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소리 없이 돌아가는 톱니의 부속품으로 살아가기 싫은 이유가 무엇일까.
작은 목소리들을 따라가려 노력한 적이 있다. 크고 작은 모순점들을 한가득 안고 있으면서도 모든 점선면을 이어나갈 힘이 있기를 애썼다. 명사의 삶이 아닌 동사나 형용사의 삶을 살아가기를 꿈꾸지만 발걸음이 무거운 것은 사실이다. 작은 목소리들이 단순히 작기 때문일까 혹은 내가 그만큼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에 작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어떤 이들의 목소리는 진흙 덩어리 아래 묻힌 것만 같아서 방음벽을 세우지 않고서도 무중력 상태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묵음 처리된 발걸음을 힘내어 되새김질하는 수밖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무의 자취를 머금고 있어서
적절한 화해를 위해서는 결국 마침표와 쉼표들을 끄적여야만 한다. 적혀 내려간 글들을 다시금 읽으면서 확인해야만 한다. 누군가로부터 규정당하고 규격화되는 도식들을 벗어나 활자 위에 적혀 나간 시간을 바라봐야 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단순히 숨 쉬는 것만으로 이해가 되지 않기에 어떤 절규들을 끊임없이 경험해야만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를 그려낼 수 있는 것 같다. 혹자는 그림자 속으로, 회색 속으로 숨어버리곤 안전지대를 체험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분자화 되어버린 지표 속에서는 그림자란 없다. 있다/없다, 0과 1의 수 없는 나열들 속에 자가 생성되는 뿌리를 둔 생명을 만날 뿐이다.
삶이 비로소 반드시 지속되리란 보장이 없는 것처럼, 시간은 흐를 것이다. 날 것들에 의해 바닥이 보일 것이다. 점들에 의해 선이 생길 것이고, 결국에 면이 될 것이다. 도형들은 무너지면서 동시에 생성되기를 반복할 것이다. 규정되지 못한 담긴 이야기들은 풀어질 기미 없이 사라지기도 할 것이다. 반드시 그럴 것이다. 있기도 없기도 한 모든 이야기들이 마음을 후벼내고 도려내고 피가 흐를 때까지도 너는 아무것도 모를지도 모른다. 여기서 너는 나다.
그래서 결국 타협은 없을 것이다. 회색분자의 안전함을 잃어버린 검고 흰 것들의 싸움만이 남아 그 어떤 지점에서도 머무르지 못하고 떠도는 것들을 본다. 그렇기에 글을 쓰고 읽는 생리가 존재들에게 필요한지도 모른다. 불완전하기에 완전한 것을 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불완전함을 잃어버린 망각은 자유가 아닌 것처럼, 자유는 타협의 모든 지점들을 도려내고 분자들을 읽어나가기를 노력하는 행위에서 힘을 갖는 것이 아닌가. 백지의 도화지에 검은 점이 튀는 미세한 형상들을 끊임없이 찾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누구도 부끄럽지 않다. 그래서 모두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