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체 게바라

체 게바라 우표@쿠바

by 구디너프

긴 여행을 하기 전에 장 코르미에가 쓴 <체 게바라 평전>을 읽었다. 붉은색 장정에 음영 처리된 체 게바라 얼굴이 박혀있는 그 책. 체의 출생부터, 포데로사를 타고 라틴 아메리카를 누비던 젊은 시절, 성공한 쿠바 혁명과 이후 참여했던 미완의 혁명들,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를 담은 바로 그 책. 지금 읽으면 감회가 다를 것 같지만 그 당시에는 세상에 그런 사람이 존재했었다는 게 충격이었다. 개인의 행복이나 욕심보다 신념을 지키며 살아간 강철 같은 사람.


그 책 한 권으로 단박에 체 게바라가 좋아진 나는 쿠바에 갔을 때 쿠바라는 나라를 여행했다기보다 체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행을 했다. 사실 내가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체를 만날 수 있었다. 거리 벽면에 인쇄된 체, 혁명광장의 체, 박물관과 도서관의 체, 노점의 체...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만큼 많은 체가 그곳에 있었다.


미국에 봉쇄당한 후 쿠바는 더 이상 발전하지 않고 그 시절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쿠바 혁명이 끝난 지 오래지만 여전히 혁명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일까. 체가 세상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쿠바 인들과 함께 숨 쉬고 있었다. 그게 벌써 십 년도 넘은 일이니 지금은 쿠바도 많이 달라졌을 거다. 하지만 체 게바라와 헤밍웨이를 주요 관광자원으로 쓰는 모습은 그대로겠지?


쿠바를 여행하며 체와 관련된 기념품을 긁어모았다. 동전, 우표, 엽서, 티셔츠... 티셔츠는 여행하는 동안 몇 번 입다 말았다. 적당한 게 없어서 아동용을 샀기에 입기 불편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조카에게 줬는데 체 얼굴이 너덜해질 때까지 입다가 버렸다고 했다. 우표는 언젠가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는데 어느 우표 수집가의 판매 권유에 오랫동안 시달렸었다. 그분이 다른 경로로 그 우표를 구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후 형형한 눈빛을 내뿜고 있는 체의 모습이 담긴 엽서는 거실 벽에 붙여두었다. 더구나 그 엽서의 뒷면에는 쿠바의 내가 한국의 나에게 보내는 결연한 의지까지 적혀 있어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다. 동전은 가끔, 주역 점을 칠 때 사용하곤 한다.


체가 내 생활 속으로 들어와 더 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내가 체보다 나이를 더 먹어 세상일에 심드렁해져서인지 한때 뜨겁게 불타던 내 가슴은 미지근해졌다. 그래도 가끔 체의 말들, 그러니까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갖자"와 같은, 읊을 때면 아직 꺼지지 않은 작은 불씨가 살아나 몸이 따뜻하게 데워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