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합격했지만, 끝이 아니었다

같은 학교에 다녔지만, 두 아이의 시간은 달랐다

by 이도화

가을이었다.
큰아이가 홍콩국제학교(Hong Kong International School)에 합격했다.
우리는 그때, 모든 게 끝났다고 믿었다.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보다 먼저 밀려온 것은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이었다.


9학년부터 아시아 최고 수준이라 불리는 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 큰 기회였다. 그러나 입학이 곧 안착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처음의 홍콩국제학교(HKIS) 생활은 예상보다 훨씬 더 버거웠다.
수업 방식도, 친구를 사귀는 방식도, 교실의 공기까지도 익숙한 것이 하나 없었다.


합격은 3전 4기의 결과였지만, 아이의 마음속에는 ‘나는 뒤늦게 들어온 아이’라는 인식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자라온 학생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결속이 있었다. 이미 단단하게 형성된 그들만의 세계였다.


그 사이로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느 그룹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못한 채 방황하던 시간이 이어졌다. 점심시간에 혼자 앉아 있는 날도 있었고, 말을 걸 타이밍을 놓쳐 조용히 교실로 돌아오던 날도 있었다.

" HKIS 입학 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한동안 혼자 점심을 먹었던 큰 아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지만, 집에 돌아오면 표정이 달라졌다. 처음 몇 달 동안 아이는 말수가 눈에 띄게 줄었고, 하루를 버텨내듯 학교를 다녀왔다.


나는 그 변화를 모른 척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더 어려웠다.


익숙함이 사라진 자리에는 긴장과 조심스러움이 대신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이도 잘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라 한 발짝 물러서 있던 시간이었다.
나 역시 엄마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같은 자리에서 함께 방황하고 있었다.


학업의 벽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에게 어려웠던 것은 특정 과목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과목을 AP(Advanced Placement) 과정으로 듣고 있었다.


AP 수업은 미국 대학 수준의 내용을 고등학생이 미리 배우는 프로그램으로, 단순한 이해를 넘어 깊이 있는 개념 정리와 분석, 그리고 시험 대비까지 요구되었다. 학습 범위는 넓고 수업 속도는 빠르며, 평가 기준 또한 엄격했다.


이미 그 교육 방식에 익숙한 학생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그런데 아이는 그 흐름에 뒤늦게 합류했다.


수업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영어로 개념을 이해하고 정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과목마다 이어지는 과제와 시험 준비는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용어와 표현들 속에서 아이는 매일같이 자신과 싸워야 했다.


“엄마, 나는 여기 애들만큼 똑똑하지 않은 것 같아.”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입학은 목표였지만, 진짜 싸움은 그다음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성적보다 아이의 자존감을 먼저 지켜야 했다.
틀린 문제를 묻기보다, 버티고 있는 하루를 먼저 물었다.


늦게 들어왔다는 사실은 열등함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해 온 끈기의 증거라고 여러 번 이야기해 주었다. 네 번의 도전 끝에 얻은 자리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고 싶었다.


어떤 날은 그 말이 아이에게 닿지 않는 것 같았고,
어떤 날은 나 스스로를 설득하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기로 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 변화는 교실 밖에서 먼저 나타났다.

"운동을 좋아했던 두 아이는 스포츠 활동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

두 아이 모두 스포츠 활동을 통해 숨을 돌렸다. 마음껏 뛰고, 부딪히고, 땀을 흘리며 쌓인 긴장을 풀어냈다. 운동장에서는 더 이상 ‘뒤늦게 온 아이’도, ‘잘해야 하는 학생’도 아니었다. 그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딸아이는 배구와 배드민턴을 통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확신은 아이의 표정을 바꾸어 놓았다. 코트 위에서는 주저함이 없었다.
아들 역시 농구와 배구, 배드민턴 등 여러 종목에서 고르게 재능을 보이며 자신의 가능성을 자연스럽게 펼쳐갔다.


두 아이 모두 학교 대표로 선발되어 다른 학교와의 경기에 꾸준히 출전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알았다.
아이들에게는 공부 말고도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세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프로젝트 수업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체육 시간에 활약하며 친구들이 아이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성적이 눈에 띄게 오르지는 않았지만, 아이의 눈빛이 달라졌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얼굴이 서서히 풀려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수학 시간에 큰 아이의 이름이 자주 불리기 시작했다. 문제를 풀어내는 감각이 남달랐고, 수업 안에서 아이의 존재감이 점점 또렷해졌다.


늦게 들어온 아이였지만, 수학만큼은 빠르게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변화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둘째의 시간은 조금 달랐다.


3학년부터 홍콩국제학교(HKIS)에 다닌 둘째에게 학교는 이미 ‘자기 자리’였다. 교실에서는 자연스럽게 손을 들고 발표했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농담을 건네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늘 밝게 웃었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새로운 과제 앞에서도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앞섰다. 학교는 도전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편안한 일상의 일부였다.


어느 날은 쉬는 시간에 친구들 사이에서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멀리서 본 적이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이 아이는 이미 이곳에서 자기 자리를 찾았다는 것을.


둘째는 재능의 방향도 조금 특별했다. 글을 쓸 때는 감정을 섬세하게 길어 올렸고, 숫자를 다룰 때는 놀라울 만큼 정확했다.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오가는 일이 이 아이에게는 자연스러워 보였다.


시 경연대회에 나갔을 때였다.
홍콩에서 열리는 ‘Budding Poets’ 대회였다. 아이는 별다른 긴장도 없이, 그저 평소처럼 글을 써서 원고를 제출했다.


며칠 뒤,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돌아왔다.
First Runner-up이라는 소식이었다.


순간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동안 아이가 견뎌온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아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운이 좋았던 것 같아.”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알았다.
아이의 시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었다.


수학 경시대회에서도 늘 좋은 성적을 냈다.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설명할 때면, 마치 퍼즐을 맞추듯 즐거워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아이에게 배움은 경쟁이 아니라, 놀이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같은 학교, 같은 이름 아래 있었지만 두 아이의 시간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하나는 적응해가는 중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미 그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합격은 끝이 아니었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문은 결국 열린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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