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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경 Jun 17. 2024

수행평가, 진로랑 엮을까요? 말까요?

수행평가 오해와 진실

대부분의 과목에서 한 학기에 한 번 정도는 '과목(혹은 배운 내용)과 연관된 자율 주제 탐구 보고서' 활동이 진행됩니다. 선생님들은 이 보고서의 일부를 발췌하여 학생의 생활기록부에 기재해 줍니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생활기록부를 적는 듯한 마음으로 수행평가 작성에 최선을 다합니다.


수행평가가 생활기록부랑 직결되다 보니 선생님들도 학생들의 수행평가 작성에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또한 선생님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생활기록부를 기반으로 하여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작성 지침을 전달합니다. 


선생님들이 전달하는 지침은 대체적으로 비슷합니다. 다만 선생님에 따라 지침이 대조되는 경우가 극히 일부 있습니다. 오늘 게시글의 제목인 "수행평가, 진로랑 엮을까요? 말까요?"는 대표적으로 선생님에 따라 답변이 갈리는 질문입니다. 답변이 갈릴 경우 학생들은 어느 선생님의 말에 맞춰 과제를 작성해야 할지 많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학생들의 답답함을 풀어주기 위해 오늘의 게시글을 준비했습니다.


수행평가, 진로랑 엮을지 말지에 대해 두 부류의 선생님들은 왜 그렇게 학생들에게 요구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느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될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2010년대, 표준적인 방식은 '진로를 바탕으로 수행평가를 적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3년간 교대 지망생으로  학교를 다녔는데 그 당시에 학우들끼리 '기승전 교대'로 수행평가를 적어야 한다는 말이 돌았을 정도입니다. 때문에 어떤 과목을 배우던 교육학적 면모나, 교사로서의 역량을 보여주기 위한 코멘트가 수행평가에 포함되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대에 들어오면서 '진로랑 수행평가랑 엮지 마라'는 선생님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 선생님들은 이제는 '해당 과목의 내용을 중심으로 수행평가를 작성해라'라고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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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런 변화에 2가지 사회적 요인이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1)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도입(2018, 고1 적용)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비전은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입니다. 창의융합형 인재란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추고 바른 인성을 겸비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다양한 지식을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인재상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여부는 지필 평가보다 수행평가로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2015 개정 교육과정 세대에 들어 수행평가의 성적 반영 비중이 기존 10% 수준에서 40% 수준으로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교육과정의 비전으로 보나, 성적 반영 비중으로 보나 중요도가 매우 높아진 수행평가는 갈수록 고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기승전 학과'로 작성하는 진로를 중심으로 한 수행평가는 특별히 고도화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진로 중심의 수행평가에 대한 니즈가 줄어들었습니다.


(2) 고교 블라인드('19.11.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 기반, 21년 적용)

고교 블라인드 이전은 소위 '고교 프로파일'의 시대였습니다. 원서가 들어오면 우선 학교의 수준을 판단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학생의 수준을 평가하였습니다. 잘하는 고등학교 학생은 등수가 낮더라도 높은 점수를 주고, 못 하는 고등학교 학생은 등수가 높더라도 낮은 점수를 주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고교 블라인드가 시행되면서 원서에서 고등학교 이름이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은 고등학교의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지역 명문고의 전교 3등과, 지역 하위권 고교의 전교 3등의 수준은 너무나 큰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해당 학교의 평균 점수와 표준 편차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부족하여 많은 대학이 살펴보기 시작한 것이 '수행평가의 수준'입니다.

수행평가에 학생이 활용한 '수학 공식'이 매우 어려운 것이라거나, 학생이 읽은 '영어 원서'가 매우 높은 수준이라면 해당 학생은 아마 수준 높은 고등학교에 재학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이런 흐름에 따라 학생이 좋은 고등학교 학생임을 강조하고, 높은 수준의 학업 성취도를 갖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해졌기에 수행평가를 진로가 아닌 과목의 내용을 중심으로 작성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생각됩니다.


(3) 기타 

이외에도 교육학게에서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활용'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진 측면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지식의 암기' 능력은 시험 성적으로 보여주고, '전공에 대한 애정'을 수행평가에서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지식의 활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학계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수행평가에서 '지식의 활용'을 중심으로 작성하게 된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최근 자율전공학부의 확대 등을 보면 알 수 있듯 대학에서 신입생을 선발할 학과에 대한 애정을 과거보다 덜 중요하게 보는 경향도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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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진로 중심 수행평가'에서 '과목 심화 중심 수행평가'로 시대가 변화해 왔습니다.

근데 이 답변은 이 글의 제목인 "수행평가, 진로랑 엮을까요? 말까요?"에 대한 충분한 대답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진로 중심'이면서 '과목 심화'가 된 수행평가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진로'를 잘 활용하면 '과목 심화'를 더 편리하게 할 수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예시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이는 저희가 작성한 생활기록부 샘플 중 '1학년 수학 세특'을 발췌한 것입니다.


" ‘데카르트가 들려주는 좌표 이야기(김승태)’에서 데카르트가 천장 위 파리에서 영감을 얻어 좌표계를 발명하였다는 내용을 접하고, 좌표 덕분에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일인 특정 대상의 위치에 대한 정밀한 파악과 공유가 가능해졌음을 알게 되면서 수학의 존재 의미를 깨달아 충격을 받음. 이를 수술 시 수술부위를 정확하게 짚어내기 위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 조사를 거듭한 끝에 뇌동정맥기형 치료를 위한 감마나이프 수술에서 병변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좌표가 활용됨을 알게 되어 그 계산방법을 탐구하는 보고서를 작성함. 먼저 뇌 지도가 전교련과 후교련이라는 뇌 부위를 좌표축으로 하여 좌표평면을 만들고 서로 다른 2개의 좌표평면을 교차하여 다시 3차원 좌표평면을 만드는 과정을 거쳐 탄생함을 잘 설명하였고, 이어서 병변의 중심좌표 계산방법을 서술하였는데, X-Y평면에서의 차트 위에서 각 축에 점을 네 개 설정하고, 이를 두 개씩 짝지어 1차 방정식을 두 개 만들고, 두 선을 연결하는 교점의 방정식 해를 구하고, 이를 다시 X-Z 평면과 X-Y 평면에서 구하여, 실제 병변의 중심좌표를 두 평면에서의 평균값으로 구하는 일련의 과정을 그래프와 수식을 활용하여 논리적으로 설명함."


어떻습니까. 해당 학생이 자신의 '의사'라는 진로를 연계하지 않고, 수학 과목으로서만 심화하려고 했으면 이 정도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의사'라는 진로를 갖고 있었기에 접하게 된 어려운 수학적 지식을, 자신이 학습한 내용을 기반으로 심화하여 이해해 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이 학교에서 학습한 내용에서 심화를 하려면 '교과에서 본 것'과 '상상력'을 이용하여 심화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산의 진로를 기반으로 심화를 하면 '자신이 학습한 내용이 활용된 매우 어려운 사례'를 인용할 수 있어 과목 심화를 비교적 쉽게 이뤄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자신이 배운 내용을 활용하고 융합하는 것이 현재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인재상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진로 중심'으로 적되, '과목 심화'를 꼭 챙겨라고 합니다.

하지만 '진로 중심'으로 적으면 죽어도 '과목 심화'를 못 하는 과목과 주제들이 있습니다.(예를 들이 '미술'의 '추상화'를 '수의사'라는 진로를 가진 학생이 작성해야 하는 경우)

그런 경우 '진로 중심'을 챙길 것이냐 '과목 심화'를 챙길 것이냐 선택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최근 트렌드에 따라 '과목 심화'를 챙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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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부 선생님들은 왜 아예 '진로 중심'으로 적지 말라고 하는 걸까요?

그건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행평가를 작성하는 기술이 부족하여 '진로 중심'으로 적어버리면 '과목 심화'를 매우 못해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선생님들이 양자택일이라고 생각하고 '진로 중심'으로 적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진로 중심'으로 작성했으나, '과목 심화'가 훌륭하게 작성이 되었다면 그 어떤 선생님도 해당 수행평가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입니다.(오히려 잘 쓴 수행평가의 사례가 될지도 모릅니다)



오래전부터 질문이 많이 들어오던 주제라 글로 좀 꼼꼼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수행평가 작성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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