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나는 다시, 나의 이름으로

마흔둘, 다시 나의 이름으로

by 이도화
"낯선 도시에서 쌓아온 시간이 결국 나를 나의 자리로 이끌어 준 순간."

아이들을 홍콩에서 키우며,
이왕이면 영어와 중국어를 잘하기를 바랐다.


그 두 언어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한국어는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한국인으로서의 뿌리를 놓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한국 책을 읽고,
국정 교과서를 구입해 차근차근 정독했다.


그리고 홍콩 한인회에서 운영하는 ‘토요한국학교’에 보내기로 마음먹고, 직접 사무실을 찾았다.


아이들 입학 상담을 하던 그곳에서,
또 하나의 문이 열렸다.


중등부 한국어 교사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한국어 교원 자격이 있었고,
북경에서 1년 동안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도 있었다.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지원했고, 합격했다.


돌이켜보면, 인생에는 완전히 우연인 일은 없는 것 같다.
지나온 시간들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다시 이어진다.


북경에서 시작된 교육자의 길은
홍콩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토요일이면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갔다.
아이들은 한국어와 국사를 배우고,
나는 그 옆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엄마이면서 동시에 교사로 서 있는 시간.
그 시간이 좋았다.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은 토요일이었다.


종강 파티가 있어 아이들을 먼저 집으로 보내고,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홍콩 시내의 한 식당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몇 명씩 나뉘어 택시를 탔고,
나는 얼굴만 알고 지내던 한 선생님과 같은 차에 올랐다.


짧은 인사로 시작된 대화는
자연스럽게 일 이야기로 이어졌다.


“홍콩에 오래 사셨어요?”


그 질문을 시작으로 우리는 수업 이야기와 각자의 일상을 나누었다.


그러다 그가 말했다.


“저는 대학에서도 강의하고 있어요.”


순간, 마음이 작게 흔들렸다.


그리고 이어진 한마디.


“요즘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를 뽑는 공고가 종종 올라와요.”


그 말은 오래 남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그가 알려준 사이트를 찾아 들어가 채용 공고를 확인했다.


지원서를 꼼꼼하게 작성한 뒤,
확인 버튼을 눌렀다.


그날의 택시는
단순히 식당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었다.


내가 다음으로 가야 할 방향을
조용히 가리키고 있었다.


며칠 뒤, 면접 연락이 왔다.


수업은 영어와 한국어를 함께 사용하는 환경이었고,
인터뷰 역시 영어로 진행되었다.


긴장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잘하고 싶었고, 꼭 되고 싶었다.


그래서 더 간절하게,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나는 홍콩의 한 대학에서
시간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마흔둘.


홍콩에 온 지 몇 해가 지나서야,
나는 이 도시에서 비로소 ‘내 자리’를 얻었다.


수업은 3개 반을 맡았다.
주 3회, 한 반은 세 시간씩 이어졌다.
일주일에 사흘은 정신없이 바빴다.


강의가 있는 날이면
하루가 통째로 그 수업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준비한 자료를 몇 번이고 들춰보고,
머릿속으로 말을 꺼내는 순서를 정리했다.


막상 교실에 들어서면
생각해 둔 문장들은 반쯤 흩어졌고,
그날의 분위기와 학생들의 표정에 맞춰 수업을 다시 엮어갔다.


수업이 끝난 뒤
텅 빈 강의실에 잠시 남아 있으면
고요한 성취감이 따라왔다.


수업을 준비하다 보면 밤이 깊었고,
자료와 질의응답을 챙기다 보면
늘 시간이 빠듯했다.


그래도 이상하게
힘들다는 생각보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더 또렷했다.


강단에 서 있는 동안,
나는 오랜만에 ‘나’로 서 있었다.


강의를 하며 동료 선생님들과 가까워졌다.
그중 몇 분과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 중에는 아이들을 인상 깊게 키워낸 분들도 많았다.


홍콩은 국제도시답게
아이들의 미래 역시 국제적인 방향으로 설계되는 경우가 많았다.


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것들이
조금씩 현실의 계획으로 바뀌어 갔다.


우리는 종종 모여
수업 이야기뿐 아니라 자녀 교육에 대한 경험도 나누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배우고 또 배웠다.


홍콩이라는 도시는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그들과 나란히 서 있었다.


마흔둘에 얻은 이 자리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버텨온 시간의 결과였고,
스스로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시작이었다.


북경에서의 불안과 흔들림은
나를 긴장하게 했고, 준비하게 했다.


그 준비는 길을 안내했고,
나는 다시 자리를 잡았다.


조용히 쌓아 올린 시간들은 결국
나를 이 자리로 이끌어 주었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아내나, 누군가의 엄마로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해외에 나온 지 5년,


나는 다시,
나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이제 어디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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