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사서

커버 사진 @ 이탈리아 볼로냐 살라보르사도서관 어린이자료실

by 구디너프

도서관 밖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는 한 가지가 있는데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들은 모두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을 거라는 ‘편견’이다. 정말 말 그대로 편견이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어쩌다 그 직업을 갖게 되듯이 사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왜 사서가 되었는지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대답은 1. 성적에 맞추어 전공을 선택했다 2. 취업이 잘된다고 들었다였다. 1번은 합리적인데 2번은 글쎄. 정보력이 조금 부족했다는 생각도 들고, 또 취업만 잘되면 무슨 소용이냐, 월급의 규모를 따졌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차원적인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대단한 동기나 사명감이 있어 사서가 된 것은 아니다. 유명한 작가들의 전기를 보면 그들은 어린 시절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의 서재에 놀며 책을 접하게 되었고 그 무한한 세계에 빠져들었다는 내용이 거의 빠지지 않는다. 어머니 또는 할머니의 서재라는 말을 본 적이 없어 아쉽지만. 작가가 아니어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부분 그 세계가 책으로 둘러싸여 있거나 부모 중 하나는 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더라. 내 남편만 봐도 그렇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책에 대한 추억이 꽤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는 어떻게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나의 부모님은 가난했고 무일푼으로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엄마는 식모살이를 했고 아빠는 머슴살이를 했다고 엄마가 비밀이라며 이야기해줬다. 가진 것 없는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했고 내내 세를 살다가 내가 중학교 가던 해에 방 3칸, 화장실 1칸, 부엌겸 거실이 있는 다세대 주택의 주인이 되었으나 그 집의 실제 주인은 은행이었다. 평생 빚을 갚았다. 빚을 갚고 나자 재개발이 필요하다며(그 집은 한강변에 있다.) 다시 나가라고 하는 그 집에서 부모님은 여전히 살고 있다. 집이 넓은 것도 아니어서 책을 놓을 공간이라고는 2열 5단의 책장이 유일했는데 그마저도 장식장을 겸하고 있었다. 억척스러운 엄마는 청계천으로 가 소년소녀 문학전집이라던가 학원사 세계고전전집 같은 전집을 사다 날랐다. 데카메론 같은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는 걸 엄마는 몰랐겠지만 여하튼 엄마가 채워놓은 백여 권의 문학과 고전 전집이 내 내면을 살찌웠다.

또 다른 나의 세계,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세계는 서점 X민문고였다. 그곳은 나에게 쉼터, 도피처, 창작소였다. 지상 2층, 지하 1층 총 3층 규모의 건물로, 1층은 주로 베스트셀러를, 2층은 필리구, 스케치북과 같은 미술용품을 팔았고, 그 외 잘 안 팔릴 것 같은 책들은 지하층에 있었다. 옛날부터 외면받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 깊었던 나는 서점에 도착하면 곧장 지하 세계로 들어가 매대 앞에 한나절을 서서 책을 읽었다. 당시에는 고객 편의를 위한 의자나 카페 같은 것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나가라고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돌아보니 그 시절,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도 없었던 나에게, 나는 언제 예뻐지나요? 남자친구는 언제 생길까요? 와 같은 인생의 중요한 궁금증을 해결할 장소는 오직 서점뿐이었다.

당시 부모님은 먹고 살기 바빴고 infj인 나는 친구가 없었고 있더라도 함께 있는 게 피곤할 뿐이었고. 그때부터였나보다. 무엇이든 글과 책으로 배우는 인간으로 형성된 시점이. 나에 대한 전기가 쓰일 일이 없을 것 같아 이곳에서 이야기한다. 내가 어쩌다 사서가 되었을까에 대해 쓰다가 나 역시 책의 세계에 둘러싸여 있었음을 지금 막 알게 되었다. 책 냄새, 활자를 좇는 눈,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 등이 나를 도서관으로 끌어당겼음을. 몽테뉴가 그랬다지. 자신의 서재가 없는 사람은 가엾다고. 세상에 가여운 사람이, 특히 가여운 아이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그렇게 사서가 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