내게 주어진 것을 소중히 여겨보고자 한다.
(1)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송무 옮김, 도서출판 푸른숲, 2008/2014, 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