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나는 조금 날이 서 있었다

by 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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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문제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다.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겠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조금만 다른 방향을 떠올려보면 충분히 해결 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랬는지, 해결하려는 시도보다 먼저 감정이 앞서는 태도가 유난히 눈에 밟혔다.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말투와 표정 앞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멈춰 서 버렸다.


그때의 나는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먼저 내리고 있었다. 다 큰 어른이 왜 저렇게 아무것도 해보지 않으려고 하지, 왜 해결하려는 쪽으로 생각을 옮기지 않을까. 그런 질문들이 머릿속에 맴돌았고, 그 질문들은 차츰 짜증으로 변해갔다.


최근에는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물어왔다. 인터넷 검색만 해도 바로 나오는 정보였고, 손을 조금만 움직이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럴 때마다 성의가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까지 다 물어봐야 하나, 내가 대신 생각해줘야 할 이유가 있나, 그런 마음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웃으며 답했다. 어차피 이곳을 떠날 예정이었고, 이 질문들이 내 삶에 큰 흔적을 남기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중하지 않은 일이었고, 그렇기에 가볍게 넘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바로 그 가벼움 앞에서, 나는 결국 감정을 토해버렸다. 별것 아닌 일 앞에서 쏟아낸 날 선 반응은, 지나고 나서 보니 참으로 미련했다.


이미 말은 흘러나왔고, 상황은 되돌릴 수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상대의 처리 과정이 지혜롭지 못했던 지점도 분명 있었다. 그 시작점이 상대에게 있었다는 생각 역시 쉽게 지워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남은 장면은 다르다.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사람, 나무란 내가 죄인이 되어버린 풍경이었다. 그래서 이 일은 유난히 수치스럽고 부끄럽다. 분노라기엔 늦었고, 명확한 후회라고 부르기에도 어딘가 애매하다. 상대는 아마 이 모든 감정을 모를 것이다. 본인은 그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반응하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내 짐작일 뿐, 사실은 아니다. 그래서 그 생각은 조용히 흘려보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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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히 사과는 했다. 해야 할 말은 했고, 태도도 바로잡았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은 여전히 찜찜하다. 이 감정의 이름을 붙이기가 어렵다. 스스로를 과하게 합리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혼자 끌어안고 고개를 숙이고만 있기에도 마음 어딘가는 조금 억울하다. 아마 이 감정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었던 나와 그날의 나 사이의 간극에서 생겨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유연하고, 조금 더 너그러운 사람이고 싶었는데, 그날의 나는 피곤했고 예민했고, 결국 그걸 숨기지 못했다. 그 사실이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시간이 더 지나면 이 일은 아무렇지 않은 기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찜찜함을 그대로 두고 바라보고 싶다. 다정하지 못했던 하루의 나를 완전히 부정하지도, 그렇다고 쉽게 용서하지도 않은 채로. 그 중간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잠시 적어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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