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인 타이틀을 달자면) 유체이탈을 경험하였다.
사무실에 일정 시간 머물러야 하는 근무 형태가 아닌, 자유롭게 시간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된다면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직장인에게는 불가능하고, 오후 작업자는 애매하다고 느끼는 시간인 열 시에서 열한 시 사이 느지막한 시간에 명상하는 것을 꿈꾸었다. 싱잉볼의 진동에 맞춰 긴장을 풀고 잡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몸과 호흡에만 집중하는 명상. 신촌의 유명한 싱잉볼과 요가 수업이 있는 센터에 예약을 해두고 2주 정도 설레는 마음으로 지냈다.
왜 싱잉볼을 선택하였나요?
호기심 반 설렘 반 기대감으로 부푼 나에게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정결한 삶을 꿈꾼다는 얘기를 하기엔 내 삶이 너무 부끄러워서, 잡념을 없애고 싶어서 왔다고 대답했다. 요 며칠 생각과 여유, 생각할 수 있는 여유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지만 생각이 너무 많아서 괴로울 때가 있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에 스스로 자신이 없어서 명상이라는 매개가 필요했다. 일과 삶에 몰두한 나를 한 발짝 떼어서 감각을 열 필요가 있었다.
명상 공간에 앉아 다른 참여자를 기다리는데 가볍게 눈을 감고 깊은 호흡을 해보았다. 스무 개가 넘는 싱잉볼, 흡입력 있는 배경 음악과 바닥의 따뜻함 덕분에 일반적인 공간과 멀리 있는 것 같았다. 남들은 절간 냄새 같다고 안 좋아하는 내 향수도 오늘 이 공간에 오기 위해 샀던 것처럼 완벽히 어울렸다. 싱잉볼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몽롱해졌다. 아침에 근력 운동을 해서 그런 걸까? 평소에 하지 않는 천국의 계단을 타서 그런 걸까? 오늘 이 체험이 내 잡념을 모두 가져가 줄 수 있을까?
말은 파동을 띠고 있고, 그 모든 주파수는 우리를 괴롭히거나 돕습니다.
싱잉볼 선생님을 통해 들은 파동과 주파수 이야기는, 효율적이고 빠르게 성장하는 삶을 벗어나 내가 찾고자 하는 의미의 정수였다.
일을 다 끌어다 하는 것 같은 나에게 가족들이 걱정하며 바보 같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내가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그것이 사람이 아닌 조직일지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역할을 다 하였다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것은 타인과 나 그리고 주변을 아우르는 환경이 이어져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한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닌, 느슨한 관계에서 오는 작은 만족감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내뱉는 말에 담긴 작은 친절은 상대방에게 전해져 더 많이 퍼질 수도 있는 것이고, 내가 악의적으로 한 말은 청자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결국은 내게 돌아올 것이다. 휘게의 나라 노르웨이 국민들이 주목했다는 사회인류학자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의 ‘인생의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지는 않지만 모든 것은 관계적이다. (...) 눈에 보이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실을 짜고 연결해서 운명과 나를 화해시킨다”(1).
싱잉볼을 처음 하면 오히려 환부가 강렬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선생님은 싱잉볼 테라피가 끝난 뒤, 마냥 좋을 것 같은 싱잉볼에 대해 무시무시한 말씀을 하셨다. 싱잉볼을 겪으며 사람마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가끔은 감정 그 이상의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잡념을 없애고자 하였는데 생각이 알 수 없는 형태의 덩어리로 쏟아져 내렸다.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이상한 생각이 내 머리가 아닌 물리적인 공간에 위치하면서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싱잉볼 주파수가 왼쪽, 오른쪽에서 들리는 것처럼 생각도 발 밑, 머리 위, 귀 뒤편 등 불규칙한 위치에서 다가왔다. 꼭 내가 몸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 무형의 파동이 된 기분이었다. 물리적인 형태의 나는 쪼개지고, 싱잉볼의 소리와 내 생각에 붙어 유영하는 무언가가 되었다.
선생님이 내 몸 가까이 싱잉볼을 울리자 진동을 느끼며 내 형체를 되찾았다. 다리, 배, 가슴, 목, 머리에 부딪치는 소리 덕분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떤 굴곡을 갖고 있는지 다시 깨닫게 되었다. 천천히 몸을 되찾자 불편함은 어디론가 도망가 버렸다.
가장 높은 차원의 진동은 진실입니다.
데이비드 R. 호킨스의 의식 지도에서 인간의 의식 상태를 하나의 연속적인 스펙트럼으로 설명하며, 최상위 개념으로서 ‘진실’을 설정한다. 진실이란 종교적 계시나 도덕적 정답이 아닌, 개인이 기만이나 감정적 투사에서 벗어나 왜곡 없이 인식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호킨스는 감정과 태도의 차이를 ‘진동’이라는 은유로 표현하면서, 공포, 분노처럼 생존 반응에 가까운 인식일수록 낮은 층위에, 인지적 왜곡이 줄어든 상태일수록 높은 층위에 배치한다. 모든 것을 개인의 경험으로 치환하지 않고,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진정한 ‘내’가 되는 것이 가장 높은 차원의 진동인 셈이다. 나의 무모한 퇴직과 도전에서 다시 얻고자 하는 유일한 것이 어떤 이론에서는 가장 높은 의식 상태를 의미한다니, 그런대로 천방지축이지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싱잉볼을 통해 내가 잡념이 되어버린 경험을 하고 나니, 상대적으로 일상이 평온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자로서, 쉽게 주의를 전환시키는 습관은 잠시 서랍에 넣어두려고 한다. 내가 가진 유일한 사치를 조금은 아끼고 즐기다 보면 조금씩 가장 높은 차원의 진동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1)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인생의 의미』, 이영래 옮김, 도서출판 길벗, 2024/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