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의 중요성

불태율

by 초월김

불태율. 불교, 태학, 율령의 앞 글자이고 순서이다.

고구려 제 17대 소수림왕의 3대 업적이자, 고구려가 연맹 왕국에서 중앙 집권형 고대 국가로 명실상부하게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기준이기도 하다.

소수림왕은 371년, 백제 근초고왕의 공격으로 부왕 고국원왕이 전사하면서 급작스럽게 즉위했다.

왕이 수도 평양성에서 전투 중 화살을 맞고 죽은 것은 고구려 역사상 유일한 사례였다.

전쟁에서 패배한 것도 아니고, 원정을 나갔다가 기습을 당한 것도 아니었다.

적이 수도(엄밀히는 아님)까지 쳐들어왔고, 그 안방에서 왕이 화살에 맞아 쓰러진 것이다.

그야말로 초유의 국가적 위기였다.

당시 고구려의 상황은 더욱 암울했다.

백제는 근초고왕 치세에 전성기를 구가하며 남쪽으로는 가야와 왜를 압도하고, 북쪽으로는 고구려를 압박하고 있었다.

고구려는 연맹체 성격이 강해 각 부족장들의 힘이 여전히 컸고, 왕권은 불안정했다.

왕이 전사했다는 소식은 이러한 내부 균열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왕이 전사했다.

다음에 즉위한 왕에게 보복은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이자 시대가 요구하는 명령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수림왕은 즉각적인 보복 대신 내실을 다지는 길을 택했다.

분노를 삭이고 차근차근 나라의 기초를 지기 시작했다.

이 판단은 훗날 광개토대왕-장수왕으로 이어지는 고구려 전성기의 토대가 되었다.


여기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소수림왕은 즉위 직후부터 불태율로 이어지는 개혁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이미 오랜 기간 태자로서 준비된 왕이었기 때문이다.

고국원왕은 비록 갑작스럽게 비명횡사했지만, 소수림왕은 태자 시절부터 국정을 보좌하며 고구려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깊이 고민해왔다.

즉위 다음 해인 372년부터 곧바로 불교 수용과 태학 설립이 이루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미 구상되어 있던 개혁안이 위기 상황에서 신속하게 실행에 옮겨진 것이다.


372년 6월 불교를 전격 수용했다.

전진의 왕 부견이 보낸 승려 순도를 통해 불교를 받아들였는데, 이는 단순한 종교 도입이 아니었다.

당시 고구려는 부족마다 믿는 신이 달랐다.

소수림왕은 불교를 통해 부족별로 믿던 토속 신앙을 넘어 국가적 정신 사상을 통일하고 왕실의 권위를 높였다.

불교는 왕을 부처에 비유하며 절대적 권위를 부여했고, "왕즉불(王卽佛)"이라는 관념을 통해 왕권 강화의 이념적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불교 사찰은 지방 곳곳에 세워지며 중앙 정부의 통제력을 지방까지 확대하는 거점 역할을 했다.


그리고 태학이라는 국립 교육 기관을 만들었다.

불교 수용과 같은 해에 세워졌고, 여기서는 유교를 가르쳤다.

훈련된 관료 없이는 개혁도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고구려의 관리는 대부분 부족장 가문 출신이거나 그들의 추천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태학이 설립되면서 국가가 직접 인재를 선발하고 교육할 수 있게 되었다.

유교 경전을 통해 충(忠)과 효(孝)를 가르치고, 왕에게 충성하는 관료를 체계적으로 양성했다.

이는 부족장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 중심의 관료제를 구축하는 핵심 장치였다.

능력 있는 인재라면 출신에 관계없이 등용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마지막으로 개혁을 완성하는 율령을 반포했다(373년).

율령은 국가의 통치 기준인 법률(율)과 행정 명령(령)을 체계화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각 부족이 자체적인 관습법으로 통치했고, 왕의 명령조차 부족장의 동의 없이는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다.

부족장들의 기분과 판단에 따라 달라지던 통치를 '율령'이라는 법으로 시스템화한 것이다.

율령 반포로 전국에 통일된 법 체계가 마련되었다.

부족장들의 자치권은 제한되었고, 모든 백성은 왕이 정한 법 아래 평등해졌다.

범죄와 처벌의 기준이 명확해지면서 왕의 권위는 더욱 확고해졌다.


소수림왕은 당장의 복수보다 순서와 기본기를 택했다.

증오를 냉정하게 에너지로 전환하고 현명하게 사용했다.

그렇게 고구려는 국왕 중심의 나라, 인재를 양성하는 나라, 법이 서는 나라로 거듭났다.

결국 소수림왕의 뒤를 이은 광개토대왕 시대에 고구려는 동아시아의 강자로 우뚝 섰다.

요동을 장악하고, 백제를 압박하며, 신라를 도와 왜를 격퇴했다.

손자 장수왕 시대에는 평양으로 천도하며 한반도 중부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장수왕은 475년 백제를 공격해 개로왕을 사로잡아 처형하며, 증조할아버지 고국원왕의 원한을 갚았다.

한성이 함락되고 백제는 웅진으로 천도할 수밖에 없었다.


복수는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장수왕의 업적만이 아닌, 100여 년에 걸친 내공의 결과였다.

소수림왕이 다진 기초 위에서 고구려는 한 시대를 풍미하는 제국으로 성장했다.

소수림왕이 닦아놓은 불교, 태학, 율령이라는 기반 위에서,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은 마음껏 말발굽을 휘날리며 영토를 넓혔다.

만약 소수림왕이 조급함에 못 이겨 준비 없이 전쟁터로 나갔다면, 우리가 아는 고구려의 영광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소수림왕의 선택은 1,6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마케팅 조직과 마케터 역시 당장의 성과에 급급하기보다, 기본기를 다져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특히 브랜드를 담당하는 브랜드 마케터라면, BPS(Brand Positioning System)는 가장 먼저 정의해야 할 기본과도 같은 일이자 항상 숙지해야 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브랜딩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많은 이들은 먼저 "로고는 어떤 색으로 할까요?" 혹은 "슬로건은 어떻게 뽑을까요?"를 묻곤한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에 대한 열망은 당연하다.

하지만 건물을 지을 때 인테리어 벽지부터 고르는 건축가는 없다.

브랜딩의 승패는 겉으로 드러나는 BIS(Brand Identity System)의 화려함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탱하는 BPS(Brand Positioning System)의 견고함, 즉 '기본기'에서 결정된다.

소수림왕이 화려한 승전보다 율령, 태학, 불교라는 기본기를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많은 브랜드가 BPS를 수립할 때 범하는 가장 큰 실수는 '좋은 말 대잔치'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혁신적이고, 친절하며, 가성비가 좋으면서도 프리미엄이다"라는 식의 정의는 아무것도 정의하지 않은 것과 같다.

소수림왕이 불교 하나로 사상을 통일했듯, BPS의 기본기는 '용기 있는 포기'다.

타겟의 뾰족함이 필요하다.

'2030 남녀 모두'가 아니라, '주말마다 러닝을 즐기며 성취감을 중시하는 28세 직장인'으로 좁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좁혀야 넓어진다.

차별화의 날카로움도 중요하다.

경쟁사보다 '더 나은(Better)' 점을 찾는 건 쉽다.

하지만 기본기는 '완전히 다른(Different)' 점을 찾아내는 집요함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내부의 합의가 중요하다.

멋진 장표 한 장을 만드는 것이 BPS가 아니다.

구성원 모두가 "그래, 우리는 이런 사람이지"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자기다움'을 찾아내는 치열한 내부 설득 과정이 진짜 기본기다.

소수림왕이 태학을 세워 관료들에게 충과 효를 가르친 것처럼, 조직 내부가 하나의 철학으로 정렬되어야 한다.


BPS가 수립되었다면, BIS는 그 전략을 시각(Visual)과 언어(Verbal)로 번역하는 과정이다.

여기서의 기본기는 디자이너의 심미적 만족이 아닌, 전략적 '정확성(Accuracy)'과 '일관성(Consistency)'이다.

전략의 시각화가 필요하다.

BPS에서 '신뢰와 안전'을 정의했다면, BIS에서는 아무리 트렌디하더라도 불안정한 서체나 가벼운 네온 컬러를 써선 안 된다.

디자인이 예쁜지 묻기 전에 "우리 브랜드다운가?"를 묻는 것이 기본이다.

시스템으로서의 기능도 중요하다.

로고 하나 잘 만드는 것은 쉽다.

하지만 명함, 웹사이트, SNS, 패키지 등 수백 가지 접점에서 그 브랜드다움이 깨지지 않도록 '규칙(System)'을 만드는 것이 BIS의 핵심이다.


소수림왕이 율령으로 전국에 통일된 법 체계를 만든 것처럼, 지루할 정도로 반복할 수 있는 가이드를 만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기본기는 BPS와 BIS를 분리된 단계로 보지 않는 것이다.

BPS는 영혼이고, BIS는 육체다.

영혼과 육체가 따로 놀 때 우리는 그것을 '부조화'라고 부르며, 고객은 이를 '가식'으로 느낀다.

언행일치가 필요하다.

포지셔닝(BPS)에서는 "고객의 친구"를 표방하면서, 아이덴티티(BIS) 디자인은 "권위적인 럭셔리"를 흉내 내고 있지는 않은가?

지속가능성도 중요하다.

트렌드를 쫓아 급조한 BIS는 3년도 못 간다.

하지만 단단한 BPS 위에 세워진 BIS는 시대에 맞춰 옷(스타일)만 갈아입을 뿐, 그 사람(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기본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브랜드마케터에게 기본기는 BPS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집 모양으로 BPS house를 그려보고, 이를 책상위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거나 바탕화면으로 써야한다.

화려한 로고와 카피(BIS)는 사람들의 눈길을 한 번 끌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브랜드가 고객의 삶 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힘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좁혀낸 전략(BPS)이라는 단단한 흙에서 나온다.


만약 우리 브랜드가 흔들리고 있다면, 로고를 바꿀 때가 아니라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우리는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소수림왕이 복수보다 기본기를 선택했듯, 이 기본 중의 기본인 질문이 가장 강력한 브랜드 자산(Equity)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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