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끄적끄적 메모하기를 좋아한다. 노트북 옆에는 늘 다이어리와 펜이 대기 중이다. 그 순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붙잡아 두지 않으면, 다시 떠올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그래서 잠자리 머리맡에도 핸드폰 메모장이 자리 잡고 있다. 밤에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 어떤 날은 내가 바라고 있는 모습, 또는 어제저녁 남편이 던진 말 한마디까지. 이 모든 것을 기록하지 않으면 나의 기억 장치는 금세 그 일을 잊어버릴 테니까. 나의 기억력을 도통 믿을 수 없음이다.
어젯밤, 잠결에 메모장에 남겼던 글이 있다. "이곳을 정리하고 떠나는 날, 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최근 은퇴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신 선교사님 부부를 떠올리며 적었던 글이다. 그분들은 평소 존경하던 분들이었다. 가진 것을 마지막까지 나누고 떠나셨다. 사역에 사용하던 차량 세 대도 지역 교회에 기증하며, 우간다에 처음 올 때처럼 손에 든 여행 가방 두세 개만 남기셨다. "처음의 마음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라는 얘기가 깊이 와닿았다. 그 밤 나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메모장에 남겼다. 잊고 싶지 않아서,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어서.
오늘 아침도 나는 걸음을 기록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아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이 걸음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다 된 빨래를 건조대에 널어 햇빛 아래 둔다. 아침을 먹고 간 남편과 아이가 남긴 흔적들, 밥그릇과 숟가락을 씻고, 청소기로 바닥 먼지를 치우고 물걸레질한다. 매일 반복되는 살림의 걸음들이다.
스마트워치를 보니 집안일로 걸은 걸음만 3천 보다. “걸음이 참 많았네.” 생각하면서도 문득 궁금해진다. 이 3천 보는 무엇을 위해 걸었던 걸음일까? 걸음. 누군가에게는 새롭게 시작하는 날의 걸음일 수도 있고, 다른 이에게는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고단한 걸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이 걸음은 그저 살아가는 걸음이다. 살림을 정리하기 위한 움직임이자, 오늘 하루를 살아냈다는 흔적이다. 살림하는 나의 하루는 이렇게 쌓여 간다.
언젠가 이곳, 우간다를 정리하고 떠나는 날이 올 것이다. 내가 남긴 걸음의 흔적은 어떤 모습일까? 이 땅 위에 무엇이 남을지, 혹은 아무것도 남지 않을지, 나 자신은 끝내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이상 내 걸음의 결과를 묻지 않으려 한다. 그저 오늘도 한 걸음씩 걸어 보련다. 어쩌면 내가 남긴 기록과 걸음들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혹은 아주 사소한 풍경의 일부로 남겠지만, 그것이 어디로 닿을지는 나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기록하는 것, 살아가는 것은 결국 같은 맥락일 테니. 오늘 하루의 발자국과 짧은 메모가 누군가에게는 잔잔한 위로로, 또 다른 이에게는 소중한 기억의 시작점으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될 것 같다. 나는 오늘도 걷는다. 나의 걸음은 작고 평범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삶에 잔잔히 스며들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