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지예 변지혜 Aug 01. 2023

아니. 내가 참지 못 한 게 잘 못이야?

깨져버린 원가족에 대한 애정.


"아니, 지금 왼쪽 차선 들어갈 때. 실선일 때 들어갔잖아. 이거 완전 잘못된 거라고."     

     

하…. 또 시작이다. 동생이 이사하는 날. 이삿짐을 엄마 차에 일부 싣고 동생의 새로운 집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운전석에는 나. 보조석에는 엄마. 뒷좌석에는 애완 묘 한 마리와 동생이 앉아서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터널로 들어가기 전, 타이밍을 놓친 탓에 얼른 실선이더라도 왼쪽 차선으로 변경했는데, 장롱면허로 운전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그녀가 나에게 지적하기 시작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 사건은 크게 범칙금을 낼 정도의 법규를 위반한 것도 아니고, 다른 차들도 그렇게 가면 눈 가리고 아웅 해주는 그런 장면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운전도 직접 안 해본 사람이 지적하는 것이 너무나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지적할 수 있지.'라며 한 번은 넘어갈 수 있다. 그래서 그렇게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1절을 넘어서서 2절, 3절까지 혼자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녀는 한문철 TV를 자주 보는 사람이었다. 평소 그 유튜브에서 나오는 블랙박스 사건 사고 영상을 너무나도 많이 봐왔기에, 내가 걱정되어서 그런 조언을 해준 건 고맙다. 하지만, 이 사소한 한 문제를 가지고 소리를 윽박지르면서, 서로 이야기할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더 화가 나는 건. 그 옆에 있던 엄마의 행동이었다.     


‘둘 다 시끄러워!!!’     

물론 둘 다 윽박지르는 상태였기에 높은 데시벨 소리들을 잠 재우기 위해서, 이렇게 말한 건 백번 이해한다. 그러나 엄마는 언니이니까 이해하라면서, 넘어가라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K-장녀의 슬픔 중의 하나가 아닐까라는 고민도 여기에 대입해 보게 된다. 무슨 상황에서든지 무조건 이해해야 하는 포지션에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장녀들의 애환일까.


동생에 대한 잘못, 나에 대한 잘못이 이런 것이니, 둘 다 조용히 해서 갔으면 한다.라는 말로 객관적인 제삼자의 시선으로 중재를 해 주길 바랐다. 언니니까 무조건 참으라는 식의 중재는 나를 더 화나게 하고, 억울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이 사건이 별거 아닌 사건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사건의 당사자인 나로서는 너무나도 감당하기 힘든 깊은 상처를 받게 되었다. 넓은 마음을 가지지 못해서일까. 아직 많이 미성숙해서일까.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그때 너무나도 입속의 어금니를 꽉 깨물고, 이를 바락바락 긁으며, 분을 이기지 못해 속으로 울분을 토하면서 운전을 하고 있었다. 또한 분노의 눈물을 몰래 훔치며 운전해 나갔다.     


동생의 새로운 집 근처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문을 쾅하고 닫아서 가버리는 그녀. 나는 너무 화가 나서 그냥 바로 집으로 가려했다. 하지만, 엄마는 언니이니까. 참으라고 다시 한번 말하고는 밥은 먹고 가라고 했다. 진짜 안 먹고 가려고 했는데…. 엄마를 봐서라도 그냥 먹고 가야겠다 싶어서 화가 나지만, 마음을 다잡고, 다 같이 식당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2차 사건이 바로 터졌다. 우리는 낙지볶음 하는 집으로 갔다.

     

“엄마, 아빠, 내가~…….”


다시 괜찮은 기분을 되찾으려고, 엄마, 아빠에게 이때까지 있었던 직장생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이야기해 드리려고 말문을 열었다. 그때 갑자기 너무 재미있는 상황이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 데시벨이 높아졌다. 주변의 손님들은 2팀 밖에 없었다.    

  

“아! 시끄럽다. 니 조용히 좀 해라. 밥 먹을 때 입 닥치고 먹어라.”


하…. 바로 나의 본능적인 반응으로 육두문자가 저절로 나왔다. 부모님 앞이고 뭐고 상관없이 육두문자를 날렸다. 효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부모님 앞에서 싸우는 자매라. 정말 개판으로 보일 거다.


하지만, 이 대화의 평화를 깨는 건 동생이었다고 생각에 너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목소리가 조금 컸다는 건 잘 못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화내면서 말할 일인가? 입 닥치고 먹는 데만 집중하려면, 뭐 하러 같이 밥 먹으려고 했던가? 대화도 나누고, 오랜만에 만났으니 정을 조금이라도 나누기 위해 만난 것이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엄마, 아빠는 “그만해라. 언니가 참아라. 000(동생) 니 왜 그러는데, 둘 다 그만해라.” 이런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비빔그릇에 담긴 빨간 낙지들은 범벅이 된 나의 빨간 피눈물로 보였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참아야 하는 건가? 참는 게 무조건 답인 건가?’라는 분을 삭이지 못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는 채 조용히 입 닥치고 밥이나 먹었다.


출처 pinterest

     

그렇게 나는 이 사건 이후로 더욱더 원가족에 대한 애정의 거울이 산산조각 깨졌다.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 나는 무조건 입 다물고 살아야하는 존재일까.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원가족 #원망 #슬픔 #억울 #화남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와 첫 즉석사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