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당일 아침, 신부 입장 시 착용할 면사포를 고르라는 헬퍼분의 말씀에 고민하다 엄마를 찾았다.
"신부님이 안 고르시고요?"라는 질문에 살짝 뜨끔했지만 엄마를 커튼 안으로 불러 오케이 사인을 받고서야 선택 완료.
마마걸인가 싶겠지만 소문난 우리 엄마의 안목은 내가 신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보기였다.
삼 남매 중 장녀인 나는 엄마 아빠의 첫사랑이었다. 스물여덟 결혼을 하기까지 인생에서 대학 입학으로 기숙사 생활 2년 반, 동생과의 1년 자취를 제외하고는 엄마 아빠 품을 떠난 적 없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결혼을 하고도 신혼집은 친정까지 걸어서 10분 거리라 가족들은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다.
이사를 하고 지역을 옮긴 지금,
나이 서른에 고백하기엔 부끄럽지만 내가 가족의 바운더리에서 벗어났다는 게 사실 좀 두려웠다.
결혼 전 가끔씩 엄마에게 호로자식마냥 날뛰고 잠든 날이면 꿈에서 엄마가 사라졌다. 꿈이라서 다행이지만 그 순간 느낀 막연함은 두려움의 가장 큰 모양이었다. 그 두려움이 이사 후엔 현실이 된 기분이었다.
결혼을 하고 집을 떠나면서 난 독립한 거라 생각했지만 실질적인 독립은 아니었나 보다. 항상 닿을 거리에 나의 울타리가 있었던 거다. 이제는 나의 구역을 만들고 가꾸어야 한다. 마냥 어린아이이고 싶었던 마음은 내려놓고 어른이 되어야 한다.
엄마가 그랬듯 말이다.
아직도 마음 한편엔 비상벨이 있어서 급할 땐 엄마를 찾는다. 나의 짧은 지혜로 해결 못할 일들은 사방천지에 산적해있고 '아버지, 정답을 알려줘.'를 울부짖던 래퍼의 노랫말이 맴돌 때가 많으니까.
그렇지만 감사하게도 내가 나일 수 있게 해주는 동반자가 있으니 힘을 합쳐 진정한 독립을 위한 여정을 떠날 거다. 비록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조금씩 나아가야지. "난 이제 다 컸다."를 외칠 수 있을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