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고 있는 2024년 수행평가 트렌드 따라가기
지난 5년은 수행평가의 퀄리티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시기였다.
이는 고등학교의 평가 기준과, 대학의 선발 방식에서 기인한 변화이다. 과거 고등학교는 중간고사 45%, 기말고사 45%, 수행평가 10%가 일반적인 평가 방식이었다. 하지만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도입과 함께 대부분의 고등학교가 중간고사 30%, 기말고사 30%, 수행평가 40% 혹은 수행평가의 비율을 이보다 더 높게 설정하고 있다. 여전히 수행평가는 열심히 하면 만점을 주는 수준으로 운영하는 학교가 많지만 절대적인 비율이 높아지면서 당연히 입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학생들의 평균적인 노력 정도가 올라가면서 수행평가의 평균적 수준이 올라가는 요인이 되었다. 대학에서도 교육과정의 취지에 맞게 생활기록부에 기록된 수행평가 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평가에 반영하게 되었다. 이에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성적뿐만 아니라 수행평가 퀄리티도 중요하다는 내용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면서 상위권 학생을 중심으로 수행평가에 대한 퀄리티가 높아지게 되었다.
지난 5년간은 수행평가가 단순히 '어려워지는 것'에 학생들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어느 정도로 어려워졌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보면 2010년대에는 수행평가에서 진행하는 탐구의 퀄리티가 해당 과목의 내신 5번 문제 수준과 유사했다고 생각된다. 해당 과목에서 학습한 내용들 중 아주 심화되지 않은 지식을 자신의 진로와 연계하여 쓰는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수행평가의 수준이 상당히 올라가서 해당 과목의 내신 시험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정도까지 탐구의 수준이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해당 분야의 학술지는 물론이고, 나아가 학위 논문에 나오는 내용까지 인용하는 학생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전문가들이 심화 측면에서는 "이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라고 보는 듯하다. 가끔씩 공개되는 서울대 의대와 같은 최상위권 대학의 합격자 생활기록부를 보면, 탐구 내용의 수준이 대학교 1~2학년 수준에 머무르는 케이스도 상당히 보이는 것을 보면 심화적인 측면에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라고 보는 것도 맞겠다.(물론 높여서 나쁠 것은 없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고, 면접에서 잘 대비를 할 수 있다면)
그러면 '심화'로서 수행평가의 퀄리티를 높이는 것에 한계가 나타났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퀄리티를 높여 경쟁력을 강화해야 할까.
현재 이에 대한 정답은 "지식을 높이(심화)가 아닌, 방향을 확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랜 경험과 본능에 따라 지식이 단순히 아래에서 위로 쌓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낮은 시험 성적에서, 높은 시험 성적으로. 낮은 수준의 학위에서 높은 수준의 학위로. 쉬운 수준의 문제에서 높은 수준의 문제로. 우리 사회가 암기를 중심으로 평가하던 시대에는 이게 어느 정도 통하는 논리였지만, 2022 개정 교육과정을 비롯한 현대 교육은 우리의 지식에 대한 태도가 높이뿐만이 아니라 방향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 교육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서논술형 평가, 창의/사고력, 문제해결능력 모두 잘 생각해 보면 지식을 더 높게 쌓아가는 것보다, 지식을 다양한 방면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것을 핵심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높이 쌓는 것에 관심이 있었을 뿐, 방향을 널리 확대하는 데는 매우 어색하다. 고등학생들이 어려운 오지선다형 문제는 잘 풀지만, 조금 더 쉬운 수준의 논리를 적용한 논술 문제는 잘 못 푸는 것, 충분히 잘 알고 있는 분야이지만 토론이나 일상 속에서는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이에 대한 대표적 사례이다.
단순히 높이(심화)의 영역에서 경쟁력을 더 이상 평가할 수 없어서 우리가 방향을 확대해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을 비롯한 현세대 교육이, 그리고 미래 사회가 단순히 지식의 높이보다는 지식을 다양한 방향으로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수행평가의 본질을 바라보아도 그렇다. 단순히 얼마나 더 높은 수준의 지식이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면 우리는 수행평가라는 제도를 새로 만들지 않고, 기존의 시험을 더 어렵게 만드는 방식으로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행평가가 보자고 하는 가장 본질적인 가치가, 학습 내용의 높이가 아닌 다양한 방향이라는 점 또한 이 부분에 깨달아야 한다.
높이가 아닌 방향과 넓이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쯤 하면 된 것 같고, 실질적인 방법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좀 더 실질적인 예시에 들어가기 앞서 Bloom의 인지적 목표 분류를 참고하면 개념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Bloom은 학습자가 교과를 학습한 이후의 행동을 지식, 이해, 적용, 분석, 종합, 평가의 6가지로 나타냈다.
지식이란 배운 내용(사실, 개념, 원리, 방법 등)을 기억하는 것이다. 정의하고, 기술하고, 이름 짓고, 찾아내고, 열거하고, 약술하고, 진술하는 것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해란 배운 내용에 관한 의미를 파악하는 행위이다. 내용이 다소 변형되고 치환되어도 그 의미를 파악, 해석, 추론하는 행위이다. 구별하고, 전환하고, 설명하고, 추론하고, 예측하는 것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적용이란 배운 내용을 구체적인 또는 새로운 장면에서 활용하는 행위이다. 배운 내용을 정확하게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행동을 말한다. 변환하고, 계산하고, 풀어내고, 사용하고, 작성하는 것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분석이란 배운 내용을 주어진 자료의 구성과 내용을 파악(이해)하는 행위이다. 세분하고, 구분하고, 분리하고, 관계 짓고, 도식하는 것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종합이란 새롭고 독창적인 무엇(형태, 원리, 관계, 구조 등)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주어진 자료의 내용(요소)을 합치는 행위이다. 병합하고, 구성하고, 창조하고, 고안하고, 조직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평가란 어떤 대상의 가치를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행위이다. 여기서 평가란 평가를 '당하는'것이 아닌,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본인이 주도적으로 평가를 '시행하는'것을 이야기한다. 결론짓고, 입증하고, 주장하고, 판단하는 것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지식이 단순히 높게 쌓아 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향성으로 구성되고 파생될 수 있다는 것을 위 내용들을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읽어보면서 이해했겠지만 앞에서 뒤로 갈수록 좀 더 높은 수준의 것으로 바라본다. 우리는 학생의 수행평가에 이와 같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단순히 어려운 문헌을 읽고, 이해했다고 적어서는 안 된다. 조금 쉬운 내용이라도 본인이 추론하거나, 전환하거나, 풀어내거나, 도식하거나, 창조하거나, 고안하거나, 입증하는 등의 다양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서울대를 비롯한 유명 대학들에서 발표하는 우수 사례들도 생각보다 학술적으로 어렵지는 않지만, 위와 같은 다양한 행동이 나타난다.
이렇게 말했을 때 따라 하기 힘든 학생을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1. 글을 읽지 말고 써라
글을 읽으면 더 어려운 내용을 차용하기 쉽다. 하지만 방향성은 지극히 국한된다. 내가 글을 쓰는 활동은 어려운 내용을 쓰기는 어렵지만, 훨씬 더 다양한 방향으로 파생될 수 있다. 쓰는 글에 나의 고유성이 드러날 수 있다면 훌륭하다.
2. 기존에 있는 것이 아닌, 기존에 없던 것에 집중하라
기존에 있는 지식들을 차용하고, 이를 통해 심화를 하고자 하면 당연히 어렵게 쓰기는 좋다. 하지만 탐구의 흐름이 고정된 지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새로운 방향으로 탐구를 이끌고 가기 어렵다. 당연히 학생의 개인적 특수성 또한 드러나기 어렵다. 기존에 없던 것을 창조해 내는 것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방향을 발생시킨다. 기존에 없던 물건을 나의 지식을 활용하여 만들어낸다거나 하는 활동 등이다. 당연히 심화는 부족할지 모르나, 이것이 훨씬 더 좋은 탐구로 평가받을 것이다.
3.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쓰지 마라
간신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써도 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지식이라고 할지라도 베끼는 수준으로 수행평가에 옮겨 담을 수는 있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지식에 독자적 방향성이 생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도하게 수준을 높이기 위해 이해되지 않는 내용을 써넣는 것은 수행평가를 단순한 방향으로 묶어두는 가장 치명적인 방식이다.
4. 과감하게 실패하라
수행평가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절대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문헌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절대 실패하지 않고자 하는 노력은, 새로운 방향을 도전하는데 큰 방해가 된다. 좋은 생활기록부의 특징은 많은 실패가 녹아있고, 이에 대한 극복 방식이 녹아있다는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은 많이 걸릴지 모르지만, 더 좋은 실려과 수행평가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이라 믿는다.
5.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이 아닌, 좋은 과정을 만드는 데 집중하라
수행평가라고 하면 좋은 결과물(보고서 등)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노력에서 다양한 방향성이 돋보이긴 어렵다. 오히려 좋은 과정을 만들기 위해 실험 방법을 다양화한다거나, 조사 과정을 참신하게 가져가는 등의 노력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방향성을 발생시킨다. 물론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지나치게 결과물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에 과정에 조금 더 무게를 두는 것은 좋은 도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위의 제안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생활기록부를 적을 수 있는 방법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다양하다. 하지만 위의 도전을 조금씩 해나간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방향은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패션에도 트렌드가 있듯, 수행평가와 생활기록부, 나아가 대학 입시에도 트렌드는 존재한다. 트렌디한 경쟁력 강화를 통해 원하는 대학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