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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꽃 Nov 29. 2024

곁에 있는 시간의 의미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영어 문장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숙제할 때면 여전히 내게 같이 하자고 요청했다. 문장을 읽는 것과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기에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이렇게 할까? 스스로 하지 않으려는 아이로 자라면 어쩌지?’라는 불안감도 있었다. 남의 집 아이에게는 “원할 때까지 도와주는 게 좋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으면서도, 내 아이에게는 그 원칙을 적용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아이는 4학년이 되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숙제를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이제는 혼자 해야 하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그의 간절한 표정을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결국 또 그의 옆에 앉게 된다. 스펠링 테스트 준비도 마찬가지다. 2학년인 동생과 서로 문제를 내주며 외우면 될 일을, 꼭 내가 불러주길 원한다. 발음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교정까지 요구하며, 한 문제라도 틀리지 않을 때까지 반복해서 불러달라 조른다. 아이와의 교감을 느껴야 할 순간인데도,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제는 혼자 책을 읽는 아이로 자랐다. 그런데도 가끔 “엄마가 책 읽어주면 안 돼요?”라고 물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도 모르게 “다음에 하자”는 말이 먼저 나온다. 뒤늦게 아이의 눈빛에 미안함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 순간은 이미 흘러가 버린다. 아이가 나에게 무언가를 요청하는 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건 사실이다. 엄마로서 도와줄 수 있는 시간도, 아이가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간도 유한하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느냐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얼마나 진심으로 연결되느냐가 아닐까. 아이가 자라는 속도에 아쉬움을 느끼기보다, 지금 이 순간 아이와의 연결을 더 소중히 여겨야겠다 한번 더 다짐해 본다.


오늘도 아이가 숙제를 가져왔다. 분수 문제였다. 혼자 풀 수 있는 문제지만, 아이는 내가 곁에 있다는 사실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풀어냈다. “이거 맞아? 잘했지?”라고 물으면, “맞네”라고 답하는 사이, 아이는 학교에서 배운 이야기를 소리 높여 들려주며 스스로 성장할 힘을 얻고 있었다. 이런 순간들이 쌓이고 쌓이면 혼자 더 나아갈 준비가 되겠지. 그래서 지금은 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아들은 혼자 힘으로 많은 것을 해낼 것이다. 그때는 아들이 내게 건넸던 “같이 해요”라는 무수한 요청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그의 요청에 잠시 멈춰 섰다. 아이의 손길이 닿는 이 순간이 언젠가는 따뜻한 추억으로 남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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