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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안솔 Nov 10. 2023

험한 꼴

너를 만나기까지 내가 얼마나 더 험한 꼴을 당해야 하니.


어제는 말이야, 낯선 남자와 영상통화를 했어. 멀리 있는 분이라서 데이트가 불가능했고 얼굴도 모른 채 문자 주고받는 게 부담스러워서 영상통화를 하기로 한 거야. 탈모가 이미 진행된 아저씨가 딱 나오더라. 외모가 아저씨인 만큼 성격이 푸근하겠지 기대했어. 그런데 아니더라. 내가 그렇게 까칠한 사람은 아닌 거 같거든. 그런데 20분가량 그와 대화를 하면서 세 번을 내가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어.


자기 생각대로 몰아가려는 성향이 강한 사람이더라. 웃긴 건 본인은 겸손하고 썩 괜찮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어. 내가 보기에는 독선적이고 생각이 유연하지 않은 그냥 불통인 사람이었어.


더 황당한 건 뭔지 알아? 그도 내가 별로였나 봐. 갑자기 그 남자가 연결이 안 좋다면서 통화를 종결시키는 거 있지? 그리고 사라졌어. 마지막 인사도 없이 일방적으로. 개 별로인 사람에게 내가 까였어. 되게 수치스럽더라.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게 까이는 거 진짜 기분 별로더라. 내가 이런 꼴까지 당해야 돼? 얼마나 더 많은 쓰레기를 치워야 나타날 거니?


너를 찾는 거 아직 포기는 안 했는데 나 좀 지쳐. 내가 별것도 아닌 거한테 까이니까 좀 서러워서. 나름 사랑받으면서 귀하게 자랐는데 누가 상처 줘도 상처받지 않고 마음을 잘 지키면서 살았거든. 그런데 이 나이에 연애하려고 여기 나와 보니까 너무 혹독해. 별것도 아닌 것들이 나보다 가진 것도 없고, 많이 벌지도 못하고, 멍청하고, 예의도 없는 것들이 수두룩 빽빽인데 자기들이 뭐 대단한 거 같나 봐. 적어도 자기들이 나보다는 대단한 사람인 거 같나 봐. 내가 나이 먹어서 진심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까 계산도 못하는 줄 아니? 같잖은 것들이.


내가 만나는 남자들만 문제는 아니야. 여론이 그래. 나이 먹은 여자는 선택권이 없으니까 따지지 말고 그냥 만나래. 내가 언제는 따졌나. 안 따지니까 별 볼 일 없는 것들한테 끌려다녔지. 마음을 활짝 열고 알아보려고 최선을 다한다고. 혹시 너인가 해서.


너도 어디서 험한 꼴 당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 여자들이 배 나왔다고, 옷 못 입는다고, 아니면 집 없다고 안 만나 주고 그래? 나는 괜찮아. 네가 배가 나와도, 옷을 못 입어도, 집이 없어도 다 괜찮아. 그만 험한 꼴 당하고 나한테 와라. 내가 잘해줄게. 내가 귀한 것처럼 너를 귀히 여겨 줄게. 우리 좀 빨리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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