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 로그북@이집트 후루가다
나는 타고난 겁보다. (@check2dang 서점 닉네임이 쫄보사서인게 괜히 나온 게 아님) 여행하면서 패러글라이딩이나 다이빙했던 경험을 떠올리면 다시 생각해도 놀랍다. 원래 나는 다이빙 배울 생각이 없었다. 남편이 다이빙을 배우고 싶어 해서 홍해에 가게 됐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공기통 메고 바다로 뛰어들고 있었다.
이집트 홍해에 있는 후루가다에는 다이빙'만' 배우러 사람들이 온다. 숙소에서 먹고 자면서 짧게는 3일, 보통은 5일 다이빙을 배운다. 3일을 배우면 오픈워터 자격을, 5일을 배우면 어드밴스 자격을 받는다. 어드밴스 자격을 받아야 수심 18미터 이상의 포인트에 들어갈 수 있다. 보통 5일 정도 배운 후 원하는 포인트에 가서 펀다이빙을 하거나 리버보드(liveaboard) 다이빙을 즐긴다. 리버보드는 말 그대로 배에서 며칠 동안 먹고 자면서 주야장천 다이빙만 하는 건데,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후루가다에 도착해 하루를 쉬었다.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모두 다이빙을 나가기 때문에 낮에는 숙소가 텅 빈다. 저녁이 되어 다이빙 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사랑에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달뜨고 흥분되고 기쁨과 환희에 차 있는 얼굴. '환상적 물속 경험'을 일생에 꼭 한 번은 해야 한다고 수십 명의 다이버들이 설득하는 바람에 엉겁결에 다이빙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부터 바다에 나가는 건 아니다. 수영장에서 BCD라고 하는, 공기통과 호흡기 등을 부착하는 조끼를 입는 연습부터 한다. 그리고 다이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중성부력' 유지하는 방법을 배운다. 중성부력이란 물 아래로 가라앉지도 물 위로 뜨지도 않는, 물 사이를 떠다니는 굉장히 어려운 기술이다. 보통은 호흡으로 조절한다. 숨을 마셔서 폐에 공기가 차면 몸이 뜨고 반대로 숨을 뱉어 공기가 나가면 몸은 가라앉는다. 이런 기본만 배우고 바로 큰 바다로 입수다.
바다에 나가면 본격적으로 생존 기술을 배운다. 호흡기가 빠졌을 때 되찾는 방법, 내 공기를 다 먹었을 때 짝꿍의 공기로 교대로 호흡하는 방법(다이빙은 보통 버디라고 두 명이 짝을 지어한다. 공기가 다 떨어지는 등의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짝꿍의 공기를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물속에서 마스크에 물이 찰 때 물 빼는 방법, 그 외에도 조끼를 벗었다가 다시 입고, 나침반을 활용한 수중 항법을 익히는 등 짧은 시간에 정말 다양한 것들을 배운다. 그렇게 5일간 9번의 다이빙을 했다.
5일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지금은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있다. 보트에서 바다로 퐁당 뛰어들던 두근거리는 순간, 중력을 느끼지 못하는 수중 세계에서의 자유, 모든 소음이 차단된 상태에서 들리는 안정적인 내 호흡 소리, 십여 미터 물속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잔잔하고 맑은 물, 갖가지 산호가 펼쳐진 정원에서 열대어와 유영하던 나. 그런데 오늘 로그북을 읽고 알았다. 내 기억이 사실과 많이 다르다는 걸.
다이빙을 마치고 올라오면 '로그북'에 다이빙 경험을 기록한다. 공기는 어느 정도 마셨는지, 웨이트 벨트의 무게는 얼마였는지, 수온과 시야는 어땠는지, 물속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등을 자세히 적는다. 그곳에 나의 흑역사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5일 내내 중성부력 유지에 실패했다.(아홉번 중에 한두 번은 성공한 것 같다.) 물살이 세고 수심이 깊은 난파선 포인트에서는 하강줄을 잡고 안 놓겠다고 울었다. 내 공기 200바를 다 먹어서 남편 공기를 빌려 먹었다. 조류에 휩쓸렸다가 구조되었다. 로그북 마지막 페이지에 적혀 있는 강사의 말이 나의 다이빙을 한 줄로 요약해주고 있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그제야 생각났다. 내 다이빙이 시련의 다이빙이었다는 걸.
홍해에서의 다이빙 5년 후. 나는 다시 다이빙을 하러 보홀에 가게 되는데... 로그북을 한 번만 들여다봤으면 절대 가지 않았을 것을. 아, 사람의 기억은 왜곡되기 마련이라. 믿을 것은 기록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