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발주자의 생존법
고려 시대 초, 청자의 종주국은 송나라(중국)였다.
당시 송나라 청자의 비색(Jade Color)은 천하제일이라 불렸고, 고려의 도공들은 후발주자로서 그들을 따라잡아야 했다. 청자를 빚는 흙과 불, 그리고 유약이라는 기본 제조법(Rule)은 이미 중국이 정립해 놓은 상태였다. 똑같은 방식으로는 결코 원조를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송나라는 수백 년간 축적된 기술로 완벽에 가까운 청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최상급 흙의 산지를 알고 있었고, 가장 이상적인 가마의 온도를 터득하고 있었으며, 비색을 내는 유약의 비율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고려의 도공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같은 방식으로는 그들의 아성을 넘어설 수 없었다. 기술적 격차는 분명했고, 시간과 경험의 차이를 따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송나라 청자는 이미 시장에서 확고한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귀족들은 송나라의 청자를 소유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그것이 곧 품격과 안목의 증표였다. 후발주자인 고려 청자가 아무리 비슷하게 만들어져도, 사람들은 여전히 "송나라 것만 못하다"고 말할 것이 뻔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브랜드 인지도와 선점 효과의 문제이기도 했다.
이때 고려의 도공들이 택한 생존 전략이 바로 '상감(象嵌)'이었다.
그들은 이미 빚어진 도자기 표면을 얇게 파내고, 그 속에 다른 색의 흙을 채워 넣어 무늬를 만들었다. 송나라 사람들이 완벽한 색과 형태를 추구했다면, 고려의 장인들은 흙을 파고 메우는 집요한 '손끝의 기술'로 승부하였다. 이 방식은 엄청난 인내와 고도의 기술을 요구했다. 도자기 표면을 너무 깊게 파면 구조가 약해져 깨지기 쉬웠고, 너무 얕게 파면 무늬가 선명하지 않았다. 파낸 홈에 다른 색의 흙을 채울 때도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세심하게 눌러야 했고, 표면을 평평하게 다듬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한 점의 청자를 완성하기 위해 송나라 도공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미세한 질감의 차이는 밋밋했던 청자에 입체감을 부여했고, 빛의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이는 문양은 송나라 청자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송나라 청자가 완벽한 단색의 미학이었다면, 고려 상감청자는 색과 질감이 어우러진 복합적 미학이었다. 마침내 중국인들조차 "천하의 제일은 고려 비색"이라며 인정하게 만들었다.
고려 도공들은 경쟁자와 같은 게임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게임의 룰 자체를 바꾸었다.
"누가 더 완벽한 청자를 만드는가"라는 경쟁에서 "누가 더 독창적인 청자를 만드는가"라는 경쟁으로 판을 바꾸었다.
조선 후기의 거상 임상옥에게는 늘 곁에 두고 마음을 다스리던 술잔이 있었다.
바로 '계영배(戒盈杯)'다. 이 잔은 신비하게도 술을 70% 이상 채우면 밑바닥의 구멍이 열려 술이 모두 새어 나가버린다. "가득 참(盈)을 경계하라(戒)"는 뜻을 가진 이 잔은, 욕심을 부려 꽉 채우려 하면 오히려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상도의(商道義)를 보여준다. 계영배의 구조는 이렇다. 잔의 중심에는 보이지 않는 관이 하나 숨어 있는데, 이 관은 잔 바닥까지 연결되어 있다. 술을 적당히 부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일정 수위를 넘어서는 순간 사이펀 원리에 의해 잔 안의 술이 모조리 밑으로 빠져나간다. 70%만 채우면 그것을 고스란히 마실 수 있지만, 100%를 채우려는 순간 0%가 되어버린다.
임상옥은 이 잔으로 술을 마실 때마다 장사의 본질을 되새겼다고 한다. 한 번의 거래에서 이익을 끝까지 쥐어짜면, 그 순간의 이득은 클지 몰라도 거래 상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반대로 적정한 이윤만 취하고 상대방도 만족할 수 있게 하면, 그 사람은 평생의 거래처가 된다. 단기적으로는 조금 덜 버는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훨씬 큰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것을 계영배는 가르쳐주었다. 그는 실제로 이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흉년이 들어 쌀값이 치솟을 때, 다른 상인들은 쌀을 사재기해 가격을 더 올렸지만, 임상옥은 적정 가격에 쌀을 풀었다. 당장은 이익이 줄어들었지만, 백성들은 그를 기억했고 신뢰했다. 이후 그가 무엇을 팔든 사람들은 의심 없이 그의 물건을 샀다. 신용이라는 무형의 자산이 쌓인다. 또 그는 거래처에 물건값을 받을 때도 끝까지 받아내지 않았다. 상대방이 어려운 사정이 있으면 일부를 유예해주거나 심지어 탕감해주기도 했다. 다른 상인들이 "그렇게 하면 손해"라고 말했지만, 임상옥은 "지금 100냥을 포기하면, 나중에 1000냥으로 돌아온다"고 답했다. 실제로 그가 도와준 사람들은 형편이 나아진 후 그에게 더 큰 거래를 가져왔고, 그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주었다. 임상옥은 이 잔을 보며 돈을 끝까지 쥐어짜기보단, 사람을 남기고 신용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계영배는 단순한 술잔이 아니라, 장사의 철학이 담긴 교훈서였다.
마케터로서 가장 고민스러운 것, 여전히 답을 찾아가고 있는 것 중 하나만 제일 먼저 말하라고 하면 "상품 자체의 본질이 나 스스로도 별로라고 느껴질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또는 최소한 별로라고까지는 느껴지지 않더라도 경쟁사보다 나은 점을 딱히 발견하기 어려웠을 때, 호박에 줄 그어서 수박으로 만들어 팔기 같은 마케팅 캠페인을 기획하는 일이 나에게는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내가 정규직으로 첫발을 내딛었던 직장, 게임회사에서의 명함에 적힌 팀명은 게임사업2팀이었다.
팀에서 하는 일은 피O의 고스톱 사업과 마케팅 업무였는데, 우리 스스로도 고스톱사업팀이라고 명함에 적기에는 뭔가 어색했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포커 사업과 마케팅을 하던 팀도 게임사업1팀이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잘못된 일도,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지만 명함에 적기에는 애매했던 무언가가 고스톱과 포커에는 분명히 있었다. 우리 스스로는 고객이 즐거운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분명히 고스톱이라는 게임은 도박이 될 수도 있었기에 정체성의 딜레마가 있었다. 특히 마케터로서 나는 고스톱을 건전한 취미이자 시간 죽이기용 재미있는 게임 정도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싶었지만, 실제 매출을 견인하는 것은 헤비유저들의 사행심에서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게임 마케팅을 업으로 삼는 회사원들 중에서 어쩌면 웹게임 마케팅을 경험한 사람만이 가졌을 특별한 감정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MMORPG나 FPS 같은 다른 장르의 게임들은 적어도 게임성, 그래픽, 스토리 등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가 명확했다. 하지만 웹보드게임, 특히 고스톱은 달랐다. 우리가 제공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통 놀이의 디지털 버전이었고, 그 안에서 혁신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고스톱의 룰은 일반적이고, 플랫폼별로 게임성의 차이가 크지 않다. 즉, 피O 고스톱이나 한OO 고스톱이나 넷OO 고스톱이나 사실 거기서 거기이고 취향 문제일 뿐이다. 본질적인 차이가 없기에 마케터로서 차별화 포인트를 발굴하고 고객을 설득하는 일을 하는 데 근본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화려한 그래픽을 자랑할 수도 없었고, 혁신적인 게임 시스템을 내세울 수도 없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느낌'이었다. 카드를 내려놓을 때의 손맛, 패를 쳤을 때의 사운드, 게임이 진행되는 속도감, UI의 직관성 같은 것들. 이런 미묘한 차이를 어떻게 광고 카피로 만들 수 있을까? "우리 고스톱은 손맛이 좋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취향의 차이를 경쟁사보다 낫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가 큰 고민이었다. 게다가 온라인 고스톱은 언제든 그만둘 수 있고, 대체재가 너무 많은 게임이다. PC방에서도 할 수 있고, 모바일로도 할 수 있고, 심지어 오프라인에서 화투를 사서 할 수도 있다. 심지어 올드한 이미지도 있다. 젊은 세대에게 고스톱은 명절에 친척들이나 하는 게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마케팅 관점에서 타겟을 확장시키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피O 고스톱은 세이클럽의 영향으로 부산과 경남에서 타사에 비해 인기가 있었고, 다른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점유율이 낮은 편이었다. 특히 수도권에서의 한OO 유저들을 피O으로 유입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작업이자 풀지 못한 숙제였다. 초기 유저 커뮤니티가 그곳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은 했지만 정말로 부산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무언가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들에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우리는 그저 그 사실을 데이터로만 받아들였다. 그래서 지역별 마케팅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지역 연고의 야구단(자이언츠)과의 협업, 지역 이벤트 개최 등 그 지역에서의 점유율은 지켜나갔지만 이미 한OO에 익숙해진 수도권 유저들을 전환시키기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익숙한 플랫폼을 떠나지 않는다. 특히 게임 내 친구들, 커뮤니티, 쌓아온 레벨과 게임머니들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이벤트를 기획해도, 그들의 커뮤니티를 통째로 옮기지 않는 한 개인의 전환은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웹보드게임은 게임 중에서 가장 많은 규제를 받는 게임이었다. 월 결제 한도, 회당 베팅 한도 등 아무리 많은 고객을 마케터가 끌어온다고 할지언정 매출에 상한이 존재했다. 마케터로서 정말 답답한 부분이었다. 일반적인 게임이라면 유저 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매출도 비례해서 증가한다. 웹보드게임은 달랐다. 규제 때문에 한 명의 유저가 쓸 수 있는 돈에 한계가 있었고, 헤비유저의 경우 마케팅보다는 그들의 편의나 사행성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았다. 더 복잡한 것은, 사행성이 강한 유저일수록 매출 기여도는 높지만 동시에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 할 대상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게임 과몰입, 도박 중독 같은 사회적 문제와 직결되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출을 올려야 하는 마케터인 동시에, 건전한 게임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도 있었다. 이 두 가지 목표는 때론 상충했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했던 계영배의 딜레마 아닌가 싶다. 매출이라는 잔을 100% 채우려 하면, 신뢰와 윤리라는 바닥이 빠져버린다. 이러한 여러 가지 본질적인 딜레마들은 게임 마케팅을 업으로 삼았던 시간 내내 가졌던 고민이자 사실 풀지 못한 숙제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시절 내내 어떤 불편함을 안고 일했던 것 같다. 내가 만드는 캠페인이 정말 고객에게 가치를 주는가, 아니면 그저 사행심을 자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 내가 쓰는 카피가 정직한가, 아니면 과장된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 불편함 자체가 나를 더 나은 마케터로 만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차별화 포인트가 명확하지 않은 상품을 팔아야 했기에, 나는 더 깊이 고객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규제와 한계가 많았기에, 나는 더 창의적인 방법을 찾으려 했다. 윤리적 딜레마가 있었기에, 나는 더 신중하게 메시지를 다듬었다. 다만 우리는 게임의 재미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묘한 감각의 차이(손맛, 사운드, 속도감)를 극대화하고, 도박이라는 죄책감을 '잠깐의 휴식'이라는 명분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했다. 우리는 "피O 고스톱은 최고의 고스톱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늘 하루 고생했어요, 사는데 은근히 힘이 됩니다."라고 말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가 했던 일은 고려 도공들의 상감 기법과 닮아 있다.
고스톱이라는 이미 완성된 게임 룰(송나라 청자의 제조법)은 바꿀 수 없었다. 우리는 그 표면에 작은 흠을 내고, 거기에 다른 색의 흙을 채워 넣듯이, 게임 경험의 디테일에 집중했다. 게임기획팀에서는 카드 넘기는 애니메이션의 속도를 0.1초 조정하고, 패를 쳤을 때 나는 소리의 톤을 미세하게 튜닝하고, 채팅창의 위치를 몇 픽셀 옮기는 일을 하고, 마케팅팀에서는 이 경험들을 잘 전달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런 작은 차이들이 쌓여서 "피O 고스톱만의 느낌"을 만들었다. 송나라 도공들이 붓으로 그림을 그렸다면, 고려 도공들은 흙을 파고 메웠다. 다른 회사가 화려한 이벤트와 광고로 승부했다면, 우리는 유저들의 미세한 불편함을 찾아내고 개선하는 것으로 승부했다. 로딩 시간을 1초 줄이고, 자주 쓰는 기능을 클릭 한 번에 접근할 수 있게 만들고, 게임 중 끊김을 최소화하는 일. 이런 것들은 광고 카피로 만들기 어렵지만, 사용자는 몸으로 느낀다. 마케터로서 조금 답답한 상황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작은 디테일 하나로 승부가 갈리는 마케팅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는 전장이기도 했다. 큰 예산을 투입해서 화려한 캠페인을 만드는 것보다, 작은 카피 하나, 작은 이벤트 하나가 더 중요했던 곳. 고객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읽어내고, 그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니즈를 발견해내야 했던 곳. 어쩌면 그곳에서의 경험이 나를 마케터로서 단련시켰는지도 모른다.
완벽한 상품을 가지고 마케팅하는 것은 조금은 쉽다. 불완전한 상품, 차별화하기 어려운 상품, 심지어 윤리적 딜레마를 안고 있는 상품을 가지고도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마케팅이 아닐까. 고려의 상감청자는 송나라 청자를 이기려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송나라 청자와는 다른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임상옥의 계영배는 가득 채우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 피O 고스톱은 최고의 고스톱이 되려 하지 않고, 가장 즐겁고 편안한 고스톱이 되려 했다. 후발주자의 생존법은 하나라고 생각한다. 선발주자와 같은 게임을 하지 말 것. 그들이 이미 장악한 시장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싸우면 진다. 게임의 룰을 바꾸거나, 경쟁의 차원을 바꾸거나, 아예 다른 가치를 제안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70%만 채우는 지혜다. 매출을 100% 쥐어짜려 하지 말고, 완벽한 상품을 만들려 하지 말고,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려 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나머지 30%를 여백으로 남겨두면 어떨까. 그 여백이 신뢰가 되고, 차별성이 되고, 지속가능성이 된다.
물론 여전히 모든 정답을 찾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시절의 고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고려 도공들이 상감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었듯이, 임상옥이 계영배로 상도를 지켰듯이, 나 역시 제약 속에서 나만의 마케팅을 찾아갔다. 그것이 후발주자가 살아남는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