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태국 방콕
기념품에 대한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나는 쇼핑을 즐기지 않는다. 물건을 고르고 흥정하는 일을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조악한 물건은 사고 싶지 않은데 그렇다고 물건 더미를 헤집으며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는 일도 미안하고, 그렇게 고른 물건의 값을 깎아내리는 건 더 미안하다. 그런데 여행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쇼핑을 해야만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배를 타고 담넌사두악 수상시장을 둘러보는 일처럼.
방콕은 차오프라야 강과 운화가 얽힌 운치 있는 도시다. 운하 곳곳에는 수상마을도 발달해있는데 담넌사두악 수상시장 역시 그중 하나다. 관광객들은 작은 배를 타고 굽이치는 운하를 떠내려가며 수상가옥과 시장을 돌아본다. 배를 타고 즐길 수 있는 일은 오직 쇼핑! 태국인들은 작은 배 위에서 꽃, 곡식, 과일, 국수 등 모든 걸 다 판다. 처음 '구경만 해야지'했던 마음과 다르게 나는 점점 쇼핑에 빠져들었다. 코코넛 주스를 쪽쪽 빨며 무엇을 살 지 희번덕거리던 나는 사공에게 액자 파는 가게로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많은 액자 가운데 내 눈에 띈 건 붉은 가사를 걸친 세 명의 동자승.
중앙의 커다란 불상을 배경으로 동자승 셋이 눈, 귀, 입을 가리고 있다. 액자를 봤을 때 처음 떠올린 건 시집살이에 관한 속담이었다.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장님 삼 년'이라는 어마 무시한 인고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는 시집살이에 대한 이야기. 그런데 그건 우리나라 속담이지 않은가? 그게 태국까지 전승됐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공자의 극기복례일까? 가만 생각해보니 공자는 유교지 불교가 아니다. 그럼 이 사진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걸까?
액자는 십 년 넘게 침실 벽에 걸려 있었는데 그동안 어떤 의미도 생각해보지 않고 있다가 '아무튼 기념품'을 쓴답시고 이제야 생각하게 되었다. 부랴 자료를 뒤지고 자칭 불교도인 책이당주 찬스를 활용하여 이 액자가 뜻하는 바를 알아냈으니 <잡아함경>에 있는 '모든 것이 타고 있다'는 설법이었다. 부처님은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 이른바 눈이 불타고 있고 귀, 코, 혀도 마찬가지다. 무엇으로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다'고 일찍이 말씀하셨다.
아니 이건 내가 좋아하는 서유기의 모티브 아닌가. (이제부터 읽지 않은 책을 읽은 척 이야기해보자. feat. 고미숙의 <로드 클래식>) 분노의 손오공, 탐욕의 저팔계, 어리석음의 사오정, 이들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어딘가 좀 많이 비어 보이는 삼장법사. 이렇게 네 사람은 도를 찾아 길을 떠난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인 '요괴'와 맞서 싸우며 '자아'를 찾는 구법(진리를 구하는)의 길을. 길 위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여행을 읽다 보면 어느새 인생만사 세상천지에 대한 이치를 깨닫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으나 소설은 그리 친절하지 않다. '여행이 끝나자 길이 시작되었다'라는 말에서 보다시피 구법의 여행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를 다시 낭떠러지로 떨어뜨린다. 끝나지 않는 폐곡선을 오가는 인간의 숙명을 보여주듯.
이 액자에 이런 뜻이 담겼다고 (내 마음대로) 정하고 나니 이쯤 되면 <서유기>를 읽어야하지 않나... 싶다. 10권짜리 긴 소설을 이번엔 과연 읽을 수 있을까. 그런데 기념품 이야기가 왜 자꾸 종교 이야기로 흘러 가는지 모르겠네. 이슬람교와 불교에 대해 썼으니 내친김에 다음 글은 과달루페 성모 이야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