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당하는 이들

by 김성경

비운의 주인공을 떠올릴 필요 없다. 당장의 주변만 둘러보더라도 침묵당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숨 죽이고 고요히 적막이 깔린 새벽녘의 거리를 걷다 보면 폐지를 줍는 노인을 마주한다. 바쁜 손놀림으로 바닥에 개어진 상자들을 포개고 또 포갠다. 어떤 이는 서류 뭉치와 싸우는 시간일 때, 어떤 이는 버려진 종이 더미와 싸운다. 아슬아슬하지만 단단히 끈으로 쟁여진 종이들은 버려진 유모차나 조금 연식이 된듯한 철제 수레 위에 얹힌다.


발걸음을 따라가다 좁은 골목을 마주한다. 비좁은 틈을 한 뼘 격차로 두고 붙은 집들은 옆집과 앞집의 구분이 어렵다. 서울 시내, 100m 되지 않는 길에는 20층 높이의 대형 빌딩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아주 낮은 곳에, '어쩜 이렇게 어두울까' 싶은 그 골목이 있다. 비단 서울 시내뿐만 아니라 다른 대형 도시에도, 혹은 지역명이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에 조차 그러한 골목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통계에 의하면 폐지를 줍는 이들은 80% 이상이 노인 세대이다. 현재 인구 절벽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은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사실이 되었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근처의 놀이터에는 항상 아이들이 붐볐다. 인기 많은 그네나 시소를 탈라치면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먼저 무리가 선점을 해야만 놀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알다시피, 놀이터에 아이들은 없다. 물론 학업의 이유로 일찍이 학원을 가야하는 연령대가 낮아졌기에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마친 후, 바로 학원을 가는 일이 평범해졌기 때문도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비어가는 초등학교 교실과 폐교를 마주한 학교들, 황폐한 학원가들을 바라보자면 비단 노인과 아이의 문제가 아니란 사실을 직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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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반듯한 상자를 보고있노라면, 무엇이 들어있을까 기대감에 사로잡힌다. 속 안의 내용물을 모두 꺼내놓고 보면, 이 상자는 더는 쓸모가 없는 것이다. 당연히 버린다. 평평하게 펴기 위해 박스에 부착한 테이프를 모두 제거하거나, 혹은 칼로 그어내 박스만 펴거나, 그렇게 하기도 힘들다 싶으면 그냥 그 모양 그대로 안에 내용물만 꺼낸 채 집 앞에 내다 놓는다.


쓰레기 버리는 방법이야 각기 생활하는 구역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상자가 해체되어 폐지를 줍는 노인의 손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상상하고 있자하니 과장하지 않고 비운의 절망적인, 침묵을 당하는 이들은 가난한 이들이라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궁핍한 삶에 내몰린 이들, 폐지를 줍는 노인의 대부분은 몸의 장애로 인해 온전히 일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적인 미성숙으로 인해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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