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꽃 Jul 26. 2024

고맙다, 시래기

요즘 연예인들 인터뷰 기사를 보면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이 “당신의 퍼스널컬러는?”이다. 사전적 의미는 개인이 가진 신체의 색과 어울리는 색, 사용자에게 생기가 돌고 활기차 보이도록 연출하는 이미지 관리 따위에 효과적인 것을 말한다. 나를 나답게 보이는 퍼스널컬러는 무엇일까? 10년 전, 이것저것 입어보고 꾸미던 직장인일 때는 ‘원색’이 어울린다고 잠깐씩 생각하긴 했었다. 하지만 결혼해 타지에 살면서는 언제든 아이들을 안아야 했고, 쉬이 먹여야 했고, 급히 쫓아다녀야 했기에 편하고 넓은 옷들만 찾았었다.


‘퍼스널컬러’라는 단어 자체를 생각해 볼 수도, 옷 구경을 하기 위해 40여분을 운전해 시내로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를 나답게 하는 색이 무엇인지, 색을 잃어버린 시간을 보내온 것 같다. 그리고 ‘퍼스널컬러를 찾지 못한 상태’가 요즘 내 마음인 듯싶다. 글을 쓰지만 투명치 않은 미래, 선교사 신분을 가졌지만 소명은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 친하다고 하지만 적당한 거리감은 두고 지낼 수밖에 없는 관계들- 모든 컬러들이 짙은 안개로만 덮여 있을 뿐, 색 자체를 느낄 수 없는 그런 상태.


갑자기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온 나이고 허투도 산 적 없는 나인데 왠지 모르게 서럽다. 어쩌면 퍼스널컬러가 없어서가 아니고 나란 사람 자체가 흐릿해진 데다 이렇다 할 혁혁한 업적이 없다는 것이 더 슬픈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마음에는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 줘야 하는 나란 사람

지인이 배추김치를 하고 생겼다며 보내온 ‘시래기’로 어제저녁 시래깃국을 끓였다. 김치로는 적합지 않지만 쓸모를 찾은 ‘시래기’가 꼭 나의 미래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물론 국물 맛은 김치보다 강했고 깊이도 있었다. 아마 시래기 때문이리라. 민들레 뿌리로 스며들어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 권정생의 「강아지똥」이 생각나는 건. 세상에 쓸모없어 보이던 ‘강아지똥’이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로 변했듯이 어쩌면 지금에 나는 그 쓸모를 찾아가는 과정 가운데 놓인 게 아닐까 싶다.


서두르지 않고 싶고, 바라지 않고 싶고, 당황하지 않고 싶다. 하지만 이 셋은 참으로 자주 엉킨다. 보이는 것들에 현혹되지 말자고 숱하게 마음먹어 보지만 욕망에 제동이 걸리는 날이면 지구 주위를 맴도는 달이 된 기분에 매몰되고는 한다. 정리하자면 꿈은 있는데 현실에 안착하지 못하는 그런 내 모습이라고 해야겠다. 그렇지만 달이 묵묵히 회전을 하고 있기에 밤에 일어나는 수많은 것들을 감상하며 사는 것이 아닌가.


아……. 한 번 더 팔팔 끓인 시래기 국의 국물 맛이 더 깊어졌다. 분명 지금의 시간들이 한 걸음 더 나서려는 나에게 꼭 필요한 탁월성이 되어줄 거라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라해지는 순간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