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를 좋아한다. 펜, 노트, 메모지, 스티커 같은 작은 물건들만으로도 마음이 설레곤 한다. 그래서였을까? 비 오는 날도 유난히 좋아했다. 우산을 쓰고 빗속을 걸으며 생각에 잠기고, 집에 돌아와 새 노트나 펜을 꺼내는 순간들은 나만의 작은 쉼표 같은 시간이었다.
한국에선 이런 문구들을 고르고 사용하는 일이 너무도 쉬웠다. 문구점에 들러 새로 나온 다이어리를 만져보고, 마음에 드는 펜을 골라보는 시간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우간다로 온 뒤, 이런 일상이 달라졌다. 예쁘고 실용적인 문구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려웠고, 물건을 주문한다고 해도 택배가 무사히 도착할지는 늘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석 달 하고도 보름을 기다려 받은 택배가 있었다. 그 상자 안에는 방탄소년단 로고가 새겨진 볼펜, 메모장, 다이어리, 그리고 책 몇 권이 담겨 있었다. 네 식구의 신발과 미술도구는 사라진 상태였지만, 문구들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상자를 열고 문구를 하나씩 꺼내는 순간, 마음이 설레었다. 사실 당장 필요한 물건들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문구를 자꾸만 꺼내 보고, 만져보고, 사용해 보았다.
방탄소년단 볼펜으로는 매끄럽게 써지는 글씨를 느껴보고, 다이어리의 페이지를 넘기며 어떤 계획을 적을지 상상했다. ‘여기에 어떤 이야기를 적으면 좋을까?’ 그런 작은 순간들이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지 새삼 깨달았다.
문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물건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문구는 나만의 공간을 꾸미고 정리하는 도구다. 좋아하는 펜으로 글씨를 쓰고, 마음에 드는 스티커를 붙이는 그 순간들은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이다. 나만의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거나 하루를 계획하며 정리하는 과정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특히 다이어리 꾸미기(다꾸)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선 자기표현의 방식이자 힐링의 시간이다. 한 페이지를 채우는 적은 노력은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좋아하는 스티커를 붙이고 색색의 펜으로 기록하며 ‘이건 나만의 것’이라는 만족감을 느끼는 그 시간이 소중하다.
나는 방탄소년단 볼펜으로 다이어리에 적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문구를 사랑하고, 다이어리를 꾸미는 이유는 어쩌면 이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쁜 일상에서도 잠시 멈추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손끝으로 느끼고, 그것들을 통해 나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문구는 또 다른 기쁨을 준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안부를 묻는 작은 편지를 쓰는 순간, 내가 좋아하는 펜과 종이를 사용하는 일은 더 큰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어떤 때는 나보다 상대방이 더 기뻐할 생각에 설레며 편지를 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다시금 문구가 주는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장바구니에 필사를 위한 볼펜과 형광펜, 스티커를 담았다. 그것들이 내게 가져다줄 설렘과 위안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문구는 오늘도 내 삶을 작게, 하지만 확실히 살려내는 중이다.
[ 필사할 때 자주 사용하는 문구 ]
*필사_유니 제트스트림 0.38
*제목_스테들러 피그먼트라이너 0.8
*형광펜_고쿠요 투웨이 컬러 마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