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버텨낸 시간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하며 어디에 서 있었을까.
홍콩에서 두 아이를 원하던 학교에 보내고 나니 어느덧 3년이 지나 있었다. 해외에서의 삶도 어느새 5년째였다.
겉으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처럼 보였지만, 해외에서의 삶은 늘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건, 그 안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는 일이었다.
사실 나는 이미 한 번, 나를 놓쳐본 적이 있었다.
북경에서의 시간이었다.
그때의 나는 한동안 일상의 리듬을 잃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같은 방식으로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집 안에는 금세 고요가 내려앉았다. 그 시간은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나와 마주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나는 그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했다.
어쩌면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아침이면 집을 나서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으로 향했다. 지하철로 30분 거리였다. 한때 승무원으로 일했지만, 언어는 쓰지 않으면 금세 무뎌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마음으로 영어 수업을 들었다. 익숙한 언어였지만,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배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수업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점심을 먹고, 집 근처 산으로 향했다. 걸어서 10분이면 입구에 닿았다.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길이었다. 특별한 생각을 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걷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복잡했던 생각들이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오후 네 시쯤 집에 돌아오면 다시 아이들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홍콩에서의 시간은 늘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며 채워졌다.
다행히 아이들은 수학을 크게 어려워하지 않았지만, 나는 늘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 교재로 기본을 다시 짚어주었다. 기탄수학, 쎈수학, 개념원리. 아이들은 묵묵히 따라와 주었다.
토요일 오전에는 홍콩한인회에서 운영하는 한국어 과정에 보냈다. 집에서도 주말마다 국정 교과서를 펼쳐 아이들과 함께 천천히 공부했다. 어디까지가 도움이 되고, 어디서부터는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야 하는지 늘 고민하면서 지켜보았다.
영어는 내가 직접 도울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대신 책을 많이 읽게 했다. 특별한 방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저 꾸준히 읽게 하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자주 홍콩 중앙 도서관(Hong Kong Central Library)과 집 근처 서점을 오갔다. 서점에 앉아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책을 한두 권 사 오고, 도서관에서는 여러 권을 빌려 와 다시 반납하는 일을 반복했다. 아이들 방 문 앞에는 읽은 책의 제목을 적어두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서로 더 많이 읽으려는 모습도 보였다.
그때의 우리에게 서점과 도서관은 가장 자주 가는 곳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우리는 바쁘게 공부했고, 시간을 아껴가며 살았고, 하루를 꽉 채워 보냈다.
불안을 덜어내는 방법은 공부였고,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그 시절 홍콩의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었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함께 저녁을 먹고, 나란히 앉아 각자의 공부를 했다. 아이들은 학교 공부를 하고, 나는 내 공부를 했다.
밤이 되면 다시 조용한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온라인으로 사이버대학에서 한국학과와 영어 TESOL 과정을 시작했다. 하루를 다 보낸 뒤 다시 책을 펼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시간은 더디게 가는 것 같았지만, 분명히 쌓여 갔다.
그렇게 한국어 교원 자격과 영어 교원 자격을 함께 취득하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시간이 훗날 어디에서 쓰이게 될지.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라기보다,
다시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를 붙들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던 시간,
나 역시 내 자리를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었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조용히, 그리고 조금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