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히보빌레] 조금씩 천천히 따듯하게

by 김풍류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알자스로 가는 길 위에 있었다.
졸음과 설렘이 번갈아 찾아왔고, 차창 밖으로 스치는 겨울 풍경은 그 둘 사이를 천천히 흔들었다.
눈은 오지 않았지만, 나무는 모두 잎을 떨어뜨렸고, 언덕 너머엔 와이너리의 흔적이 앙상한 포도나무 사이로 조용히 누워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한 건, 다름 아닌 유럽의 크리스마스였다.
그중에서도 알자스. 아기자기한 마을들과 반짝이는 마켓, 그리고 뱅쇼 한 잔.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계속 속삭였다.
"이건 꼭 직접 걸어봐야 해."

우리가 도착한 마을은 히보빌레.
크지도 않고, 그리 유명하지도 않지만, 그만큼 조용하고 다정했다.
주차장 한켠에 겨우 차를 밀어넣고 내렸을 때, 찬 공기 속으로 희미한 캐럴이 실려왔다.
그 순간, 비로소 크리스마스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수광장엔 소박한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걸려 있었다.
과하지 않은 불빛, 금빛 별 몇 개, 작게 들리는 웃음소리.
그 아래를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였고, 아이들은 작은 선물 상자를 들고 있었다.
모두가 바쁘게 흘러가면서도, 그 속엔 이상할 만큼의 평온함이 있었다.

어느 작은 가게 앞에 멈춰 섰다.
직접 만든 듯한 리스와 소품이 걸려 있었고, 가게 안에서는 치즈와 크레망, 그리고 살짝 비스듬히 기울어진 와인병들이 놓여 있었다.
그 순간, 이곳 사람들에게 와인과 축제는 ‘행사’가 아니라 ‘일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배가 고파질 즈음, 와플을 굽는 작은 포장마차를 발견했다.
오래된 파라솔 아래, 부부로 보이는 이들이 와플을 만들고 뱅쇼를 따르고 있었다.
“Un vin chaud, s’il vous plaît.”
조심스럽게 주문을 하고 잔을 받았다.
잔에서 피어오른 향은 달콤했고, 첫 모금은 따뜻했다.
시나몬과 오렌지, 그리고 이 지역의 시간이 조금씩 녹아들어 있었다.

조명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면서 마을은 새로운 얼굴을 드러냈다.
낮의 소박함은 밤의 따스함으로 바뀌었고, 골목마다 불빛이 차가운 공기를 조용히 데웠다.
멀리 성당 종탑이 어스름 속에 서 있었고, 사람들의 말소리는 점점 더 다정해졌다.

히보빌레는 그런 마을이었다.
작고, 조용하고,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마음에 남는 마을.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생각했다.
첫 뱅쇼, 좁은 골목, 금빛 별, 그리고 겨우겨우 밀어넣은 주차 자리 하나까지.
그 모든 것이 모여 이번 크리스마스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던 하루가, 가장 따뜻하게 기억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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