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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지예 변지혜 Aug 03. 2023

전지적 수술환자시점

이런저런 이야기

'아... 덥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살. 그리고 머리맡에서 불어오는 잔잔한 선풍기 바람. 눈을 감고 누워 있어도 주변의 것들이 느껴진다. 8시 20분까지 병원에 가서 입원 수속 해야 하는데, 7시 50분에 일어나는 이 대담함은 어디서 나왔는가.


'냐아...'

흰색 털의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밥그릇에 밥이 없다고 부른다.

'그래... 일어나야지. 얼른 밥 줄게..'


이제는 일어나서 얼른 짐 챙겨서 가야 할 시간. 나의 건강을 위해서 얼른 가야 한다.


부랴부랴 머리를 감고 말리고 샤워도 10분 만에 준비 끝.

우리 사랑스러운 고양이의 밥도 잊지 않았다. 덤으로 츄르도.




 


수술. 입원을 위한 준비물 챙기기.                                                                       


오늘은 두 번째 수술이다.

5개월 전. 첫 수술하고 나서, 그때 필요했지만, 챙기지 못했던 것들을 꼭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두 개는 꼭. 챙겨야 했다.(이 외에도 충전기, 노트북, 다이어리는 챙겼지만.)


첫 번째는 물.

입원병동 내에 정수기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만, 움직이기 불편할 경우를 대비해 편의점에서 물을 사다 놓는 것이 간편하고 좋다. 보호자가 따로 없기에, 미리 옆에 물을 넉넉하게 두는 것은 무인도에서 생존에 필요한 것들이 바로 옆에 다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혼자 있어도 마음이 편한 느낌을 준다.

오늘은 집 앞에 편의점에서 1리터와 500ml 생수통을 한 개씩 구매해서 갔다. 비록 반나절 입원이지만, 마음은 든든해진다.


두 번째는 철이 없는 머리끈.

수술실을 들어가기 전에는 많은 것들을 체크하고, 준비한다.

그중에 머리카락을 정리하기 위해서 위생 모자를 쓰기 전, 머리를 묶어주신다.

이때 사용하는 머리끈은 바로 '노란 고무줄'.

머리를 노란 고무줄로 묶고 나서 나중에 풀 때, 머리카락들도 다 같이 뜯겨나가는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은가?

그때 첫 수술 당시 노란 고무줄의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하고, 충격적이었다. 오늘은 노란 고무줄을 당하지 않으리 다짐하며 나의 검은 고무줄을 챙겨갔다.


하지만 최근 머리를 자른 덕에...  한쪽은 노란 고무줄 두 개로 묶어주고, 다른 한쪽은 내가 가지고 있던 검은 고무줄로 묶어, 양갈래 머리를 하고는 위생 모자를 쓰게 됐다...

하... 만약에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만, 다음번에는 검은 고무줄 두 개 가져야 가야지.



수술실 앞.

" 띵똥. "

원무과에서 입원수속을 마치고, 짐을 싸들고 수술실 앞에 섰다. 아무도 없는 복도. 이름만 들어도 덜컹하게 만드는 수술실 간판.

수술실 앞 초인종을 눌러서, 도착했음을 알렸다.

문이 열리고, 수술 준비 담당 간호사 분께서는 나를 마중 나와주셨다. 실내 슬리퍼로 갈아 신고, 짐을 챙겨서 들어오라 하신다. 수술 준비 실에는 다른 곳과 다름없는 깔끔한 병동실과 같아 보인다. 하지만, 다른 곳과는 달리, 생명을 다루기 전 준비 작업을 하는 곳이라 그런지, 더욱 꼼꼼하게 체크하고, 많은 확인 작업을 거쳤다.


"브래지어 속옷, 팬티까지 다 벗으시고, 옷 갈아입으시면 되세요."

처음에 이 말을 들으면, 네? 티까지도요?라고 당황하는 기색을 보일 듯하다.

하지만, 내가 받을 수술 부위를 생각하면서, 이전의 수술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네'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기억에 남는 특이한 점은 환자의 팬티는 오른쪽 주머니에 넣는 것이 그들만의 룰이라는 것이다.

수술을 다 마치고 나면, 팬티를 입히고, 수술용 큰 생리대 같은  차게 되는데, 그때 입힐 속옷을 오른쪽에서 꺼내서 해주시는 걸로 다 약속이 되어있어서 그런 말을 하신 것 같았다.(오늘도... 어김없이 자고 일어나니, 팬티와 수술용 큰 생리대 같은 것이 입혀져 있었다.)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수술환자 시점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름, 생년월일은 어떻게 되세요?"

옷을 갈아입고, 실내의 천장을 바라보며 멍하게 2초 정도 있다 보면, 간호사분이 나의 신분을 확인하고는 항생제 테스트를 시작한다. 부작용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

살을 살짝 떠서 피부에 확인하는 작업은 정말... 너무 아프다. 주사를 잘 맞는 나이지만, 이 주사는 너무 아프다.


"화장 안 하셨죠? 선크림도 안 발랐고요?"

잉? 선크림도 발라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안내문에도 화장은 하지 말라고 되어있어서 화장은 안 하고 갔건만, 무섭게 내리쬐는 자외선을 차단하는 크림도 안 바르고 가야 하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선크림 발랐는데요..."

"물티슈랑 휴지 드릴게요. 닦으세요."

"헙... 네..."


만약을 대비하는 수술 전, 조사(종교는 있는지, 술담배는 하는지, 비상연락망 등등)를 받으며, 얼굴에 있는 선크림을 박박 닦아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바르고 오는 건데...  후회가 밀려왔다.


이런저런 일이 지나고, 항생제 테스트 시간이 끝났다. 부풀어 오르지도 않고, 아무 반응도 없는 정상이었다. 그러자 간호사 분께서는 항생제를 주입하고는 같이 걸어서 수술실로 향했다.




'지이잉...'

"변지혜 환자 도착하셨습니다."

수술방에 걸어서 도착한 나는 약간의 모를 긴장감이 살짝 느껴졌다. 환자가 눕는 자리에는 키친타월? 아니 같은 것들이 깔려 있었다..


"발판을 밟고 올라가서 침대에 걸터앉고, 똑바로 누우세요."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나에게, 로봇에게 명령어를 주입하듯,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니, 하얀 천장보다도, 큰 하나의 동그라미 안에 눈이 6-7개 달린 2개의 조명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내 머리맡에는 뭐가 있을까. 너무나도 구경하고, 보고 싶었다. 귓가에 들리는 띵띵 띵소리는 나의 심장 띵띵띵을 나타내는 기계일까. 그 왜에는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 많은 나는 한 바퀴 주변을 둘러보고 싶었다. 언제 수술방을 직접 둘러보겠는가.(물론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고, 수술하러 온 것이지만...)


한 간호사는 내가 눕는 순간, 이마부위. 그리고 관자놀이쯤, 위생모자의 테두리에 테이프 아닌 테이프를 붙이는 작업을 시작하셨다. 또 다른 간호사는 나의 팔과 다리가 수술하기 좋은 자세. 개구리 팔다리를 쫙 벌려서 고정시키는 작업을 하였다.


자궁을 수술하기에, 산부인과에 정기 검진을 하면, 여자들 만이 경험하는 산부인과 전용의자에 앉는 것처럼 쩍벌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는 뭐 부끄럼이고 자시고, 그런 느낌들을 느낄 새도 없다.


"차갑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아랫도리에 차가움이 한가득. 소독을 하는 느낌을 놀라지 말라고 말을 들어도 너무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무심한 듯 정성그럽게 그리고 꼼꼼하게 닦아내주시는 손길이 느껴졌다. 위생을 위한, 수술을 위한 작업을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하지만, 부끄러운 마음이 1% 정도 올라오기도 했다. 이 수술전담 간호사 분들은 수많은 여성들의 수술 부위를 보았겠지만, 나는 타인에게 나의 은밀한 부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뭔가 당연한 듯하면서도, 당연한 것이 익숙하지 않고, 적응되지 않는다.

이걸 꼭 오늘 글로 써야지 하면서, 어느 잠에 빠져들었다.


'여기.. 어디...'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푹 잠에 들었다가 깼다. 희미하게 정신이 깨는 듯 하지만 눈을 살짝 뜨고는  안심하며 다시 눈을 감는다. 죽은 시처럼, 일어나기 힘들어 침대에 그대로 꼼짝없이 누워있다.





눈을 감으면, 나의 몸에 집중하게 된다. 마음의 눈으로 먼저 나의 자궁을 바라보았다.


'너 괜찮니...?'


몸의 주인인 내가 알아채지 못하고, 속으로 얼마나 끙끙 앓고 있었을까. 그러다가 최대치의 고통에서 나에게 끙끙 앓던 아픔을 전해왔던 너. 이제는 조금 평화를 되찾은 듯, 그녀의 평안함과 고요함을 느껴본다. 명치 쪽의 부위의 쿡쿡 찌르는 느낌이 신기하게 사라졌다. 그리고는 머리. 어깨. 왼쪽 손, 오른쪽 손, 배, 다리 등등 마음의 눈으로 구석구석 살펴본다. 최근 명상을 자주 해서 그런 걸까. 이렇게 나를 바라보는 연습이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불안은 사라지고, 평안과 평화가 나의 온몸을 감싸는 듯했다. 고요함과 평온함이 주는 느낌이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여기에 있다는 현존하고 있다는 느낌.

현재를 느끼는 것.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과거로 달려가서 분노와 슬픔을 느끼기보다.

미래로 달려가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기보다.

현재. 지금. 이 순간을 느끼자.


이것이 제일 중요하고, 나의 마음의 평안을 찾는 길이다.


아직 의사 선생님의 수술 후의 소견들은 듣지 못했지만, 나는 느껴진다. 내가 어제보다 더 건강해짐을.


과거는 과거일 뿐. 내가 일어났던 것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

지금. 현재의 나에게 감사하자.

지금. 현재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자.



나는 이렇게 눈을 감고 마음에 집중하며, 침대와 하나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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