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 감사해

메르세데스 소사 앨범@아르헨티나 어느 버스 터미널

by 구디너프

오늘 아침에도 또 한 번 들었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Gracias a la vida. 눈을 감고 그녀의 묵직한 음색을 듣고 있으면 가사를 몰라도 뜻이 마음으로 전해진다. 원곡은 칠레 가수 비올레타 파라의 노래지만 지금은 소사의 노래가 더 유명한 듯하다. 내가 메르세데스 소사를 알게 된 건 라틴 아메리카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다룬 에세이집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우석균 저)>에서 였다.


책에는 소사 외에도 다양한 예술가들이 나온다. 아타왈파 유팡키, 빅토르 하라, 까를로스 가르델... 처음 듣는, 발음조차 낯선 이름들. 책을 덮고 이들의 음악을 찾아들었다. 토속적이기도, 오래된 흑백 영화 감성을 풍기기도, 혁명적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악은 따뜻하고 보드랍고 나긋하고 그러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호소력이 있었다.


메르세데스 소사는 1935년 아르헨티나 투쿠만에서 태어났다. 안데스 기슭에 있는 투쿠만은 민속문화가 살아있는 곳으로 소사는 민속음악을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소사가 노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열다섯 살, 투쿠만 지방 방송국이 주최한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하면서부터다. 결혼 후 남편의 도움으로 앨범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지만 무명 시절 동안에는 가정부 등의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이후 코르도바에서 열린 폴크로레 음악 페스티벌에서 다시 한번 우승하며 소사는 본격적으로 민속음악 가수로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당시 라틴 아메리카는 '누에바 칸시온(새로운 노래)'이라고 하는 음악 운동이 한창이었다. 전통문화를 복원하고 정체성을 찾아가자는 이 운동에는 소사를 비롯한 다수의 음악인들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민중들의 삶을 노래했던 소사의 곡들은 1970년대 군부정권 아래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되며 탄압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대지주의 착취를 비판하는 노래를 부르다 체포된 소사는 스페인으로 강제 망명당했다가 군부정권이 끝나가던 1982년에야 다시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목숨을 걸고 귀국한 그녀는 28일간 공연을 이어갔다. 연일 매진이었던 이때의 공연은 '아르헨티나에서의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 en Argentina)'라는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 실린 Gracais a la vida에서 소사는 그간 힘들었던 삶에 대한 설움과 고국으로 돌아와 민중과 함께 다시 노래하게 된 감격으로 울먹인다. 그 순간 이어지는 휘파람과 박수 소리, 관객이 함께 부르는 이 노래는 지금도 들을 때마다 따라 울게 된다.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할 때 나는 그녀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나의 여행은 칠레에서 시작하여 아르헨티나를 지나고 있었다. 현대의 여느 도시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사람들의 생김새도, 옷차림도, 음식도. (나중에 아르헨티나의 대평원 팜파와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며 인상이 달라지기는 했다.) 다음 여행지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터미널에 갔던 날.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소사의 노래를 들었다. 소리의 진원지는 터미널 안의 어느 음반 가게. 나는 베스트 앨범과 30주년 기념 앨범 중 어떤 것을 고를지 망설이다가 30주년 기념 앨범을 샀다. 거의 3만 원에 가까운 가격이었다. 그날 나는 앨범을 사는 대신 점심을 굶었다.


이후 여행길에서 소사의 음악을 자주 들었다. 그녀의 음악은 원주민 문화가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페루와 볼리비아, 멕시코 등지에서 더욱 자주 들었다. 멕시코에서는 잠시 동안 홈스테이를 하기도 했는데 집주인 할머니와 함께 소사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스페인의 식민 시대를 거쳐 군부정권에 밟힌 민중들의 삶에 가슴이 아팠다. 우리에게도 같은 역사가 있었기에 그녀의 음악이 더 가슴을 파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나는 라틴 아메리카 땅에서 많이 감사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질 수 있음에.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Gracias a la vida / Mercedes Sosa
생에 감사해 / 메르세데스 소사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걸 주었어.
샛별 같은 눈동자를 주어 흑백을 온전히 구분하고
창공을 수놓은 별을 보고 무수한 사람들 틈에서 내님을 찾을 수 있어.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걸 주었어.
청각을 주어 밤낮으로 귀 기울여
귀뚜라미, 카나리아, 망치소리, 물레방아, 소나기, 개 짖는 소리,
그리고 사무치게 사랑하는 임의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를 새기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걸 주었어.
소리와 문자를 주어
어머니, 친구, 형제자매, 애모하는 영혼의 편력, 길을 비추는 빛 같은 말들을
떠올리고 표현할 수 있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걸 주었어.
내 지친 발을 이끌어주어 도시와 시골길, 햇볕과 사막, 산맥과 평원,
그대 집과 거리와 정원을 순례하였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걸 주었어.
인류의 지성이 낳은 창조물을 볼 때
악이라고는 모를 것 같은 선인을 볼 때
그대 맑은 눈을 깊숙이 들여다볼 때마다
요동치는 심장을 주었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걸 주었어.
웃음을 주고 울음도 주니
내 노래와 당신들의 노래 재료인 즐거움과 고통을 구분할 수 있네.
당신들의 노래는 바로 나의 노래이고,
모든 이의 노래가 바로 나의 노래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걸 주었어.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우석균)>


https://youtu.be/oo386eCD_ko

1982년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민중들과 함께 부른 Gracias a la vida. 마지막 부분에선 이상하게 나도 따라 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