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새벽러닝을 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열심히 달리는 이유가 체지방을 제거하는 목적, 그리고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가지고, 우울증 극복을 위해 임하고 있다. 나는 달리는 이유가 이런데, 아빠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새벽마다 열심히 달리는 건지, 문득 궁금해서 물어봤었다.
"그야. 건강하고 싶어서."
그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제일 중요하면서도, 가지기 어려운 것이 건강.
그 건강을 가지고 싶어서, 해가 뜨면 너무나도 더워지는 여름 햇빛을 감수하며 달리는 아빠의 건강을 향한 진심이 이 한마디에서 깊이 느껴졌다. 아빠는 나이가 70대로 접어들면서, 없던 고혈압이 생겼다. 젊었을 때 그렇게 열심히 달렸었을 때, 아픈 곳이 없었는데, 결국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는 장사 없나 보다. 운동도 젊었을 때부터라도 꾸준하지 않으면, 나이 들어서도 어디든 조금이라도 병이 오게 마련이라는 걸 아빠를 통해서 느끼게 된다.
"운동이 보약이야. 열심히 달려야 해."
또한 아빠는 아침 매일 혈압을 잰다. 그때마다 보이는 건 노랑 또는 적색 신호. 그러나 이런 신호를 무시하고, 운동복을 입고, 운동화를 질끈 동여매고 나간다. 그리고는 열심히 30분이라도 달리고 나면, 마주하는 혈압결과. 녹색 정상표시. 아빠는 러닝을 중독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완벽한 보약이기에. 개운하기도 하면서도, 건강 신호에 대한 마음의 안식을 줄 수 있는 녹색불을 마주하니까 말이다.
"저 아주머니까지 따라잡아서 걷고, 그 뒤로 달리자."
처음 스타트는 좋았다. 반환점 5km까지는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갔다. 끝없는 평지로 보이는 태화강의 러닝길. 태양을 등지며, 앞으로 나가는 것은 나름 정말 쉬웠다. 그러나 반환점을 돌고, 물 한 모금을 마시고, 3분을 걸은 후,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약간의 간격이 좀 되게 걷고 있는 아주머니를 기준으로 다시 달리자는 아빠의 목표에 따라 움직였다.
한참을 다시 뛰었을까. 모자를 썼지만 강렬한 태양을 마주하며, 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늘 하나 없다. 인내심 테스트를 경험하고 있는 것만 같다. 아빠의 모습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모자와 이마 사이로 흐르는 땀들. 더욱더 일그러지는 얼굴. 그래도 끝까지 가고 말겠다는 강렬한 의지의 눈빛이 보였다.
'그래. 나만 힘든 거 아니니까. 힘내보자.'
각자가 좋아하는 음악을 이어폰으로 들으면서도, 같이 달리는 발걸음을 맞춰간다는 것이 어색하고도 기분이 좋았다. 나 혼자였으면 포기했을 10km. 신나는 음악으로 더욱더 힘을 내면서, 아빠 덕분에 더욱 힘내서 뛰었다. 그러다가 다리 밑으로 휴식공간이 보일 때쯤. 아빠는 쉬자고 하셔서 쉬었다.
쉼, 그리고 다시
"약간 어질 하다. 조금만 있다가 가자."
아빠는 너무나도 힘들어했다. 얼굴 전체가 땀으로 가득 맺혀있었다. 벌컥 물을 마시며, 고개를 떨구는 모습이 약간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아빠가 이쯤에서 멈추자고 하면, 멈출 생각이다. 어지러우면, 이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맞으니까.
"안돼.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갑자기 아빠는 벌떡 일어나며, 이 한마디를 외치며 달려 나갔다. 깜짝 놀랐다. 컨디션이 안 좋으니까, 이쯤에서 포기하는 걸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는 일단 하고자 하는 목표를 잡으면, 그걸 이루도록 끝까지 노력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 알겠어!! 가자!!"
'와... 대단하다.'
속으로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빠의 특성을 많이 닮았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환경이 비록 안 좋을지라도, 일단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끝까지 노력이라도 해 보는 것이다. 초, 중, 고, 대학 시절 그리고 심지어 30대 넘어서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항상 목표를 잡고 달려 나가다가도, 외부자극이든 내부자극이든 어떤 외부자극에 의해 좌절되는 경우가 참 많았다. 그래서 그때는 처음에 목표한 욕심을 버리고, 다시 작은 목표로 설정하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못 얻을지라도, 시도한 것 자체에 의의를 두었던 때가 많았다.
국, 영, 수를 공부하는 것보다 이런 사소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버틸 수 있는 지혜를 무의식적으로 아빠의 행동에서 배우며 살아간 건 아닐까 하고 달리며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빠에게 감사하다. 내가 이런 점을 아빠한테서 무의식적으로 배웠다는 걸 인지했으니 말이다.
지금, 우리의 공동 목표는
뛰다가도 힘들면 걸어서라도 10km를 완주하는 것.
시간이 어떻게 되든,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걸. 끝까지 해냈다는 걸. 자신만의 만족감을 느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