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의 시대

성냥@스위스, 몰디브, 칠레

by 구디너프

기념품 상자를 뒤지다 보니 스티커, 티코스터 등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막 나온다. 심지어는 초콜릿 포장지까지. 그중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물건이 하나 있었으니 성냥이었다.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가 나왔다. 작은 성냥갑은 스위스, 몰디브, 칠레에서 온 것이었다.


내 최초의 유럽 여행지는 이탈리아와 스위스였다. 유적과 자연을 고루 즐기고 마지막 날 스위스의 그럴싸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이름마저 유서 깊어 보이는 올드 스위스 하우스. 고풍스러운 곳이었다. 대부분의 손님이 나이가 지긋한 중장년이었고 그곳에서 나와 구 남자 친구(현 남편)만이 젊었다. 모두들 잘 차려입었고 테이블 매너도 좋아 보였다. (다시 말해서 우리만 티셔츠 쪼가리를 입었고 매너 없이 식탁 위의 모든 물건들을 들었다 놨다 해가며 사진으로 남기고 있었다.) 우리가 '시간이 없지 돈이 없냐'를 외치며 와인과 함께 풀코스로 저녁을 시켜먹고 흡족한 마음으로 식당을 나왔다. 그런데 그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던 걸까. 성냥을 주워왔었나 보다. (주워온 경위는 기억나지 않는다.)


두 번째 성냥은 허니문의 추억이다. 신혼여행을 몰디브로 갔었는데 다시 생각해도 정말 황홀한 곳이었다. 리프로 둘러싸인 낮고 잔잔한 바다. 그 위의 외로운 방갈로 하나. 매일 아침 파도가 나무 방갈로를 핥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눈곱도 떼기 전에 잠옷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모닝 수영을 즐기던 곳. 그런데 그곳에서도 성냥을 주워왔었나 보다. (로맨틱이라곤 1도 없구나.) 앞면에는 리조트 이름이, 뒷면에는 가오리 이미지와 함께 '산호를 보호하자(save the reef)'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음, 좋은 성냥이다.


마지막 성냥은 좀 더 먼 데서 왔다. 칠레의 이스터섬이다. 칠레에 있다고 하기도 뭐한 게 칠레 본토에서 3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남태평양에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다. 원래 이 섬의 이름은 이스터가 아니라 '라파누이(커다란 땅)'였다. 원주민들이 '커다란 땅'으로 부르던 이 섬을 어느 네덜란드 사람이 부활절에 발견했다고 해서 그때부터 '이스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런 폭력적인 일이! (나는 이제부터 이 섬을 라파누이라고 부르겠다.) 라파누이가 유명한 건 아름다운 자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스터리 한 석상 '모아이'가 더 큰 이유이다. 3.5미터부터 10미터의 키에 20톤에서 90톤에 달하는 석상이 섬 전역에 800여 개나 산재해있다. 그곳에서 모아이 연구자를 만났다.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들었는데 요약하자면 본인은 타지 사람인데 이곳이 너무 신비로워 자비를 들여 이 섬과 모아이를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홍보 기념품으로 성냥을 건넸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TMI를 주었다. 저기 (느네 기준으로) 동쪽 끝에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가면 제주도가 있는데 여러모로 라파누이와 비슷하다. 화산섬이고 또 모아이 닮은 돌하르방이 있다. (장난이었는데 진심으로 받아들인 건 아니겠지?) 모아이는 최소 1100-1600년대의 산물이고 돌하르방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렇다. 아무튼 이번 성냥은 주워온 게 아니고 선물 받은 거다.


내가 이곳들을 여행한 게 그리 아주 오래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고 싶으나 실은 오래됐다. 거의 20년 전. 급 화석이 된 기분이다.) 스위스와 몰디브는 2000년대에, 칠레는 2010년에 갔었다. 그때는 이미 일회용 라이터가 상용화되던 때였는데 그런데 왜 성냥을 기념품으로 만들었을까? 갑자기 궁금증이 생겨 또 자료를 뒤져본다.


성냥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1880년대. 그 전에는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고 불을 화로에 관리했다. 그러다가 1910년대에 일본이 인천에 조선인촌회사를 설립해 성냥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며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우리 손 우리 자본으로 성냥을 만들기 시작한 건 광복 직후였다. 성냥의 최고 호황기는 1960-70년대. 비호표(대림성냥), 복표(인천성냥), 돈표(영화인촌산업), 비마표(조양성냥), 아리랑(조일성냥), 두꺼비표(금남산업), UN(유엔화학), 비사표(남성성냥), 향로(성광성냥)... 성냥의 브랜드도 어마어마하던 시절이었다. 돌아보니 나 어렸을 때 티브이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을 자주 봤다. 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며 팔각 성냥갑의 성냥개비를 탈탈 털어 탑을 쌓고 무너뜨리고 다시 쌓는 남자들의 모습. 내가 X0년대 생이니 아마 이때가 성냥의 전성기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냥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보통 원목 가공부터 포장까지 전 공정이 공장에서 이뤄진다. 원목을 합판으로 깎고 잘게 썰어 성냥개비 모양으로 만들어 파라핀 용액을 입히고 한쪽 끝에는 붉은색, 흰색 등의 발화 약품을 바르면 된다. 더 깊게 들어가면 적린, 황린 등의 단어가 들어가는데 재미없으니 이쯤 하자. 그런데 이런 원리를 재미있게 극화해서 알려주는 기사도 있었다. <새가정>이라고 하는 잡지의 1964년에 실린 글이다.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대화를 통해 성냥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설명한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마도) 세 딸(경숙, 혜숙, 은숙)이 등장한다. (그 당시에 아들이 등장하지 않는다니 참 놀랍네.) 극은 이렇게 시작된다.


경숙: 아이 또 불이 나갔네.
할머니: 오늘 밤은 웬일일까? 벌써 두번째야. 책상 왼쪽 서랍에 성냥 있을테니 어서 불을 켜라.
경숙: 아! 어머니, 성냥 여기 찾았어요. 어머 근데 왜 안 켜져요?
혜숙: 너 성냥을 눅눅한 데다 두었었지? 입김을 쐬어서 켜봐.
은숙: 야! 전기가 들어왔다.
할머니: 에고 또 전기가 나간다.
어머니 : 오늘 성냥장수 수지 맞겠다. 한 집에서 하루밤에 세번 씩이나 성냥을 쓰다니. 전 서울시내 다 따지면 아마 굉장한 성냥이 써졌을 꺼야.
아버지 : 어디 한 번 계산해볼까? 전국의 인구를 2500만으로 잡고 다섯 식구에 한 방을 잡아 3번이면 54만 방에 3번이니까 1500만개 썼군. 한 갑에 몇개 들었지? 새갑으로 세보자. 60개군. 그러면 25만 갑이야 참. 성냥 한 가치라고 무시 못해. 한 갑에 1원씩이면 25만원이야.
<새가정> 1964년 11월호 86-89쪽



읽다 보니 레트로하다. 갑자기 성냥이 완소 물건이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최근에도 성냥을 굿즈로 받은 적이 있다. 모 출판사에서 발행한 책을 샀더니 책 표지가 인쇄된 성냥갑을 굿즈로 주었다. 내친김에 검색을 해보니 귀여운 디자인의 작은 성냥갑들이 많이 판매되고 있다. 불씨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시대에 왜 아직도 성냥이 기념품 등의 목적으로 판매되는 걸까. 성냥의 쓸모보다 성냥이 가진 감성 때문일까. 아니면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라우라 에스키벨 저)>의 대사처럼 우리가 몸에 성냥갑을 하나씩 갖고 태어나 이유없이 끌리는 것일까.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124-125쪽>


오늘은 인용을 두 번이나 했네. 다음부턴 글 하나당 인용은 하나만 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