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개의 알라

이슬람 수브하@시리아 다마스쿠스

by 구디너프

나는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 불가지론자다. 아직은 종교가 없다. 그러면서도 모든 종교를 믿는다. 인격신이 없다고 생각할 뿐이지 세상 도처에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신을 부르는 이름이 다를 뿐이라고. 그래서 거실에 불상이 있고 지갑 속에 성모 마리아 카드를 넣어뒀으며 신발장에는 오늘 이야기할 '수브하'를 걸어두었다. 덕분에 신발장 문을 여닫으며 몇 개의 구슬이 튕겨져나가기도 했지만.


수브하는 이슬람교에서 기도할 때 사용하는 도구다. 염주나 묵주처럼 구슬이 줄줄 달려 있다. 수브하는 99개의 구슬을 엮어 만드는데 각 구슬마다 코란에 적혀 있는 알라의 99가지 이름이 새겨 있다.


수브하를 처음 본 건 이슬람의 어느 도시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부르카를 입은 나이 지긋한 여인이 비행 내내 수브하의 구슬을 굴리며 기도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모두들 쿨쿨 잠든 밤, 어두운 기내에서 그녀에게 쏟아지는 옅은 한줄기 빛, 그리고 그 빛 아래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수브하는 시리아의 오래된 도시 다마스쿠스에서 샀다. 옛날부터 다마스쿠스는 이슬람 신자들이 순례를 오는 중심 도시여서 곳곳에 사원이 많다. 그중에는 여자는 출입이 안되거나 머리카락을 가려야만 들어갈 수 있는 사원도 있다. 가끔 사원에서 빌려주는 검은 망토를 입고 기분 나쁜 채 앉아 있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편안했다. 이방인인 내게 이슬람의 사원은 종교시설이면서 휴식의 공간이기도 했다. 여행하다 지칠 때면 사원 구석에 가부좌로 앉아 우주와 종교와 사람에 대해서 명상하곤 했다.


우마야드 사원에 들른 날, 기도하고 사진 찍고 웃고 이야기하는 순례자들을 구경하다가 문득 수브하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모스크 옆에 오래된 재래시장이 있어 그곳으로 가 줄줄이 걸려 있는 수많은 종류의 수브하 중 아무거나 집어 들었다. 그땐 구슬의 개수도, 구슬에 적혀 있는 글자의 의미도 알지 못했다. 상아나 호박 같은 값비싼 재료도 아닌 쉽게 깨져버리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수브하였지만, 이후 긴 여행길 내내 마음에 안정을 주었다.


집으로 돌아 와, 1325년부터 약 25년간 세계를 떠돌았던 이븐 바투타의 여행 기록인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읽다 알게 되었다. 내가 산 그 싸구려 수브하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원' 옆 유서 깊은 시장에서 온 물건이라는 걸.


다마스쿠스에는 바니 우마야라는 대사원이 있다. 이 사원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섬밀하며 우아하고 장쾌하며 완벽한 사원이다. 그에 견줄만한 사원이란 어디에도 없다. (137쪽) 문밖 왼켠에는 놋그릇점포가 쭉 늘어서 있다. 사원의 남쪽 벽을 따라 펼쳐진 이 가관의 시장은 다마스쿠스에서도 이름난 시장의 하나다. (142쪽)


지금은 수브하의 위치를 신발장에서 서재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