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계산, 열린 하루

by 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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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우간다서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했을 때 돌아오는 일보다 살아가는 일을 먼저 계산했다. 머물 곳, 벌어야 할 돈, 써야 할 돈, 아이들의 교육,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시간 등등. 노트를 펼쳐 하나씩 적어 내려가며 경우의 수를 만들었고, 막연함 대신 숫자를 세워 넣자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차분해졌다. 적어도 준비는 했다고, 우리는 무작정 돌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운 계획은 촘촘했고 현실적이라 믿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이 정도면 살겠지.


그런데 한국에 발을 딛고 나서 알게 되었다. 사람이 세운 계획은 늘 길을 설명하지만, 실제 삶은 길이 아니라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생각했던 것들은 하나씩 막혔다. 열릴 거라 여겼던 문은 닫혔고, 당연히 가능하리라 여겼던 일들이 불가능하다는 답으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부딪힌 것은 집이었다. 친정엄마 건물에 한 세대쯤 전세로 들어가면 되겠다고 여겼던 계산은, 가족 소유 건물에는 전세대출이 어렵다는 한 문장 앞에서 멈췄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금리 대출에 또 다른 대출을 얹어야 하는 방식은 시작부터 우리 형편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선택지가 아니라 포기지가 먼저 생겼다.


차상위계층 신청을 알아보며 또 하나의 벽을 만났다. 주소지가 달라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단순히 서류 한 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일이었다. 우편을 받기 위해 임시로 두었던 주소는 인정되지 않았고, 엄마 집 옥탑방이라도 주소를 옮겨볼까 했지만 그곳은 애초에 거주지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았다. 알아볼수록 '길'은 늘어나는 대신 줄어들었고,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또렷해졌다.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던 막막함이 현실의 문장으로 바뀌는 순간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막힌 자리에서 다른 길이 생겼다. 엄마와 오래 알고 지낸 부동산 중개인이 한 사람을 떠올렸다고 했다. 우리의 상황을 전해 들은 그분은 인천에서 목회하는 분이었고, 그분 소유의 건물에 비어 있는 반지하 한 세대가 있다며 그곳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보증금 백만 원에 월세 이십만 원, 우리가 스스로 집을 구해 나갈 때까지 기한 없이 지내도 된다는 말이었다. 숫자를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조건이 아니라 배려에 가까운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쉽게 믿기보다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길이 열릴 때 사람은 기뻐하기보다 먼저 멈칫한다. 너무 뜻밖이면 감사보다 당황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 집은 15평 남짓 반지하였다. 햇빛이 오래 머무는 집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형편에는 그 빛이면 충분했다. 그곳으로 전입신고를 하고, 차상위계층 신청을 넣고, LH 주택 신청 서류도 준비했다. 여전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안내를 들었지만, 이미 예상 밖의 문이 열린 경험을 한 뒤라 결과보다 과정을 바라보게 되었다. 확률이 아니라 인도하심이라는 단어를 다시 꺼내 보게 된 것이다. 오래 준비해 온 시간들이 무색해질 만큼, 이 모든 일은 하루이틀 사이에 이루어졌다.


돌이켜보면 내가 세운 계획은 대부분 닫혔고, 세우지 않은 일들에서 길이 생겼다.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준비되지 않은 방식으로 도움을 받았고, 계산했다고 믿었지만 계산되지 않는 은혜를 지나왔다. 그래서 지금은 무엇이 될지 쉽게 말하지 않고, 어디까지 갈지 미리 결론 내리지 않는다. 대신 한 걸음이 놓이는 자리를 바라본다. 여전히 흔들린다.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 하지만 흔들림이 방향을 잃었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때로는 흔들린 자리에서야 비로소 방향이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적는다. 계획이 닫힌 자리에서도 방향은 열렸다는 것을, 계산되지 않은 방식으로도 우리는 건너왔다는 것을. 나중에 다시 펼칠 나에게, 멈추지 않았던 하루가 이미 충분했다고 말해 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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