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속에서 계속 선택하고 기다렸던 시간
세 달 만에
홍콩국제학교(HKIS)에서 연락이 왔다.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동안 그 메일을 열어 보지 못했다.
이미 마음 한켠에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단순한 연락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선택이 시작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인터뷰 날짜가 잡혔다.
나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했다.
아이에게 맞는 학교를 찾고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틀리지 않는 선택’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그날은
그저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는 날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달랐다.
이 도시에 와서
우리가 어디쯤에 서게 될지를
가늠해 보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입학 과정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서류 심사를 통과한 뒤
필기 시험과 면접이 이어졌다.
아이들은 작은 손으로
시험지를 꼭 붙잡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결과는 예상보다 빨리 나왔다.
둘째가 먼저 입학 허가를 받았다.
홍콩에 온 지, 세 달 만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는 그렇게 홍콩국제학교(HKIS)에 들어가게 되었다.
기쁜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 머물지 못했다.
한 아이는 문 안으로 들어갔고,
다른 한 아이는
여전히 문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알게 된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북경을 떠나기 전,
둘째는 학교 교장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저, 홍콩 가면 홍콩국제학교(HKIS)에 갈 거예요.”
아이는 그저
우리가 집에서 나누던 말을 듣고
아무렇지 않게 하고 다녔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아이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홍콩 입학 사정관이 학교에 연락했을 때,
교장 선생님은 아이의 총명함과 재치를
기꺼이 추천해 주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어린 아이가
어떻게 그런 확신을 품고 있었을까.
그리고 동시에,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그 아이가 해낸 일이
어쩌면 내가 먼저 챙겼어야 했던 일이었다는 것을.
추천서를 부탁하고,
길을 미리 열어 두는 일.
나는 그것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아이보다 내가 더 늦고,
더 서툴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딸에게로 옮겨갔다.
같은 시간,
딸도 같은 과정을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딸은
아직 입학 허가를 받지 못했다.
이유를 정확히 들은 적은 없었다.
다만 짐작할 수는 있었다.
딸은 초등학교 4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시험을 보던 해는 6학년.
언어를 제대로 익힌 지
채 1년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낯선 언어로 문제를 읽고,
낯선 방식으로 답을 써야 하는 시간.
그 시험이
아이에게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지
나는 짐작만 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어딘가에서는
그 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기다리는 것.
하지만 그 기다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길었다.
우리는 구룡반도 북쪽,
카오룽통에 살고 있었다.
같은 홍콩 안에 있으면서도
어딘가 한 발 비켜난 듯,
조용하고 천천히 흘러가는 동네였다.
둘째가 다니던 이전 학교는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
하지만 홍콩국제학교(HKIS)는 달랐다.
아이는 매일
새벽 6시 15분, 첫차를 타야 했다.
오후 2시 45분에 학교를 나서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늘 4시에 가까웠다.
키도 작고
몸도 약했던 아이에게는
쉽지 않은 하루였다.
어느 날은
코피를 쏟으며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나는 말없이
아이의 등을 쓸어주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이 길을 시작한 것은
아이의 선택이 아니라
내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괜찮아?”
하지만 그 말은
아이에게 건넨 질문이라기보다
나 자신에게 던진 물음에 가까웠다.
정말 괜찮은 걸까.
이 선택은 맞는 길일까.
그럼에도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둘째는 점점 학교에 익숙해졌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안도와 불안을 함께 배워 갔다.
그리고 딸은
여전히 기다림 속에 있었다.
그 사이에도
우리는 같은 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고,
딸은 몇 번의 시험을 거치며
그 문 앞에 다시 서야 했다.
그 시간이 쌓여
어느새 삼 년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딸도 홍콩국제학교(HKIS)의 문을 통과했다.
그 소식을 들은 날,
나는 처음으로
‘늦게 도착한 기쁨’이라는 것을 알았다.
두 아이는 결국
같은 학교 앞에 나란히 서게 되었다.
아이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각자의 교실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조금 늦게 깨달았다.
아이들은 이미
자기의 속도로
자기 길을 가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했던 선택은
그 길을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그저
그 길을 함께 걸어갈 시간을
조금 앞당겼을 뿐이라는 것을.
어쩌면 부모라는 사람들은
확신이 있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 속에서도
그 길을 끝까지 함께 걸어 보려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는
그 불안의 한가운데서,
멈추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